언제나처럼 맑은 잔디 내음이 살을 스친다. 조깅을 위해 선택한 날씨는 완벽하거나 거의 완벽하다. 간혹 비를 맞으면서 조깅을 할 때도 있는데, 이 역시도 선택한 날씨다. 여름날에는 습하고 더운 공기 보다, 차라리 부슬부슬 봄비 같은 여름비가 내리는 공기가 낫다.
조깅을 하는 곳은 빌라 단지에 있는 지역센터 농구코트거나 그 농구코트 옆 자그마한 공원이다. 농구코트 주변은 한 면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초록 잔디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농구코트를 뛸 때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방범 카메라가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운동하고 싶을 때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에는 인적이 드문 공원을 혼자 뛰기가 겁이 난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이른 새벽에 공원까지 나간 적이 있는데 가슴이 두근거려서 그만 중간에 포기하고 농구코트를 뛰었었다.
사각의 농구코트는 각각의 면마다 공기 냄새가 다르다. 조깅의 시작, 벤치 옆의 한 면을 달릴 때는 맞은편 지역센터의 쓰레기통 때문에 바람이 불 때마다 쓰레기 냄새가 종종 난다. 더운 여름에는 더 심해져 숨을 흡-하고 참고 뛸 때도 있다. 네면 중에서 제일 싫어하는 면이다.
이 면을 지나 코너를 돌면 두 번째 면이다. 이 면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면이다. 옆도 숲, 앞도 숲, 그 옆도 숲이라서 잔디 냄새와 나무 냄새, 숲속 냄새가 난다. 꽃이 피는 봄과 여름이면 꽃향기가 진동한다. 시선을 정면에다 두면 마치 숲속을 뛰는 기분이라서 일부러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두곤 한다. 이 면을 뛸 때면 미소가 절로 핀다. 내 미소를 느끼며 다시 한번 미소짓는다.
세 번째 면도 오른쪽을 제외하고 모두 잔디와 나무다. 다만 맞은 편에 농구 펜스가 보여 시야를 가려서 마이너스가 되어 버렸다. 또 이쪽 면의 바닥이 다소 눌러앉아 항상 젖어 있어서 마이너스기도 하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운동화가 다 젖어버려서 신경 쓰고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펜스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새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또 좋다. 온 깃털 색이 빨간 레드로빈이나 온 깃털 색이 레몬색인 이름이 궁금한 새를 보면 뛸 듯이 기쁘다. 이미 뛰는 중이라 더 경쾌하게 뛰어본다.
네 번 째면은 맞은 편이 지역센터 주차장이다. 이 면을 뛸 때마다 동네를 맴도는 초록의 잔디 향이 강하게 난다. 주차장을 넘어 빌라 단지가 보여서 동네의 잔디 향이 난다고 느끼게 된다. 이른 새벽이거나 아침이라서 주차장에 차는 거의 없다. 지역센터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몰고 오는 차량을 굉장히 자주 볼 수 있는 면이다. 하도 자주 봐서 이제는 인사를 해야 되나 싶을 정도지만, 농구코트와 그들이 차를 세우는 지역센터 앞의 거리가 인사를 나누기에는 애매하게 떨어져 있다.
이렇게 사각의 면을 20바퀴 정도 돈다. 10바퀴를 돌고 물을 좀 마신 다음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다. 다시 10바퀴를 돌 때는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두 번째 10바퀴를 뛸 때면 태양이 좀 전 보다 떠올라 있어서 늘 눈이 좀 부시다. 20바퀴를 모두 뛴 다음에는 열 오른 체온 때문에 공기도 더 덥게 느껴진다. 폐 끝까지 공기를 채우는데, 그렇게 헐떡이는 와중에도 공기 냄새가 참 싱그럽다고 느낀다. 몸이 데워지고 피가 빠르게 도는 그 순간의 희열이 좋아 조깅을 한다. 열 오르고 땀이 나는 몸으로 하는 스트레칭, 조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근육이 이완되어서 좀 전에 했던 스트레칭보다 훨씬 유연하게 몸이 구부려진다. 늘 같은 동작에서 같은 뼈 소리가 들린다. 약한 부위가 걱정되면서도 시원하다.
돌아가는 길의 공기는 집을 나설 때보다 온도가 높아져 있다. 왠지 공기보다는 햇볕을 느끼게 된다. 활기차게 시작해 산뜻해진 몸과 마음이 하루의 기대감을 높인다. 힘껏 쏟은 에너지가 더 큰 에너지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