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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ul 10. 2020

아포칼립스 영화 속 엑스트라 1의 미국생활

팬데믹(pandemic)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지식백과


얼마 전, 직접 대면 처리해야 되는 서류작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외출을 했다. 정말 몇 달 만인지. 늘 집 주변 공원과 가까운 마트에만 나갔던 터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멀리하는 사람들. 눈빛은 만은 어떻게 해도 속일 수가 없다는데. 그래서일까. 모두의 눈빛들에서 경계심이 느껴진다.


“마치 다른 나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애런의 말처럼, 나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에 내가 엑스트라 1로 출연하는 기분이었다고 해야되나. 나 정도의 비중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구조되지 못하고 세상에서 금방 잊혀질 것이다. 


아포칼립스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식량이 동나고, 폭동이 일어나 상가가 털리고,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다이내믹한 스토리와 생경한 도시의 모습이 늘 묘하게 끌렸다. 다크 판타지처럼,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평범한 삶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블록버스터 아포칼립스 영화 속 동양 이방인 역할 엑스트라1은 한국에서 일어난 전염병 소식을 뉴스로 접한다. 미국의 일상은 변함없이 여느 때와 같았고, 사람들도 딴 나라 소식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족과 지인이 염려된 엑스트라1은 전화 통화를 하며 그들을 안심시킨다. 지금은 힘들지만 괜찮을 거야! 말해더니, 아니야, 이번 전염병은 정말 이상해. 괜찮아질 것 같지가 않아,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설마...하는 의혹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


미국 대통령은 전염병이 미국을 결코 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으며, 그를 믿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정부의 대처를 비난하는 사람들 간 대치가 시작된다. 이미 혼란스러웠던 인터넷 정보는 더욱 혼돈의 양상으로 빠져든다. 서로를 불신하는 사이에 전염병은 빠르게 퍼져 한 도시를 장악했고, 사람들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환자를 위한 병원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주차장과 운동장을 채운 간이침대들과 영안실이 가득 차 시신을 냉동 트럭에 쌓아 이송하는 모습이 뉴스를 통해 퍼진다. 엑스트라1은 마스크를 구매하려고 했지만, 마트고 온라인이고 구할 수가 없어 안 입는 옷을 잘라 마스크를 만든 뒤, 커피필터를 마스크 사이에 끼우며 조금은 안심한다. 영화를 본다면, 당황하는 주변 인물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그걸로는 안 될 텐데, 하는 장면일 것이다. 


중국이 최초 발원지라는 소식이 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인종차별이 뒤섞인 동양인 혐오가 시작된다. 동네에서 잘 볼 수 없는 동양인으로 이미 충분히 눈에 띄었던 엑스트라1은 이제 혼자서 외출하는게 두려워진다. 동네 산책할 때마다 익숙했던 오래 머무는 듯한 시선이, 왠지 혐오와 적개심 담긴 시선처럼 느껴지고 점점 더 움츠러든다. 너네 때문이야, 네 나라로 돌아가, 같은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옆집 할머니는 엠뷸런스에 실려 가신 후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녀의 가족들이 집 물건을 정리했다. 재활용수거함 가득 할머니의 일상용품들이 박스에 담아져 있었다. 최근에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왔다. 할머니는 어떻게 되신 걸까.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아포칼립스 영화 속 이야기 같은 날들이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어디에서나 필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어느 곳이건 입장이 불가능하다. 마트 밖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정해진 특정 수의 인원이 밖으로 나와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즐거웠던 식재료 쇼핑이 어느덧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새로운 나온 제품들을 구경하거나, 식재료가 아닌 것들을 둘러보는 일이 잘못된 행동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매주 가던 마트에 늘 있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선반이 대부분 비어있다.


백신은 언제 나올까. 백신이 완성되면 언제 투여받을 수 있을까. 그 백신은 전 세계적으로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을까. 생존 앞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보다 인간존엄이 존중받을 수 있을까. 이 생활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끝은 있을까. 엄혹한 생각들과 함께 엑스트라1의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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