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숲 Dec 21. 2019

12월은 마이클 부블레의 계절이다

  

12월만 되면 마이클 부블레를 찾는다. 11월부터 그의 캐롤송이 듣고 싶어서 조급증이 밀려오지만, 12월의 남자를 11월에 불러올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12월이 아니고서는 그의 느끼한 목소리를 받아주기에 힘이 부친다. 캐롤송이 마치 러브송같은 매직.

      

12월에는 악보에 오일을 바른 듯 박자를 당기고 미는 그의 캐롤송을 들으며 많은 것을 한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꺼낸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힌다. 12월의 우리집은 낮이건 밤이건 조명이 다소 어둡다. 따뜻한 오렌지빛을 내며 벽에 걸린 꼬마전구들과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들 말고는 따로 조명을 켜지 않기 때문이다. 수리를 위해 아파트 관리인이 우리집에 들린 어떤 날에 그가 물었다. 오늘 무슨 파티 있나요? 아니요, 라고 대답하며, 인생은 매일이 파티 아닌가요? 속으로 생각했다. 속마음에 흠칫하며 마이클 부블레를 책망한다.     


따뜻한 오렌지빛을 내는 전구 옆, 나의 고양이가 더 이뻐 보이는 시즌이기도 하다. 요 생물체는 어찌하다가 나에게로 와서 이렇게나 큰 기쁨과 행복을 사랑을 주는 건지. 전구들을 탁, 처음 켜는 아침에는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며 이쁘지? 동그래진 눈을 나에게서 떼지 않는 고양이. 고양이의 눈동자에도 크리스마스 전구가 켜졌다.   


  

여전히 마이클 부블레는 캐롤송을 아주 성의껏 부르고 있다. 캐롤송에 맞춰 해야 하는 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크리스마스 카드 쓰기.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지는 않는다. 한국에 살 적에야 매년 가족과 지인들에게 카드를 보냈지만, 미국에 살면서부터는 번거롭기도 하고 카드를 보낼 때를 놓치거나 해서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찌 됐건 마이클 부블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라고 재촉한다. 부드럽다 못해 아주 미끄러지는 그의 허니 보이스가 내 감성 아주 밑바닥까지 타고 내려온다. 어느새 멀건 민낯의 마음이 크리스마스 카드 위에 담긴다. 눈물 콧물을 훔친다. 이제 카드라기보다 빼곡히 꾹꾹 눌러 담은 편지가 되어버렸다. 내일 보면 부끄러워서 못 보낼 카드다. 다시 또 읽어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와 함께라면 매일 반복되는 ‘쓰는 일’이 12월만큼은 경쾌해진다. 딱히 일정이 없어도 이 캐롤송 뒤에는 뭔가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있다.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일을 끝내곤 한다. 평소 보다 일찍 얻은 자유 시간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저녁 레시피를 구상한다. 급하게 지지고 볶던 레시피가 오븐 온도를 맞춰야 하는 느긋한 레시피로 바뀐다. 감자 하나라도 오븐에 들어갔다 나오면 근사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븐이 근사한 게 아니라, 시간을 쓰는 느긋한 요리는 대부분 근사하다.     


오븐으로 데워진 집안의 공기가 훈훈하다. 해가 일찍 떨어져 밖은 벌써 어두컴컴하다. 집안의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더 따뜻한 색을 밝힌다. 한국으로 갈 크리스마스 카드 안에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어 봉한다. 산타할아버지 모자를 쓰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우리 모습과 아주 꽁한 고양이의 얼굴을 보며 모두들 킥킥댈 것이다. 사진 각도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타이머에 맞춰 급하게 웃었다가, 인상을 팍 쓰고 또 실랑이를 벌이다가 다시 웃었다가 한 사실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마이클 부블레는 이제 아리따운 여성들과 함께 캐롤을 부르고 있다. 그가 준비가 됐냐고 묻는다. 나는 그녀들과 함께 이제 준비가 됐다고, 큰 소리로 노래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