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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May 10. 2019

나의 정겨운, 미국 소외그룹 사회

미국에서 꽤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나의 영어 실력은 시간에 비례해서 늘지 않았다. 집에서 출·퇴근을 다 하는 프리랜서라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영어 실력도 문제지만, 고립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문제로 떠올랐다.


원래가 혼자 잘 놀고 혼자 잘 먹어서 혼자인 시간이 즐겁게 흘러갔지만, 언제부턴가 그 시간들이 아주 느리고 고통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원망할 자리를 못 찾는 마음, 슬픈 이유를 모르는 마음, 정처 없는 마음들이 나에게 말했다. 너 참 교만하구나.


교만하게도, 나는 혼자서도 뭐든 잘 해낼 줄 알았다. 혼자서도 완전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나라면 슬쩍 떨어져 관망하더라도 만족스러울 줄 알았다. 관망이라니, 이제보니 신이나 할 법한 소리다.


나는 신이 아닌데도 삶을 액자에 담긴 풍경을 바라보듯, 내 일이 아닌 마냥 멀리 떨어져서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바라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평온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런 나를 구경하고 있었던 신은 분명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나 역시 사회적 동물답게 사람과 교류하고, 타인에게서 나를 확인받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한동안 관망하던, 삶이라는 풍경 속에 다시 뛰어들 준비를 시작했다. 지역 센터에서 운영하는 영어 클래스에 참여하기로 몇 달에 걸쳐 결정했다. 결정만 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무료인데다가 강제적이지 않아 원할 때 가고 원할 때 그만둘 수 있다. 영어 클래스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 의지력까지 시험받을 여력은 없었다.


내가 사는 메릴랜드에서 워싱턴DC를 지나 지역 센터가 있는 버지니아까지 지하철을 타고 40여 분, 예상보다 큰 긴장감은 아니었지만,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국에서 영어 클래스라, 이미 나는 영어를 못합니다,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평소에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할 때처럼, 초집중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안심이고 위안이 됐다.


영어 클래스 분위기는 참 따뜻했다. 미국에 살며 영어를 잘 못 하는 이방인들. 언어 때문에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얼마나 자주 얼굴이 벌개졌는지, 좌절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곳에 모였는지, 미소로 건넨 눈빛과 인사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를 안고 온 엄마, 어린 학생, 직장인, 프리랜서. 영어 클래스에 참여한 16명의 학생은 모두 14개 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교환 프로그램으로 와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는 브라질에서 온 수줍음이 많은 여자,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주 6일 파트타임 일을 하는 콰테말라에서 온 활기찬 여자, 얼마 전부터 라마단 기간을 시작해서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금식·금주를 하고 있다는 이라크에서 온 할아버지, 출장으로 잠깐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중국에서 온 변호사 여자, 트레이너 일을 하는 몸이 건장한 엘살바도르 남자.


출신 국가도 하는 일도 생김새도 제각각이었지만, 처음 만난 친척처럼 마음을 베풀고 서로를 챙기며 북돋아 주었다. 교실에 들어가 처음 헬로우,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넨 그 순간부터 나는 이곳에 마음을 뺏겼다.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영어 클래스가 있는 요일별로 영어 교사는 모두 달랐다. 월요일의 교사는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학생들의 영어 레벨이 일정하지 않아, 수업은 초급과 중급, 고급까지 아주 미묘하게 섞여 진행됐다. 나의 영어 듣기 실력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말하기와 쓰기 실력은 형편없다. 그래서 교사가 쓰는 실용영어를 들으면서 학생들과 말하기 연습을 하는 수업시간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월요일의 교사는 학생들을 위해 천천히 이야기했고 주의 깊게 들었다.


화요일의 교사는 좀 더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월요일의 교사처럼 배려 있고 주의 깊었지만, 그녀는 의도치 않게 나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말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과 미국인을 ‘우리’라고 표현하며,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정보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하자, 내니(nanny, 아이를 돌보는 여자)가 직업이냐고 되물었고, 내가 프리랜서 기자라고 하자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수업의 일환으로 차를 타고 온 사람과 버스를 타고 온 사람, 걸어온 사람을 손을 들어 체크해, 학생 중 1명만이 운전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결정적인 말실수를 하고 말았는데, 어쩌면 그 공간에서 나만이 느꼈을지도 모를, 아주 작지만 큰 실수가 그것이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을 때, 다시 말해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지 않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사람은 당신이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다시 말해 주시겠어요?’에 대한 몇 가지 문장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순간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얼굴이 벌개지며 꿀먹은 벙어리가 됐던 상황이 떠오르면서, 영어를 못해도 바보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되려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영어를 잘 못 하는 것을, 영어를 쓰는 사람이 이해해야 될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되물어서 영어로 대화가 됐다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고, 그러므로 그녀가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수업을 하는 2시간 내내, 그녀가 영어를 못하는 이방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과 일종의 인종차별이 느껴졌다. 월요일의 교사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수업은 유용했고 그녀가 나쁜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았지만, 어쨌든 나는 화요일의 수업은 듣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그 불편한 뉘앙스를 계속 참는 것이 맞는 것 같지 않았고, 참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뉘앙스에 반발하며 수업 분위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피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도 확신이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기쁘다. 멀리서 관망하여 액자 같았던 내 삶에도 사람이 움직이고 사건이 생겼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최근 나의 근황을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전하며, 미국의 ‘작은 소외그룹 사회’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의 작은 소외그룹이 어찌나 정겹게 느껴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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