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 워싱턴dc에도 본격적으로 벚꽃축제가 시작됐다. 처음 맞는 계절인 마냥 신이 난다. 집을 박차고 나갈 구실을 만들고, 밖을 기웃대고, 아직은 쌀쌀한대도 자꾸만 창문을 연다. 봄은 그렇다.
워싱턴의 봄과는 이제 겨우 안면을 텄다. 워싱턴 생활 3년차, 새로운 도시는 호락호락하게 이방인을 반겨주지 않았다. 첫 번째 봄은 봄인 줄도 몰랐다. 벚꽃이 피고도 눈폭풍이 덮쳤었다. 전 날 반짝였던 벚꽃이 다음날에는 누렇게 얼어버렸다. 낯선 도시의 텃새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다. 그해 1년은 내내 많이 아팠다. 사계절 감기를 달고 살았다. 햇볕이 좋았던 캘리포니아가 자꾸만 생각났다.
두 번째 봄은 어쩌다 우연히 만났다. 언제나처럼 주말에 마실삼아 까페로 가는 길, 벚꽃이 흐드려졌다. 세상에, 봄이구나. 봄이 왔구나! 조급한 마음에 부리나케 벚꽃명소를 찾아 허겁지겁 봄과 인사를 했다. 봄은 그렇게 금방 떠났다.
이번 봄은 겨울부터 기다렸다. 봄의 힌트를 놓치지 않고 샅샅이 훑었다. 말랐던 잔디가 천천히 푸른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잔디 사이에 얼굴을 내민 작은 꽃들도 놓치지 않았다. 메마른 나무에 꽃망울이 맺혀가는 것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날래진 다람쥐들의 식탐이 반가웠다. 치열하고도 흥겨운 새들의 자리싸움에 미소지었다. 땅을 뚫고 나오는 쑥을 발견한 날에는 가족을 가만히 떠올리며, 쑥과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들려주었다.
올 봄에는 워싱턴 지역신문에 몇장에 걸쳐 소개한 벚꽃축제 스케줄을 꼼꼼히 체크하고 미리 참여할 행사에 밑줄을 그었다. 한 달동안 촘촘하게 짜여진 축제 스케줄에는 주로 무료행사가 많지만, 티켓을 사서 참여하는 행사들도 보인다.
지난 주말에는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아트뮤지엄에서 워싱턴 벚꽃축제를 알리는 ‘체리블러썸 셀러브레이션’ 무료행사를 신명나게 열었다. 워싱턴에 이사온 후 처음으로 참여해본 지역축제라 분위기가 어떨지, 사람은 얼마나 많이 모일지 예상을 할 수 없었던터라 호기심과 기대감이 얽힌 묘한 설렘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뮤지엄이 있는 갤러리플레이스역에 내려서 조금 더 걸어가니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모여있는게 보인다. 와, 뮤지엄 앞에서 공연을 하는구나! 두근대는 마음. 공연을 둘러싼 사람들 틈에 겨우 자리를 잡으니 일본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반가우면서도 왠지모르게 마음이 머쓱해진다. 앞으로 열릴 워싱턴 벚꽃축제 테마의 대부분은 ‘일본’이 되겠구나, 하는 부러움, 아쉬움, 반가움이 섞여 셀쭉해진 복잡미묘한 마음들.
뾰루퉁한 마음을 뒤로하고 공연에 몰두해본다. 말해 뭐하리, 흥겹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흥겹다못해 행복하다. 그들의 환의에 찬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핑 돈다. 이와중에 눈물이라니, 나도 참 나다. 공연을 둘러싼 사람들도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전통음악의 선율에 몰두한다.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렇게 흔들 음악은 아닌데. 사랑스러운 사람들.
짧은 시간 공연을 마친 공연 연주자들이 몇 시간 뮤지엄 내에서 열릴 본공연에 대해 언질을 줬다. 시간에 맞춰 본공연이 열릴 공연장을 찾아 뒷자리 몇 개 남은 의자에 얼른 엉덩이를 붙였다.
역시 일본 전통공연이 진행될 모양인지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고 있는 일본연주자의 모습이 보인다. 역시나, 하는 마음과 제대로 전통적인 모습에 기대감이 상승. 그들 앞에는 한국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가 보인다. 고토, 라는 일본전통악기인데, 연주자는 중국과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지만 코토와는 다른 악기라고 설명한다.
이어지는 고토 연주, 선율이 미묘하게 가야금과 다르다. 지금껏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던 일본전통음악이다 싶은 선율이다. 바닥에 앉아서 연주하는 가야금과는 달리 의자에서 앉아서 연주하고, 일어나서도 연주한다. 온몸을 쓰는 것이 느껴진다. 팔뚝을 자랑하며 내 팔은 왠만한 장정도 못 따라와요. 자그마한 체구의 연주자가 공연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선율이 심장을 울려댄다. 무슨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선율, 악기 하나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무섭게 집중한다. 연주가 끝난 다음에는 휴우-하고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갈채. 연주자 혼자서 연주했던 고토공연을 네 명으로 확장시킨 공연을 이어간다. 선율이 풍성해지고 중간에 들어오는 검소 연주가 듣기 좋았지만, 단독공연이 더 인상적이다.
전통적이면서도 정적인 공연이 신비로운 동양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을 일본문화가 대변하는 듯하여 끝까지 아쉬운 마음이, 감동의 끝을 물고 늘어진다. 미국에서까지 일본 벛꽃축제를 볼줄이야. 이렇게 일본문화는 서구권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아시아문화로 자리잡아 계속해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지.
다소 정적인 공연이 끝나자 뮤지엄 앞에서 흥겹게 연주했던 공연팀이 등장한다. 두번째 본다고 그새 더 반갑다. 시야를 방해하는 사람들 없이 다시 제대로 공연을 감상하자, 한국의 사물놀이가 떠오른다. 흥겹지만, 한국의 사물놀이보다 못하다, 싶은 마음. 사물놀이를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얼마나 감동할까, 얼마나 신나할까.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라더니.
그렇게 한 시간정도 즐긴 일본전통공연이 끝났다. 미국에서 열리는 벚꽃축제 축하행사에서 일본전통공연을 벌였던 일본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의 마음에 떴을 자부심은 어떤 크기 였을까.
씁쓸함과 부러움은 여기까지, 축제는 즐겨라고 축제다. 봄을 여는 이 황홀한 꽃의 시작과 끝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 워싱턴에서 일본문화를 테마로 하는 행사가 많이 열리는 이유가 있다. 워싱턴 벚나무들 중 상당수를 일본이 선물로 기증했다고 한다. 한국도 일부 벚나무를 선물로 기증했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내막보다야 그저 벚나무가 많아서 신나는 마음이다.
그래서 워싱턴 벚꽃축제에도 벚꽃명소들이 있다. 첫 번째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제퍼슨메모리얼 근처다. 이곳에는 강변을 따라 벚꽃나무가 쭉 늘어서 있다. 강을 따라 흩날리는 벚꽃이 아름답다. 벚나무가 아니더라도 형형색색의 강렬한 꽃들이 모여 포토스팟을 만들고 있다. 봄에는 늘 관광객들이 넘친다.
작년에는 이 근처를 틈만나면 찾았었다. 강가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늘을 나는 새와 바람을 구경다. 왜 갈매기가 날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오리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강가에 모여들어 재롱을 부린다.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연날리기같은 벚꽃축제 행사도 열리고, 잔디밭 주변에 푸드트럭이 쭈욱 늘어서 있다. 행사 시즌이 아니라도 날이 좋은날이면 사람들이 잔디밭에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곳이다. 잔디밭에 앉아 벚나무를 보며 푸드트럭 음식을 즐기노라면, 봄날의 축제가 딴게 없다 싶다.
한 동안은 머물 봄날인데, 첫 차를 타야하는 분주한 마음으로 동동대며 급히 만든 허술한 도시락을 들고 벤치에 앉아 햇살과 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솜털처럼 사랑스러운 봄이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