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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Mar 12. 2019

그것은 정말 가운뎃손가락이었을까

미국에 살면서 생긴 몇 가지 강렬한 기억들.


미지의 영역을 특정 짓게 만드는 강렬한 기억들은 아쉽게도, 안 좋은 것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안 좋은 기억들을 빛의 속도로 잊는다는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저질렀던 죄들과 내가 나에게 지은 죄들,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저질렀던 죄들은 대부분 용서한 지 오래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축복받은 삶인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기억들은 서서히 미화되어 진다. 그래서 타인들도, 나도, 결국에는 다, 사람이라서 그랬고, 사람이라서 용서받는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데도 냉소적인 이유를 찾자면, 특정하는 대부분 영역의 코어들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리라. 사랑은 존재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나를 두고 바람피웠던 전 남친도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람은 악하다. 성악설을 믿는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고 1회용을 안 쓰려고 노력하며 스타벅스도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한다지만, 지구의 빙하는 결국 녹을 것이다.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됐다고 이 지구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


돈은 행복을 좌지우지하지 않지만 사는 것을 좌지우지하고, 사람들은 참 사랑스럽지만 대부분 믿을 수 없으며,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환경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할 테지만, 지구는 결국 멸망(인간 기준)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가.


커피를 마시다 불현듯 질문을 받는다면,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나라라서 배덕감이 들 정도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돈을 가장 신성시하는 나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속으로는, 안 그런 곳도 있나, 어차피 지옥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게 사람인 걸, 이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곳은 나를 차지하는 다른 영역들과 별반 다름없이, 사람들과 세상이 아름답고, 나무 사이를 스미는 햇살이 눈 부시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겹지만, 대부분 엉망이다.


어차피 엉망인 가운데 몇 가지가 더해져 봤자, 결국에는 활기차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가는 기운을 망칠 수가 없는 것이다. 진흙탕 위를 떠다니는 돛단배를 상상해 본다. 스피드를 포기했으니 바쁠 일은 없지만, 방수능력이 조잡하여 스며드는 꺼먼 물에 매번 속절없이 당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따사로운 캘리포니아 날씨를 만끽하며 걷던 날, 차가 우측에서 나오려 하길래 배려하고, 배려하며 넉넉하게 기다렸더니, 운전을 하던 사람이 나를 스치며 가운뎃손가락을 내민다. 토끼 눈이 되어 가슴이 또 쿵, 하고 떨어졌다. 그 사람도 나를 기다리고 나도 그 사람을 기다렸는데, 내가 너무 많이 기다려서 그 사람도 너무 많이 기다리게 되고 그래서 나에게 그랬나 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 그 날은 심장박동만큼 빠른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끅끅 울었다. 우는 것도 분하여 끅끅 거렸다. 그런데 하루가 흐르자, 에이, 설마 그게 가운뎃손가락이었을까. 햇살이 너무 눈 부셨잖아. 그래, 그래, 맞아. 잘 못 본 거겠지.


앞 손님은 봉투를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누가 봐도 봉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았던 그 편의점 직원은 기분탓 이겠지. 옷가게서 카드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랜덤으로 체크하는 신분증에 내가 걸린 것은 그날 운이 안 따랐던 거겠지.


(미국 공항을 통과할 때마다 절대 그냥 지나가는 법 없는 전신 스캔,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앞에 백인가족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붙잡혀 스캔을 당하는 굴욕감. 유독 유색인종만 붙잡고 늘어지는데, 기분탓은 결코 아니겠지. 아침조깅의 변태 노인 이야기는 브런치 가장 첫 번째 글에서 몽땅 쏟아 냈었다.)


참새처럼 심장이 빨리 뛰던 스무살, 한 손으로 움켜쥐면 팍, 하고 터질 것 같던 그 시절, PC방 알바생이었던 내가 인사를 할 때마다 매번 무시했던 어떤 아저씨를 보며, 아, 귀가 안 들리시는구나, 진심으로 믿었던, 그 시절의 마음이 떠오른다.




미국사회 전체를 품위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인종차별. 인종차별에 기생해 사회를 교묘하게 분리시키는 소득격차. 그런데 나는 자격지심이 더 싫다. 자격지심이야말로 스스로 만드는 지옥이다.


자기방어를 위한 석연찮은 결단력과 괴롭지 않기 위해서 투철하게 작동하는 1등급 망각능력, 어차피 엉망이고 엉망이 될 걸 알고 있다는 냉소적인 마음의 상승은 어마어마하다. 어제는 진흙탕물에 샤워를 했어도, 오늘의 하늘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 가득한 마음으로 미소짓는다.


무슨 죄 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기분이 나빴으니 죄인 것도 같으니, 너의 죄와 나의 모든 죄를 사하는 나날,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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