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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누구 Oct 01. 2020

너구려!

너구리 너였구나!

가장 가까웠던 너구리가 쓰러졌다.

가족들을 모두 불러, 그곳으로 갔다.

제철 과일을 밤 새 많이 먹어서 그런지

네 다리는 평행으로 같은 방향을 향했다.

마치 허공을 짚고 서있는 것 같다.


애도했다.



옷깆만 스쳐도 인연인데...

이 너구리는 우리 집을 즐겨 찾는 손님이었다.

그러니 인연이 깊다.


너구리는 어둠의 그림자 사이로 다니기 때문에

사람 눈에 쉽게 띄지 않아서 한 동안 몰랐다.

뒷마당의 무화과를 좋아했다.

무화과가 익어가자

밤이면 종종 뒷마당에 나타났다.


어느 밤, 강아지가 짖어댔다.

좀처럼 짖지 않던 녀석이라

처음에는 달을 보고 짖나 생각했다.

계속 한 곳을 응시하고는

꼬리를 바짝 내려 당겼다.


뒷 집에서 흘러들어오는 빛 사이로

쥐보다 훨씬 큰 그림자가 담장 위에 있었다.

어둠이 꿈틀댔다.

소름이 돋았다.

강아지는 옆에서 계속 짖어댔다.


플래시...

창고에 먼지 쌓인 플래시

존재 이유를 몰랐던 플래시가 그 빛을 발하는 순간,

어둠을 그림자 삼아 우리 집을 방문했던 너구리가 너였구나!

너구려!


전봇대와 너구리 그리고 무화과 나무(오른쪽)


도둑과 손님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있으면 도둑,

빛에 있으면 손님이다.


스포트 라이트를 화려하게 받아도,

밤쥐나 스컹크처럼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태연히 시선을 피하지 않는 너구리.

우리 집 손님이고 싶어 한다.

취하고 있는 자세도 귀엽다.

그저 무화과 열매가 먹고 싶은 손님이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불 끄고 강아지 데리고 들어갔다.

그 뒤로 열매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도 자주 강아지가 짖어 댔던 걸로 봐서,

몇 번은 더 왔다.

그렇게 눈 감아주고, 이웃으로 인정했는데,


그런 너구리가 오늘 도로 위에 누워있다.

그래서 가족 모두 너구려를 위로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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