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너였구나!
가장 가까웠던 너구리가 쓰러졌다.
가족들을 모두 불러, 그곳으로 갔다.
제철 과일을 밤 새 많이 먹어서 그런지
네 다리는 평행으로 같은 방향을 향했다.
마치 허공을 짚고 서있는 것 같다.
애도했다.
옷깆만 스쳐도 인연인데...
이 너구리는 우리 집을 즐겨 찾는 손님이었다.
그러니 인연이 깊다.
너구리는 어둠의 그림자 사이로 다니기 때문에
사람 눈에 쉽게 띄지 않아서 한 동안 몰랐다.
뒷마당의 무화과를 좋아했다.
무화과가 익어가자
밤이면 종종 뒷마당에 나타났다.
어느 밤, 강아지가 짖어댔다.
좀처럼 짖지 않던 녀석이라
처음에는 달을 보고 짖나 생각했다.
계속 한 곳을 응시하고는
꼬리를 바짝 내려 당겼다.
뒷 집에서 흘러들어오는 빛 사이로
쥐보다 훨씬 큰 그림자가 담장 위에 있었다.
어둠이 꿈틀댔다.
소름이 돋았다.
강아지는 옆에서 계속 짖어댔다.
플래시...
창고에 먼지 쌓인 플래시
존재 이유를 몰랐던 플래시가 그 빛을 발하는 순간,
어둠을 그림자 삼아 우리 집을 방문했던 너구리가 너였구나!
너구려!
도둑과 손님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있으면 도둑,
빛에 있으면 손님이다.
스포트 라이트를 화려하게 받아도,
밤쥐나 스컹크처럼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태연히 시선을 피하지 않는 너구리.
우리 집 손님이고 싶어 한다.
취하고 있는 자세도 귀엽다.
그저 무화과 열매가 먹고 싶은 손님이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불 끄고 강아지 데리고 들어갔다.
그 뒤로 열매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도 자주 강아지가 짖어 댔던 걸로 봐서,
몇 번은 더 왔다.
그렇게 눈 감아주고, 이웃으로 인정했는데,
그런 너구리가 오늘 도로 위에 누워있다.
그래서 가족 모두 너구려를 위로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