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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뷰리 Jul 28. 2020

행복하면 살이 찐다.

라고 쓰고 변명이라 읽는다.

소고기 떡갈비 그리고 물김치(동치미)


온갖 핑계를 대면서 음식을 거부하는 나와 갖은 수단을 써서라도 음식을 먹어버리는 .  안에 나는 이렇게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전자를 나는 비수기라고 부르며, 후자는 성수기라고 부른다.


"맞는 말 하네, 쳐 맞는 말"

오늘도 엄마는 아침밥을 먹기를 거부하는 나를 위해 미숫가루를 타 주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아 한두 모금 마시고 식탁에 내려놓았다.


"마저 다 먹어라(곧 미사일을 쏠 기세)"

"내 목구멍이 아직 아니래.. 너무 뻑뻑해서 그런지 넘어가지도 않아..."

"맞아 볼래..?"


이것은 28살 직장인과 50 몇 살인 엄마가 하는 대화가 맞다.




어릴 적 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밥을 먹지 않아서 부모님 속을 썩이는 아이였다. 엄마가 아이 숟가락에 밥을 얹어서 제발 한 입만이라도 먹으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쫓아다니는 광경을 티브이에서 보노라면, 하, 내가 왜 그랬지 싶다.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 억지로 먹는 것은 정말이지 지옥이었다.


심리적인 압박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혹은 '체할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모두 관용어구로 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사용하는 말이다. 누구는 태어나서 체해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툭하면 체하고 토했다. 특히 먹기 싫은 콩밥을 다 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어린 나는 그날 거의 죽을 상을 하고 식탁에서 몇 시간 앉아있었다. 우리 엄마도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 먹기 전까지는 밥상을 치우지 않았고 결국 나는 마지막 남은 콩을 모아서 먹고는 화장실에서 토를 해버렸다. 그러면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밥은 그냥 나오는 줄 아냐, 할아버지가 몇 달을 키우고 땀 흘려 키우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기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 (이하 생략)"


그렇게 억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 다수 연출되자 어린 나에게 식사 시간은 공포였고 지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도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미션이나 다름없었고 밥을 빨리 먹는 것이 힘들었다. 학창 시절 밥을 빨리 먹는 친구들에게 밥을 천천히 먹는 나는 민폐였으며 이는 직장생활에서도 계속되었다.

젓갈과 전복장 양념쥐포 그리고 미역줄기


그런데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니 내 페이스대로 조절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천적으로 어금니의 문제로 음식물을 분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던 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쫓기지 않고 끝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충만함을 가져다주었으며 동시에 살을 찌우게 했다.


마음이 편하니 살이 찐다. '살이 찐다'는 표현은 다이어터들에게는 죄악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관용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이다. 사전에 의하면, 땅이 비옥하고 재산이 늘어나며 사치스러워진다는 표현이다. 요즘 나는 불편한 일이 없고 큰 고민도 없는 것 같다. 나는 현재 성수기이다.




입던 바지가 맞지 않아

아뿔싸, 너무 행복했다. 올봄까지만 해도 입었던 청바지인데 잠기지 않는다. 엄마에게 다이어트 도시락을 요청해본다.


엄마, 저 간단한 도시락 말고 가벼운 도시락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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