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브런치 첫 글에서 조회수 13만을 얻었다.
글을 좀 써보지 그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그래서 귀담아듣지 않았다. 갑자기 나에게 글이라니. 매일 광고주와 매체사와 메일을 주고받긴 하지만 엄마가 말한 글은 이런 글이 아님을 안다.
"소설이든, 뭐든, 글을 한 번 써봐."
이게 얼마나 뜬금없는 소리냐면, 엄마는 내가 쓴 글을 읽은 적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어릴 때 드린 편지 정도.
철학을 배웠음에도 나는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독서토론이니 논술이니 철학교육이니 많은 교육을 받은 것 같은데. 워낙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다 보니 나는 잘하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잘하지 못하니 흥미도 없었다. 오히려 과학이나 수학을 잘해서 좋아했고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은 점점 두려워했다.
대학에 와서 알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논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논리력은 곧 수학에 기반한다는 것. 결국 다 같은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글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조금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글 쓰는 행위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을 때면 나체로 사람들 앞에서 걸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의 단편이 사라지기 전에 핸드폰 메모지에 짧은 글을 적어 모았다. 그리고 나만 봤다. 하지만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에 그치고 타인에게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특히나 가까운 사람에게 그랬고, 엄마에게 그랬다.
매일 보는 사이에 ‘존중’과 ‘예의’는 결여되기 쉽다. 특히나 가족이 그렇다. 방금 한 말을 후회하면서도 다시 언급해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고, 마음과는 다른 모난 말이 먼저 튀어나가 상처를 주는 말인 줄 알면서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성숙하기보다 나 편한 대로 행동해버린다. 그리고 뒤에서 후회한다.
엄마가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였을 때의 심중은 모른다. 그 와중에 나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기로 마음먹었고, 바로 브런치에 글을 써서 작가 신청을 보냈다. 한 번에 글이 통과되었고 첫 글은 감사하게도 3일 만에 10만 조회수를 넘겼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글을 잘 써서 조회수를 높게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재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었고 그 도시락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정성이 담긴 도시락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가 다 한 글이었다.
엄마 도시락이 조회수 10만 넘었어!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듣더니 한참 있다가 와서 물어본다. 그거 대단한 거 아니냐고. 나도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린 터라 이게 많은 수치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