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뷰리 Dec 31. 2020

엄마의 점심 도시락을 먹은 지, 벌써 일 년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모든 것

2020년 12월의 어느 날. 점점 국을 챙겨주셨다.
꾸준히 도시락을 챙겨 오는구나

12월 어느 날, 대표님이 나의 도시락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생각해보니 벌써 이 회사에 입사한지도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연봉협상 때 스쳐 지나가듯 인지하긴 하였지만 엄마가 싸주시는 이 점심 도시락을 일 년 넘게 먹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다시 놀랐다.


코로나19라는 너무 큰 변수로 인해 계획했던 모든 것을 실천하지 못했고, 미루어졌지만 그럼에도 올 한 해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엄마의 점심 도시락과 함께.

알록달록한 도시락


집순이를 밖으로 나돌게 했다.


천하의 집순이를 답답하게 했던 2020년이다. 집-회사-집의 무한 루프가 깨졌다. 운동을 즐겨하지 않고 최소한의 걸음으로 다니던 내가 퇴근하고는 꼭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사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나가지 말라고 대대적으로 공지를 하니 청개구리 심보가 발연한 것이다. 게다가 술을 즐겨하지 않음에도 술이 고파서 술을 마셨다. 생각보다 자주. 누가 그랬던가, 집순이도 자발적 집순이일 때가 행복한 거라고. 정말 그랬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도 1년에 1,2번 가던 여행이었다. 서울 밖을 나선다는 것 자체가 집순이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와 에너지가 드는지 공감하실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 마저도 용기를 내어 3달 전부터 계획하에 갔던 나인데, 어째서인지 불쑥 여행을 가고 싶은 한 해였다. 그래서 5월에 제주도를 갔다. 해외는 참 부지런히 잘 다녔던 것 같은데 제주도는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다녀온 것 같다. 올해 제주도 여행도 없었더라면 지금쯤 반 미쳐있을 수도.




안경쟁이가 안경을 벗었다.


안경 도수로 표기하면 양 쪽 시력이 -2.5였다. 매우 나쁜 축에 끼진 못하지만 안경 없이는 사람 얼굴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코로나의 필수템인 마스크와 함께 안경을 끼니 보통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눈 교정 시술을 마음먹었고 마음 먹은지 이틀 만에 바로 수술을 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올 한 해는 참 즉흥적으로 많은 것을 했다.)


여태까지 미루었던 이유는 단 하나, 공포 때문이다. 다른 신체도 그렇지만 특히 눈은 뭔가 모르게 건드리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이렇게 막연한 내면의 공포가 수술 당일 날 나를 쓰러지게 했다. 수술하고 나온 뒤 숨이 안 쉬어지고 계속 토가 나왔다. 간혹 긴장이 풀리면 이런 경우가 있다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얼마나 더 놀랐을까 싶다. 간호사가 계속 "주먹을 꽉 쥐어보세요"라고 말하는 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다 풀리고 그랬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수술이 내겐 너무 힘든 경험으로 자리 잡았고 주변에서 수술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냥 있는 대로 살아'라고 답한다..


물론 수술한 뒤 하루 만에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고, 지금까지도 무리 없이 잘 보인다. 마스크만 끼고 나가도 잘 보이니 이것만으로도 만족이다.


날이 점점 추워지자, 보온도시락을 구매한 엄마.


구몬 일어를 시작했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유튜브와 넷플릭스만 보는 내가 갑자기 형편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또 갑자기) 구몬 일어를 신청했다. 여름부터 약 4개월 동안 열심히 하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여행도 당장 못 가고, 지금 공부해서 써먹을 곳도 없는데...'. 그리고 그때 마침, 하반기 제안 시즌이 들어왔고 점점 구몬 일어 학습지가 밀리기 시작했다. 다들 아는 성인 구몬선생님의 카톡과 같은 상황에 빠지기 전에, 선생님께 내년 3월에 다시 시작하겠다고 연락드렸다. 고로 지금은 잠시 공부를 접은 상태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전 회사에서 한참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동네 미술학원을 1년 정도 나닌 적이 있다. 그림 그리는 행위가 꽤나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더라. 그래서 이번 하반기 제안 시즌에 맞추어 찾아온 스트레스를 위해 다시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듯하여 일부러 목요일에 다니기 시작했다. (통계를 내보니 목, 금요일에 가장 많이 마셨다..) 지금은 2.5단계로 미술학원 또한 쉬고 있지만 다시 상황이 좋아지면 꾸준히 다닐 계획이다.


시래기국과 오징어국


고양이를 입양했다.


2018년 1월, 14년 키우던 고양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뒤 끊임없이 고양이를 다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엄마와 함께 여름 한 달 동안 양평의 어느 보호소를 주말마다 다녔지만 인연이 닿은 고양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앞 카페에 보호 중인 고양이 두 마리 사진이 있었고 마침 보호소가 우리 집 바로 앞이었다. 운명이 따로 있을까. 바로 그 날 고양이들을 보러 갔다. 작은 두 마리가 서로 붙어서 애처롭게 있는데 당장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를 바로 호출해 허락을 받은 뒤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잘 지내는 중이다.


약 2년 몇 개월 동안 고양이 없이 살았다 보니 약간 낯설었다. 처음 고양이 키우는 집사처럼 유튜브에 온갖 고양이 영상을 시청하면서 공부를 했다. 14년 동안 왜 고양이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키웠을까. 그 정도로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마치 처음 키워보는 사람처럼 매주 동물병원을 들낙날락했다.


지금은 수많은 털들과의 전쟁이다.





사랑받는 조카네요

지방에 사는 사촌동생이 서울에 취업되어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낼 예정이다. 점심시간에 팀끼리 같이 나가서 먹거나 한다는데, 요즘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모두 편의점 도시락을 사 회사 안에서 먹는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엄마는 아침 일이 늘었다. 아침마다 두 개의 도시락을 싼다.


코시국이라 밖에서 밥을 먹는 것 자체가 무서운 요즘. 엄마의 도시락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점심 사 먹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