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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뷰리 Feb 03. 2021

망망대해에서 구토하기

내가 먹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는 경험

몸은 좀 괜찮아요?


2021년의 1월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듯싶다. 이렇게 한 달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극히 다양하고 고군분투하던 하루들이었다. 그리고는 1월 마지막 주 목요일, 모든 것을 토해버렸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었는데. 이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제는 사막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한순간 망망대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사방이 바다고 물고기였다. 어쩌다가 내가 바다 한가운데에 들어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수영도 못하는 나이기에 그냥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토한 내용물을 보니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오물에는 작사와 관련된 예민함이 있었다. 그리고 말을 못 하는 나에게 주어진 발표로 인한 긴장이 있었고, 체력이 좋지 않지만 촬영을 나가야만 하던 무기력함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외의 것을 발견했는데, (20대의 마지막이라는 것보다) 늘 기대하던 30살이 되기 전, 멋있는 30살이 되지 못할까 두려운 감정도 있었다.


구토한 날 점심도시락


병원에서는 생굴을 먹은 적이 있는지, 추운 곳에 장시간 동안 노출된 적이 있는지,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나는 모두 아니라고 답했다. 결국 물만 먹어도 토하는 이 증상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탈이 났던 1월의 마지막 주에 늘 그랬듯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고 저녁에도 집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 먹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두 눈으로 확인도 했다. 처음 토했을 때 토하기 직전에 먹은 저녁 음식과 새벽 내내 토할 때는 그날 먹은 점심까지.


모두들 '스트레스'때문이라고 했다. 현대인의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결론을 지어버리면 편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다들 그렇게 말해버리는 것만 같다.



1월이 되자마자 새해 목표를 부랴부랴 적어봤었다. 첫 번째 항목이 바로 '쓰레기를 먹지 말자'였다. 어디까지를 쓰레기로 정의할 것인가는 그날의 내가 결정한다. 생각해보니 잘 먹지 않았던 편의점 계란도 먹은 것 같다. 불닭볶음면도 먹은 것 같다...(먼산)


4일 내내 죽만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살기 위해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기만이었다. 나는, 꽤나 음식에 진심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주말 내내 '입짧은햇님'영상을 정주행 했다. 딴소리지만 생각보다 먹방이 도움이 되었던 게 4시간 내내 먹방을 보니까 속이 차는 느낌도 들었다.



오늘은 도시락 안 싸줄게, 죽 사 먹어


오래간만에 본죽에서 포장한 죽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 와중에 제일 좋아하는 '버섯굴죽'으로 주문한 뒤 10숟가락 정도 먹고 닫았다. 아직은 회복 중인가 보다. 다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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