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2009).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생각 숨 6호]
아들! 안녕!
우리 아들의 세 살 생일을 맞아 쓰려던 편지가 조금 늦어졌어!
벌써 우리 아들이 세 살이라니!
건강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씩씩하게 자라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매일 네가 천진하게 웃는 모습 덕분에
아빠 엄마는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은 그저 행복하단다.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아마도 이런 감정을 충만이라고 하나봐.
하루하루 우리 아들 덕분에 진심으로 마음이 충만해지고 있어.
늘 너무 너무 고마워!
그러니 지금처럼 그 순수한 웃음을 늘 간직해주렴!
아빠 엄마도 그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할게!
오늘 네게 편지를 쓰기 위해
네가 태어나고 한 달 뒤
너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고심했던
아빠의 메모를 다시 찾아 읽었어.
그때도 이 시간이었던 것 같아. 새벽녘.
네가 태어나고 난 뒤
아빠는 설렘인지 불안인지 모를 여러 감정들로
새벽녘 뒤척이다 잠을 깨는 때가 많았단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너의 이름에 대한 단상이 떠올라
부리나케 엄마에게 보내는 메모를 남겼지.
“토르의 새이름 정함.
동이틀(새벽, 밝을) 서
따를 율
하늘은 새벽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죠.
아마도 밤과 아침 사이,
새벽의 노력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새벽은 수동적으로 보면
그저 밤과 아침의 경계일 수 있는데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밤을 아침으로 만들어 주기위해
매일 같이 노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서율의 첫 번째 의미는
누구의 밤이든 밝게 빛나는 아침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는 것.
두 번째 의미는
토르 자신 역시
인생을 살아가며
어떤 밤이든 아침처럼 밝게 만들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천둥의 신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강한 아이
우리의 토르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21년 9월 30일
새벽녘
토르 아빠가
서율 엄마에게“
이렇게 토르가 서율이 되었단다.
서율아!
세 살의 우리 아들에게
아빠는 지금 아빠가 읽고 있는 책의
멋진 구절을 선물하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단다.
책의 제목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다.
아빠가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2년의 시간이 지났어.
석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곧 박사 과정을 시작하지.
대학원을 시작하며 아빠가 규칙적으로 시작한 게 공부와 함께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달리기란다.
아빠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상태의 몸을 가지고 있어.
매일마다 먹어야 하는 약이 있고, 매일마다 넣어야 하는 안약이 있지.
아침마다 서율이가 늘 궁금해하며 색깔을 묻는 그것 말이야.
그래서 체력도 약하고 눈을 오래 쓰면 아파진단다.
공부에 체력을 써버리니 서율이와 엄마와 놀 체력이 바닥나 버리더라고.
눈도 아프고. 그래서 방법을 찾아야했어.
눈을 계속해서 쓸 수 있고, 체력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말야.
그래서 아빠는 대학 연구실에 출근해 30분, 연구실에서 퇴근하며 30분을 정해
규칙적으로 걷고 뛰기를 반복하기 시작했어.
사실 달리기라고 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었지.
그렇게 시작한 쉼, 뜀박질이 어느새 2년여가 다 되어가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2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단다!
기록도 꽤 괜찮았지! 아빠 대단하지 않아?
아빠의 올해 목표는 5km를 쉬지 않고 달려보는 거야!
그동안은 '저기까지', '조금만 더'라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말야,
오늘 처음으로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 새들이 대화하는 소리,
바람이 비에 젖어 살짝 짜증이 났지만 해가 쨍쨍해지자 기분이 좋아져
살랑 나들이하러 나가며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소리도 들었단다.
햇살이 살며시 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모습도 보고,
나무가 젖은 몸을 바람에 탈탈 털며 개운한 모습도 보았지.
무라카미 하루키 아저씨의 이 책은 아빠보다는 더 많이, 그리고 더 길게, 더 오래
달리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야.
무언가를 많이, 길게, 오래 한다는 건 무척 대단한 일이지.
이 아저씨는 직업이 전업 작가야. 글을 쓰는 사람이지.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기도 해. 글을 쓰는 재능을 가져 부럽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 아저씨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단다.
"평범한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훈련에 의해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시켜 간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자질을 재능의 대용품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견뎌 나가'는 사이에 자신 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재능과 만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능은 자신에게 없다며
자신은 달리기를 통해 견뎌 나가는 힘을 길렀고 그 힘 덕분에 글쓰기의 재능을 키웠다고 말이야.
서율아. 아빠는 우리 서율이가 견뎌 나가는 힘을 배웠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힘을 통해 원래 가진 재능과 더불어 숨겨진 진짜의 재능을 찾아 발휘하기를 바라.
달리기를 비롯해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하는 습관은
우리 서율이에게 엄청난 보물을 여는 열쇠가 될거야.
세 살하고도 네 번째 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서율이!
아빠는 이 아저씨의 책을 읽으며 한 단어가 계속 떠올랐단다.
추동.
추동이라는 단어는 물체에 힘을 가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본래의 뜻이 있어.
아빠는 우리 서율이가 추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추동하는 사람이란 아빠 생각에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뜻하지.
"살아 있는 몸을 통해서만이, 그리고 손에 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야만,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일단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꿔놓아야만 비로소 납득을 할 수 있다.
지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적인 인간인 것이다."
앞으로 서울이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동안
모든 감각과 지혜를 통해 마음껏 몸과 마음을 통해 익히는 사람이 되길!
사물의 본질을 납득하고 파악하는 사람이 되길! 기원할게!
언제나 언제나
건강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길!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소중히 하길!
서율이 아빠가 -언제나 함께하는 엄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