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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요기 Jul 05. 2018

자기답게 빛나기 위한 호흡. 글쓰기와 요가

요가,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

[월간숨 창간호] 


요가,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 

-시작. 자기답게 빛나기 위한 호흡  


김성아(요가스튜디오 숨 대표)


처음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이었습니다. 공부가 억수로 하기 싫었던 전, 중학교 담임 선생님께 당당하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부모님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직도 기억나는 담임선생님의 따귀 한 대!

정확히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제부터 수업 시간 공부를 안 해도 좋으니 무슨 책이든 가져와 읽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등교 전날 당시 유행이었던 책대여점(책방)에 들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제 독서 인생의 최절정기였던 것 같습니다. 후 인생의 지침이 될 ‘슬램덩크’, ‘드래곤볼’, ‘더파이팅’. 그리고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등 다수의 고전 일본 만화’책’을 섭렵했고, ‘드래곤라자’, ‘묵향’, ‘가즈나이트’ 등 당대 중, 고등학생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판타지, 무협 소설을 탐독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니 읽을 책도 동이 나기 시작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만화와 소설 속 세계가 현실과 다르다는 충격적인 인식! 마법사가 될 수 없으며, 축지법을 쓰며 담벼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자기 인식을 하게 된 거죠. 저라는 인간을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 중학생인 저에게 이 현실 인식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것과 다름없는 대변화였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한 세계를 그리는 책에 심드렁해지기 시작했고, 고전 소설이란 것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졌고, 더불어 선생님의 꾐 덕분에 독서감상문이란 것도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때 평생 글쟁이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저의 직장은 요가스튜디오 숨, 직업은 요기(요가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너무 큰 간극이 생긴 것 같죠?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간극에 대한 것입니다. 어쩌면 글쓰기와 요가라는 맞닿지 않을 것 같은 두 영역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이 대화로 요가로의 여행의 대장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준비되셨나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싱그럽던 중학생, 음침했던 고등학생을 거쳐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글읽는 법, 글쓰는 법,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엇인지 목말랐습니다. 기형도, 이상, 김수영, 이용악, 들뢰즈, 칸트, 데카르트, 가라타니 고진, 베르그송, 스피노자, 니체. 시와 영화, 철학에 빠졌습니다.

아마 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엄청난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 단순한 글쟁이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글쟁이가 되자! 그리고 저는 다큐멘터리, 라디오 토론 대본을 쓰는 구성 작가가 됐고, 시간이 지나 신문사 기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자연스레 암환자가 됐습니다. 환자라는 표현보다 암세포를 가진 사람이 됐다는 게 더 좋은 것 같네요. 녹내장을 가진 사람이 됐고, 길버트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됐습니다. 마치 하나의 직업처럼. 암을 치료하는데 1년이 걸렸고, 길버트 증후군을 극복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녹내장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한쪽 눈은 수술을 해 크기가 다른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됐습니다. 암보다 녹내장 진단 당시의 상담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담당 교수가 종이를 꺼내 그림 하나를 그려 주었습니다. x축이 나이, y축이 시력이었습니다. 곤두박질치는 시원스런 직선을 긋고 y축의 직선은 곧 0에 수렴하다는 방정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와 집안에만 콕 박혀 있다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날 때쯤 시작한 것이 요가였습니다.

탱자탱자 할 일 없던 저는 아침에 수업을 들었는데 첫 수업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 아침에 누가 요가 수업을 들을까라는 생각에 느긋하게 학원에 가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남자 탈의실은 감사하게도 밖 어느 구석에 있었습니다. 수련실 문을 열었는데 20명 정도의 여성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여성이 많은 곳에 가면 울렁증이 생깁니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며 ‘멘붕’이 되는 볼빨간 숫기 없는 남성이 되는 거죠. 행여 이 분들의 기분을 거스를까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구석으로 가 앉았는데. 수근수근.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생애 첫 요가 수업의 기억입니다.

쑥스러움도 잠시 이내 이 여성들과 친해졌고 자연스레 요가에 집중하고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요가는 저에게 한 순간의 예외도 없이 고통이었습니다. 수련을 하고 나면 삭신이 쑤신데 도대체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는 상태의 연속이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것처럼 낯선, 저의 근육과 뼈를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 요가는 저에게 그런 운동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 요가를 깊이 배울 수 있었고 바다 건너 미국에 가 좋은 선생님의 선생님을 만나 요가의 철학, 호흡법, 아사나(동작)의 올바른 자세 그리고 명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와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요가란 무엇일까?  

저는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안약을 넣고 그리고 약을 먹습니다. 곧 또 안약을 넣습니다.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몇 시간마다 안약을 넣고 또 약을 먹고 몇 시간 후 안약을 넣고. 자기 전 또 약을 먹고. 안약을 넣고.

지금은 그 횟수가 줄었지만, 몸이 아프기 시작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저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었죠. 왜 나에게만? 왜 지금 나는 이런 모습이지? 예전엔 이 정도는 문제 없었잖아?

체력도, 시력도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른데도 전 그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못했다가 맞을려나요? 요가를 하며 배웠던 것은 마주하기였습니다. 고통스런 순간을 마주하기, 고통스런 나의 몸을 마주하기.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리기. 천천히.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나의 몸을 마주하며 마음을 마주하는 연습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뻗음이란 자유이고, 자유는 이완을 가능하게 한다.” 《요가 수행 디피카》, B.K.S 아헹가, 58쪽


제가 매일 수련하는 에카탈라 요가의 수리야 나마스카 연속 동작 중 첫 번째 자세입니다.  

숨을 마시며 천천히 척추를 뻗고 팔을 뻗습니다. 처음엔 목에서 숨이 턱 막혀 가슴으로 배로 호흡이 이동하지 않습니다. 흉추도 우두둑, 경추도 우두둑, 어깨는 굳어 팔이 뻗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잠시 숨을 마시고 내쉬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천천히 한 뼘 더 뻗습니다. 그럼 방금 전 그토록 나를 괴롭게 했던 고통이 이완되며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몸이 자유로워지며 천천히 자신의 숨을 그리고 자신의 몸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뻗은 만큼 새로운 고통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함정입니다.

요가란 무엇일까. 아니 정확히는 저에게 요가란 무엇일까. 뻗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고 호흡하는 것이 아닐까요.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이 오면 더 나아가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자. 마시고 내쉬고. 그리고 이제 다시 뻗어 보자. 그리고 다시 나아가보자.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요가 디피카》, B.K.S 아헹가)라고 불리는 요가 자세입니다. 시르사는 머리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입니다. 살람바는 지탱하다는 뜻입니다. 머리를 지탱하는 동작이란 뜻이죠. 시르사는 왕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 요가의 아사나 중 가장 중요한 자세로도 손꼽힙니다.

처음엔 어깨가 경직되고 손, 정수리에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럼 발끝이 천근만근 무거워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순간이 지속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견디고 인내하며(물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겠죠?) 반복해 연습하면 자세의 중심인 배를 근간으로 호흡이 이동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부터 경직된 어깨, 손, 정수리가 자유롭게 조금씩 움직이고, 발끝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집니다.

글쓰기에서 요가로의 간극, 요가와 글쓰기의 대화. 저에게 글쓰기란 고통스럽지만 너무나 기쁜 행위입니다. 이 순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트 위에 서 수련을 시작하는 게 너무나 힘겹습니다. 매일 뻗어야, 고통스러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글쟁이 요기라는 두 영역의 대화 사이에 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고통스런 순간이 많습니다. 한 우물만 파라는 주위의 매서운 눈길도 많네요. 하지만 저는 저답게 또 숨을 마시고 내쉬며 또 한 뼘 내딛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뼘 뻗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요?

숨이 턱턱 막혀 힘겹게 서 있지는 않나요? 잔뜩 움츠린 어깨로 어딘가 앉아 한숨을 쉬고 있지는 않나요? ‘저걸 완성해야해’ 하고 무리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진 않나요?



이제 잠시 숨을 돌려 하늘을 한 번 바라보면 어떨까요? 마시고 내쉬고. 들어가고 나가는 나의 호흡. 거칠고 짧은 호흡에서 천천히 천천히 잔잔해지는 숨들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 숨들과 함께 나를 마주했으면 합니다.

바로 지금 그 호흡. 자기답게 빛나기 위한 노력의 시작. 드디어 당신도 요가로의 여행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디서든 잠시 눈을 감고 나의 호흡을 들여다 보기로 해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딛고 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시도하는 모든 노력이 반드시 당신을 더욱 빛나게 할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오늘도 한 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빛나는 미래를 향한 당신만의 호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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