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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Oct 29. 2017

NICU, 힘든 삶의 시작

실습 일기

NICU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많을까? 사실 나도 본과 3학년이 되어야 처음 들어본 말이다. 학생들끼리는 니쿠라고 보통 이야기하고, 약자는 neonatal intensive care unit이다. 중환자실을 의미하는 ICU와 Neonatal이 합쳐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소아과 입원환자 목록을 보면, 다른 분과에 비해 NICU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상대적으로 성인 환자에 비해 요구하는 병실 면적도 적고, 입원의 indication을 만족시키는 환자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끝날 듯 끝나지 않는 NICU 회진이 시작된다.


NICU 회진을 돌 때, 처음 보는 학생은 머리가 아득해지기 시작한다. 아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에 임의의 시간에 우는 아기가 생기고, 그런 반면에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 간의 회진은 평화롭게 진행되며, 20명이 넘는 아기들을 하나하나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 체크하고, 특히 문제가 되는 아기들은 더 보게 된다. 여기서 끝나면 학생 입장에서는 참 좋겠지만, 아기를 한번 한번 직접 만나보아 진찰을 해야 한다. 그냥 한 바퀴를 돌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적게 걸리겠지만, 교수님께서는 무균 가운을 한 벌 한 벌 입어가면서 회진을 도신다. 입원환자 수가 많고 회진 자체의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 니쿠 애들 회진 아직도 안 왔네.'라고 다른 조들이 말하는 것이 일상이다.


레지던트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NICU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레지던트 4년차 때 자신이 관심이 있는 두 과 혹은 한 과를 선택해서 돌게 되는데, NICU만 1년 하기는 조금 기피된다는 말을 실습 중 여러 번 들었다. 입원환자도 정말 많고, NICU는 특이하게 시간마다 환아를 평가하는 종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과들에서 한두 장 정도로 입원환자를 정리하는데 비해, NICU는 회진을 준비하는 데에만 종이 뭉치가 들어가게 된다. 교수님들께서도 한 장씩 넘겨가시면서 회진을 도시고, 그렇기 때문에 준비할 내용이 많다. 


레지던트 선생님과 학생은 NICU라는 과 자체가 정말 힘들게 다가오지만(레지던트 선생님이 훨씬 더), 오랜 기간 입원 중인 아기와 부모에게는 이 순간이 정말 힘들게 다가올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다른 부모들처럼 태어난 아기와 만남을 할 수 없고, 떨어져 있는 채 하루하루 보내기 때문에 힘들 것이고, 아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시작해보려는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고 있기 때문에 힘들 것이다. 아기들의 이유는 각각 다르겠지만(의학도 블로그니까 의학 이야기를 하자면, 저체중아, 태변흡입 증후군, 호흡곤란 등 여러 이유들이 있다) 힘겹게 세상에 나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오늘 퇴원해도 되겠다.


NICU 회진을 돌 때는 만감이 교차한다. 많은 환자 때문에 머리도, 다리도 아프지만 한 명 한 명의 진단명을 보면 아기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싶으면서 마음이 아프고, 그리고 그 와중에 '오늘 퇴원해도 되겠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나오면 갑자기 행복해지기도 한다. 임상의학 수업시간 중 짧은 시간 때문에 아기들의 병명 하나하나 깊게 못 공부하고 짧게 넘어갔지만, 여기 있는 환자들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 하루하루 힘들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NICU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NICU에 있었다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 신생아실에 있었던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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