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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Oct 30. 2017

이식의 딜레마

실습 일기

이식외과의 수술을 볼 기회가 있으면 보는 편이 좋다고 선배들과 교수님들께서는 늘 말씀하신다. 신장이식과 간이식이 있는데, 특히 간이식이 case도 적고 귀중한 경험이 된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이식 수술을 참관할 기회뿐만 아니라, 운이 좋게도 스크럽 할 기회 역시 얻을 수 있었다. 국내의 이식 대기자들이 장기 기증의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 자신의 몸이 꽤 망가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잘 체험할 수 있었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수술 시간이 길었지만, 안에서 보기에는 한시가 시급한 수술이었다. 이식 수술 이야기는 동영상도 많고, 나는 단 하나의 수술만 경험했기 때문에 이 이상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식외과에서 외래방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해 주고 싶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식을 해 줄 때.


소아가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 부모들은 대부분 당연하게 이식을 결정한다. 소아가 다른 장기에 대해서도 질병을 앓고 있다면, 부모들은 그 부분도 이식을 해 주고 싶어 한다. 신장과 간 등, 한정된 장기만 이식이 가능하다는 데에 안타까워한다. 이식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간이식이라면 큰 흉터가 생기고, 신장이식이라면 나머지 하나의 신장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듣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런 말을 듣는 시간에 빨리 수술을 해 달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식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은데 이식이 가능하니 참 축복이다고 말한다. 소아가 선천적인 질병을 가져 이식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단지 그가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여기고 남은 몸을 떼어주고 싶어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한 범위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이식을 해 줄 때.


나도 맨 처음에는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 교수님께서도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 한번 네가 그 상황이라고 생각해봐'라고 말씀하실 정도이다. 과연 처음 읽는 사람이 내가 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식의 입장이다.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이다. 효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식의 시기가 늦어질수록 효도를 할 기간이 줄어든다. 부모님을 오래오래 뵙고 싶다. 부모님께 이식을 해 드리고 싶고, 그동안 자신이 왜 그 장기를 좀 더 건강하게 쓰지 못했나 걱정한다. (대부분 신장이나 간이니, 신장을 건강하게 쓰려면 저염식을 해야 하고 간을 건강하게 쓰려면 금주를 했어야 한다.)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이식을 준비한다. 자식의 입장은 누구나 이해를 할 것이다.


부모의 입장이다. 자식은 이식을 해 주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고, 자식이 흉터를 가지거나 한쪽 신장으로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거기다가 무조건 자녀를 통한 이식은 필요 없지 않은가. 기부받아서 이식하면 된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얻을 수 있다. 간이 그때까지만 버텨 달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신장의 경우에는 투석을 최대한 믿어 본다. 그런데 자녀들이 자꾸 이식을 해 주려고 한다. 아니, 필요 없다니까.라고 말해도 이제 다 커서 말을 안 들으려고 한다. 살 만큼 살았다는 말에도 평균수명을 말하면서 같이 오래 살자고 한다. 그래서 같이 병원에 가기로 했다. 교수님께서는 내 편을 들어주시지 않을까.


그렇게 부모와 자녀가 이식외과에 오게 된다.


교수님께서는 어느 편을 들어주기도 애매하다. "자녀분이 이식을 해 주시면 이점이 정말 많이 있지만, 굳이 이식 대기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원하시면 어쩔 수 없죠. 가족분들이 상의를 해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긴 상담의 결론은 이런 식이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돌아간다. 아까의 대화를 재구성해보자. 


"교수님, 대체 자녀분이 이식을 해 드리겠다는데 왜 그러실까요?" 

"네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 봐라. 자녀의 장기를 받고 싶겠니?"


차라리 이식이 부모-자녀 간에 불가능했다면, 아니면 Living donor가 카데바보다 이식에서 갖는 이점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관점에서의 가족회의는 쉽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식 장기 기부는 주는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은 많지만, 가족 간의 이식에서는 주는 사람은 주려고 하고, 받는 사람은 안 받겠다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교수님께서는 "이식 준비 환자 뒤에 있는 여자분이 며느리인지, 딸인지 알 수 있다. 네가 이걸 맞추면 이식외과 외래는 다 비슷한 내용이니 이제 볼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을 이해하기까지 너무 삶의 기간이 짧았다. 모든 진료 현장이 이상적인 의학과 맞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니,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공감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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