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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Oct 31. 2017

백문이 불여일견

실습 일기

오늘은 제목이 너무 난해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다른 과들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다. 특히 외과에서는 모든 수술 과정이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쓸 내용을 말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혈액종양내과의 이야기이다. 


내과는 여러 분과들이 있고, 4년 차(이제 3년 차)가 되면 자신의 분과를 정해야만 한다. 소화기내과가 가장 인기 과이고, 심장내과, 호흡기내과도 꾸준한 편이다. 소화기내과는 내시경 기술 때문에 인기가 많다는 소문을 의대 입학 전부터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소화기내과의 4년 차 전공의나 펠로우 명수는 다른 과들의 몇 배이다. 한편, 내가 PK를 돌 때의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과는 혈액종양내과가 있었다. 교수님들께서도 이를 아셨는지 다른 과를 갈 사람이 대부분이고, 아마 우리 학번에서도 혈액종양과를 올 사람은 극소수니까 의사로서 꼭 알아야 하는 것만 공부하도록 하라는 주의로 교육을 하셨다. 국가고시 시험문제도 늘 나오는 데서 나온다는 말과 함께. 병원의 AML, ALL, CML, CLL 환자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보다 IDA, 철 결핍성 빈혈에 대해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공부하고 시험을 쳐 보니, 말씀해주셨던 내용이 맞다. 혈액종양내과는 국가고시 시험 위주로 공부하면 행복한 과이다.


국가고시 내용대로 하면, 혈액종양내과는 학생에게도, 환자에게도 행복한 과이다. 학생은 혈액암, 다른 말로, 백혈병을 가진 환자는 약으로(항암제이거나 말거나, ATRA=tretinoin과 Gleevec=Imatinib만 알면 많은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 치유 가능하고, 골수이식을 통해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교수님은 그런 학생들을 위해서 백혈병 입원 환자 한 case를 공부하고, 면담하게 한다. 이제껏 통원치료도 가능하던 다른 암들과 달리, 혈액암의 무서움에 대해서 알게 된다.


가시고기 만화나 소설 에도나 오듯, 항암제를 맞거나 골수이식 준비를 하면 머리가 빠지게 된다. 머리 가빠지는 것은 다른 항암제도 마찬가지겠지만, 혈액암은 다른 점들이 있다. 사람 얼굴이 창백한 등 general appearance가 다른 것을 보게 되고, 환자와 면담을 할 때도 환자에게 감염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일 백혈구 수치를 주시하며 백혈구 수치(정확히 말하자면, ANC)가 낮아지면 감염을 주시하는 등 외줄 타기를 한다. 1년 동안 발표한 타 과의 case는 CBC count(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수치)가 없던 적도 있었고, 대부분의 과에서 발표자료를 만들 때 복사와 붙여 넣기를 해서 마무리하는데 혈액종양내과에서는 CBC에 매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더 쓰자면 얼마든지 있는데, 항암제의 부작용이 뚜렷한 편이고, 환자가 힘이 빠지는 것이 대체적으로 느껴지고, 혈액암은 혈액이 온몸을 순환하므로 기본적으로 4 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고, 교수님께서도 환자가 골수이식을 해야 하는 유전자형인지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아니면 환자가 몇 년 뒤 재발을 할 것인지에 운에 맡기게 되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과들을 돌면서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거의 없다. 질병을 이기는 주체는 사람이 되어야지, 신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진료를 보신다. 하지만 혈액종양내과는 '신'에 대해서 교수님들과 많이 이야기했다. 어떤 교수님과는 신을 믿는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신과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의 논의로 시작하였다.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이 뭐라고 할 수 없지만, 혈액암을 주로 보는 입장에서 신을 믿는 행동이 최소한의 방어기제, 또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자신과 환자의 미래에 대한 해석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운에 맡기는 편보다 신께서 정해주신다고 하는 행동이 더 마음 편하지 않은가.


이렇게 열심히 써도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애초에 내가 긴 시간 동안의 병실의 상황을 글로 적어낼 만큼 달변가도 아니기도 하다. 글로 많은 내용을 알았더라도, 직접 보면 다른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혹시라도 주위에 혈액암이나 백혈병 환자가 있다면, 글로 본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눈으로 본 사람의 입장으로서 진심으로 기도해줄 것을 부탁한다.  


P.S 구작 발행이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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