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일기
산부인과 주제로 뭘 쓸지 고민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헤매었고,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예진' 대신 무슨 주제를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고, 수술실에서의 기억, 분만실에서의 기억을 꺼내도 아직 글로 쓸 만큼의 주제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외래에서 Pap smear를 받는 환자분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고, 자동으로 HPV에 '관련된' 경험들이 떠오르게 되었다. 정말 모호한 말이라 보고서를 쓸 때가 아니다면 자제해서 사용하지만, 정말,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Pap smear
Pap smear와 내진은 환자 입장에서 피하고 싶은 검사이다. '굴욕 의자'와 질경 때문이겠지. 그래서인지 대학병원에서도 탈의실이나 주위 환경에도 많이 신경을 써 주는 편이다. 검사가 얼마나 낯선 환경인지는 다른 기사들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고, 많은 경험담들이 있기 때문에 넘어가고, 실습생의 입장에서 써 보겠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은 환자에게 다가가는 걸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의자를 밀어서 다가간다.'라는 말을 보았는데, 실습생도 역시 마찬가지. 발소리를 죽여서, 교수님께서 환자에게 뭔가 말하고 있을 때 다가간다. 근처의 레지던트 선생님이나 간호사인 것처럼. 환자 바로 뒤에서 Pap smear나 colposcopy의 모습을 보고 있어도, 의자의 각도와 환자의 시야를 완벽히 가리는 천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걸리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있는다. 참관이 끝난 뒤 환자는 탈의실로 가고, 학생은 교수님과 나간다. 환자는 눈치가 빠르지 않다면, 외래 때 교수님 옆에 있었던 학생이 검진 때도 있던 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오신 환자 분들께 학생 참관과 관련된 이야기 없이 들어가서 봐서 죄송했다. LEEP(자궁경부 원추절제술)을 받는 환자를 뒤에서 보았을 때 절실하게 느꼈다. 교수님께서는 '바로 끝나는 거니까 오늘 하고 가시면 돼요'라고 하셨고, 나는 뒤에서 보면서 '와, 간단하게 끝나는 시술로 생각했는데, 피도 나는 시술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환자분 역시 무섭기도 하고, 피가 나서 닦는 중이라고 하니 원래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통증도 아예 없지 않을 것이라서 공포심과 고통이 배였을 것이다. 뒤에서 보면서 정말 죄송했던 경험이었다.
HPV
외래 참관을 많이 하다 보면, 교수님께서 HPV(인유두종 바이러스)와 자궁경부암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는 과정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HPV는 여러 암의 인자이고, 감염하는 사람이 많은 바이러스라고 느끼게 되었다. 또, 통계상으로 자궁경부암의 99% 이상에서 HPV DNA가 발견되었고, HPV 백신을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점에서 자궁경부암과 밀접한 바이러스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미 사실상 Pap smear 결과가 좋지 않으면 HPV 검사를 바로 하는 수준이니까.
그렇게, 가다실
가다실을 맞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HPV 백신은 서바릭스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가다실 9가가 가장 범위가 넓은 백신이기 때문에 가다실 9가로 결정을 하였다. 첫 번째 맞았을 때는 조금 아프긴 하였지만, 독감 백신 철이라 같이 맞았기 때문에 그려려니 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백신은 면역반응을 강화하기 위한 부스트 백신이기 때문에 아팠다. 첫 번째 맞았을 때는 단기간에 맞은 부위가 아팠는데 두 번째는 근육통처럼 나타났다. 그래도 여러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를 6년까지 지속적으로 예방했으니까.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예방 기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아픈 건 둘째 치고, 가격이 너무 비쌌다. 내 몸보다 통장이 아팠다.
'관련된' 기억들을 줄줄이 써보았다. 각각에 대해서 할 이야기들은 많지만, 메인 디쉬가 아니라 애피타이저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서 애피타이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메인이 되기 조금 부족한 소재들을 하나둘씩 꿰어서 써 보았다. 본과 2학년 수업 중 산부인과 교수님이 가다실이나 서바릭스를 맞은 사람들을 조사하였고, 사람 수가 적다고 확인하신 교수님께서 남녀 관계없이 맞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설마 내가?'라고 생각했다. 한편, 본과 3학년, 실습을 통해 HPV의 위험성에 대해 배우고,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암과 관련성이 있는 것을 알게 된 뒤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실습이 실생활로 정말 밀접하게 이어진, 의사라면 건강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만 아직 돈이 없는 학생이니 지갑에 대해 정말 밀접했던, 그런 경험이었다. 이제는 이미 나간 돈은 잘 보이지 않고,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그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