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amour, 사랑)는, 치매에 걸린 한 여성의 소멸과 이별 과정을 통해서 감각기관인 눈으로 본 것을 어떻게 지각적으로 판단하는지, 혹은 지각적인 것이 시각을 어떻게 선택해 보려는지(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되는지)에 관한, 우리 시각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일깨워 주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방향은 두 가지다. 감독의 의도대로 자신의 시각 방식을 확인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해석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영화를 보고 영화의 내용에 관해서 적어본다면 좋을 듯하다. 그런 다음 이 글을 통해서 자신의 시각 방식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이 글은 영화를 본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서 쓴 글이기는 하지만,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시각 방식을 확인하게 하는 것들은 유럽의 역사와 개념, 미술사를 통해서다. 유럽의 과학혁명과 풍경화라는 장르가 확립됐던 두 개의 사건과 익숙하면서도 낯선 “관습적 대답”이라는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관습적 대답”이라는 개념을 설명한 뒤에 서양 미술사에서 풍경화가 등장하게 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관습적 대답
한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앎의 최대치이며 의심의 여지없이 삶을 실제화하게 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것들을 관습적 대답들이라 한다. 변화에 매우 배타적이며 완강한 관습적 대답들은 구성원의 개인적 의문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이 사회적 의문으로 확장되면서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짧은 시간 급격하게 변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다른 사회의 관습적 대답에 의해서다. 한 사회가 개인적 의문들에게 강요한, 때로는 개인적 의문들이 사회에 저항한 폭력의 흔적이기도 한 관습적 대답은 다른 사회의 관습적 대답과 접촉했을 때 변화하는 것을 문명의 충돌이라는 과격한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문화적 영향이라는 덜 폭력적인 말로 불리기는 하지만, 한 사회가 또 다른 사회에 변화를 강요하거나 촉구하는 방식에 의해서다. 때로는 강요가 없다 하더라도 관습적 대답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다른 사회의 영향 때문에 너무나도 달라진 삶의 환경에 개인적 의문들이 자신들의 오랜 관습적 대답에 설명을 요구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을 경우다. 대략 200년 동안 아시아에서 벌어진 일이다.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 이후 인류 문명의 선구적 역할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바뀌었다. 이 역전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동양은 서양의 과학과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이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이유는, 서양의 관습적인 대답들만을 배우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됐던 것일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서양의 과학혁명으로 인류의 현재가 만들어졌으며 그것을 설명하는데 관습적 대답들은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 유용함은 종교적 믿음과 같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동양의 국가들은 교육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서양의 관습적 대답들을 전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지금을 파악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 안에는 선명한 미래적 비전이라기보다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만회할 수 있다는 막연하고 희미한 불명확함이다.
격차를 좁히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더 이상 뒤떨어지지 않기 위한 조바심에서 시작된 서양 배우기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동양이 서양에 오랫동안 앞섰던 기술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답을 모두 암기하고 뱉어내는 방식이다. 기술적 토대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미 동아시아는 이 방법으로 서양을 압도했었다. 과학적 대답들이 서양보다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부족함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극복해 냈다. 그럼에도 이 격차는 지속되고 있다. 관습적 대답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질문을 발견한 어떤 시선에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오백 년 전 르네상스 이후로는 그리 신뢰할 만한 말은 아니다. 이 말에는 앎의 영역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모르는 영역의 역할이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때문이다. 모름의 영역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의 “아는 만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말이 좀 더 적합할 듯싶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던 것처럼,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발견은 다르게 보는 방식이다.
회화의 원근법이나 사물과 인체 비율과 같은 것은 다르게 보려는 것에서 부수적으로 나온 것들이다. 다르게 보는 시선의 발견은 관습적 대답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문과 대답을 찾아냈다. 서양의 관습적 대답들이 미래의 우리 현재와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관습적인 것 밖에서 질문과 답을 찾았기에 미래로 연결되었다. 17세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어떻게 찾아냈을까. 지금에야 관습적 대답들에 속하지만 동시대에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 시선을 통해서 다르게 보면서 발견한 것들은 정치, 종교, 사회적 전통에 기반한 관습적 대답들과 과격하게 저항하기도 하고 성실하고 끈질기게 버텨내며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심하고 사려 깊은 시선의 유연함과 끊기 있게 집중했던 다르게 보려던 시선의 힘이 필요하다.
그들은 예술에서 시선의 힘을 얻었다.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힘을 얻게 된 동기는 세상과 자신에 관한 질문을 통해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닭이 계란보다 먼저이듯 대답보다 질문이 먼저다. 질문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시간이 걸리고 완전한 답은 아닐 지라도, 답은 구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과학혁명을 이끌었던 과학자들에게도 질문을 발견하는 시선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 곁에는 시선의 높이와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예술 작품이 있었다. 17세기 유럽에 미술관이 세워지자 왕과 귀족이 아니더라도,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미술관에서 대중들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대중들이 미술관을 이용하게 되면서 세심하고 극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시선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면서 과학 혁명은 준비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에게만 이런 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가와 어떤 창조자들뿐만 아니라 대중 모두에게 필요하다. 사회 변화는, 그것을 미세하게 감지하게 된 것에 관해서 사회 전체의 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관해서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감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이며 그 기본적 토대를 쌓아 주었던 것은 과학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시각예술에 있다. 지금도 시각예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를 들여다보게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으면 좋겠지만, 우리 곁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각예술의 하나인 영화가 있다.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개인적 의미의 한 사건을 영화화해서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각 개인들이 관습적 대답에 갇혀있다면 그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영화 안에서 풍경화를 보여주며 관습적 대답에서 벗어난 시각을 요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관습적 대답에 갇힌다면
미술은 미적 체험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어떤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용되기도 하는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상이 그들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비난하지는 않는다. 사실적인 묘사보다 역사적 가치와 상징을 체감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미를 너무 과도하게 관습적으로 사용한다면 그 인물을 대표하기보다는 상징성에 인물이 흡수되기도 한다. 그러너프의 조지 워싱턴의 조각상(1840년)을 보면 신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전해주는 모습을 조지 워싱턴이 헌법을 미국인들에게 전해주는 모습으로 재현했다. 조지 워싱턴의 위엄과 권위를 그리스 신의 이미지에 가깝게 표현하여 민주주의의 상징에서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았다. 서양인들 모두가 관습적 대답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조각상을 통해서 어떤 인물의 가치와 평가를 인식시키려 했다면 플랑드르 화가 얀 호사르트가 그린 노부부의 초상화에서는 다른 것을 환기시키고 있다. 초상화의 의뢰자로 보이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 수많은 모험담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굳게 다문 입, 부를 거머쥐었다는 성취감 가득한 손, 그렇게 자신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했겠지만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생명력의 빈곤인 늙음이다. 아마도 그가 초상화를 의뢰한 이유는 이런 해석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너프의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어떤 성취를 영원히 기리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너프의 조각상과 얀 호사르트의 초상화의 공통점은 관습적인 모습이 후세에 자신들의 생각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우리는 분명 그들의 관습적 생각에서 벗어난 시간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관습적 대답에 갇혀 있거나 벗어나려는 시선과 대답을 찾고 있을까? 개인적 의미를 가진 어떤 사건과 의문을 사회적 의미로의 확장을 생각하면서 개인들에게 내재된 관습적 대답들과 마주하게 한다. 이것이 미카엘 하네케 감독 영화 아무르의 의도이며, 그의 의도를 따라가다 보면 드러나게 되는 것이 각자의 시각 방식이다.
미술이 그랬던 것처럼 현대 시각예술인 영화도 관객에게 어떤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도 치매에 걸린 한 여성에 관한 흔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회피해 온 문제를 통해서 사랑의 시선과 같은, 다소 정치적 의식과 같은 자기 문제화를 거쳐 자기 내면화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치매와 존엄사, 간병과 같은 것들이 여전히 관습적 대답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영화는 관습적 대답이 아닌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과 같은 시선을 통해서 어떤 질문과 대답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당신이 답을 구하는 곳은 어디인가.
풍경화
영화 아무르를 통해서 자신의 시각 방식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시선이 필요하다. 영화는 미술가의 시선처럼 공간을 설정하고 장면을 나열해 서사를 만들어 시선을 끌어들인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가져온 영화 포스터를 보면 남편이 아내와 시선을 일치시키려 한다. 이 한 장면으로 영화가 왜 사랑에 관한 내용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에 관해서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외부로 떠나지 않는다. 안드레아 만테냐(1431 – 1506년)의 파르나소스가 그렇다.
안드레야 만테냐, 파르나소스, 1497년경, 루브르 박물관
그림에 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보면, 날개 달린 페가수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신화를 주제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홉 명의 여인들이 누군가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그 위에는 무장한 군인과 나체의 여인이 레몬나무 앞에 함께 서 있으며 좌측에는 화난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림 밖으로 시선이 나오지 않는다. 아홉 명의 여인들 발 밑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토끼와 부의 축적을 상징하는 다람쥐가 그려져 있다. 그림에 나타난 것들을 대략적으로 문자로 표현한다면 즐거움, 사랑, 다산, 재산의 증식, 다툼이다. 이것과 가까운 의미를 갖는 것은 결혼이다. 누구의 결혼식이었을까. 그림에 관한 정보를 얻을 차례다.
베네치아군의 지휘자로 프랑스 샤를 8세를 물리쳤던 만토바의 군주이자 안드레아 만테냐의 후원자였던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와 이사벨라 데스테의 결혼식을 기념해 제작된 그림이었다. 그림 중앙에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그의 아내 비너스가 파르나소스산에 올라 있는 모습을 그렸고 아래에는 아홉 뮤즈들이 아폴론의 연주에 맞춰 마르스와 비너스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춤을 추고 있다. 페가수스 옆에는 다산의 신인 헤르메스를, 마르스의 형제이자 불의 신인 불카누스가 그려져 있다. (한국 설화 콩쥐팥쥐 후속 편과 매우 닮은 이미지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이 파르나소스인 이유는, 자신의 딸을 겁탈했다는 이유로 포세이돈의 아들을 죽인 아레스가 재판을 받았던 곳이 파르나소스의 아폴론 신전에서였다. 또한 아홉 명의 예술의 여신들이 파르나소스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테냐가 파르나소스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상상에 의해서 그렸을 것이다. 아레스와 비너스에 관한 아폴론 재판과 아홉 명의 뮤즈들을 통해서 파르나소스가 된 것이다. 그림이 어느 쪽부터 생각하고 그려졌는지 대략 짐작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뮤즈들의 그림자를 통해서다. 아폴론부터 네 명의 여신까지의 그림자와 그 중간의 세 명의 여신, 그리고 춤을 출 것을 권유하는 듯한 오른쪽 여신과 마지못해 참가하는 여신들의 그림자 각도가 다르다. 좌측 네 명의 여신 그림자가 65도 정도라면 중간의 세 여신의 그림자는 45도 정도이다. 우측의 여신 두 명의 그림자는 15도로 그림자가 가늘고 길게 그려졌다. 한 폭의 그림 안에 시간은 동일하게 정지되어 있어야 하지만 만테냐의 생각에는 정오를 지난 시간부터 저녁노을이 생기기 전까지 결혼식이 진행된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만테냐의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신이 풍경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신들에 의해서 장소가 밝혀진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초기에도 그림에서 풍경은 기독교나 신화를 위한 상상의 공간이었다. 사실적인 풍경의 모습을 그려내려는 의식이 싹튼 것은 16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플랑드르 화가들에게도 자연은 신의 손길이 닿은 종교적인 공간이면서 시각적 사실이 중첩된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 공간이었다. 요약하자면, 르네상스 이전과 초기까지 종교적이며 관념적인 상상의 공간이었던 풍경은 16, 17세기에 이르러 사실적인 풍경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도가 있었으며 18세기 이후에야 지금의 풍경 자체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헤들레이 성을 위한 스케치, 존 컨스터블, 1829년
장르적 확립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관념과 종교적 층을 다른 것들이 대체했는데 존 컨스터블의 그림에서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탬즈 강변을 서성이던 그에게 태풍이 지나간 잿빛 하늘과 허물어져가는 헤들레이 성은 그의 마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컨스터블의 풍경화에서 관념과 종교적 층을 기상현상과 같은 자연현상과 그에 감응하는 감정이 대체 했음을 알 수 있다.
헤들레이성을 위한 스케치를 보고 있자면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리라는 시가 떠오른다. “바람이 구름으로부터 불어와, 나의 애너벨리를 싸늘하게 죽인 것이다”, 존 컨스터블과 마찬가지로 에드거 앨런 포에게 있어서 하늘은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에 관한 과학적이며 종교적인 공간이다. 인간의 생사가 초월적 존재의 주재인지 자연현상인지는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그들의 감정도 싸늘하게 식은 것이다.
이제 영화에서 제시하는 풍경화를 볼 차례다. 당신의 정신이 정상적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어떤 그림들을 보여주고 설명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만테냐의 그림에서 신들에 의해 풍경이 밝혀진 것처럼 영화를 통해서 당신의 시선이 밝혀질 것이다. 감정적인 시선일 수도 있고 과학적일 수도 있다. 그리 권장할 만한 시선은 아니지만 관습적 대답일 수도 있다. 혹은 이 세 개의 층이 얽혀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영화를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밝혀진다. 당신의 시선을 볼 차례다.
아무르(Amour, 사랑)
영화는 여주인공 안느를 통해서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과정을 보여준다. 아내를 간병하는 남편의 지고지순한 희생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이별을 위한 준비이며 자녀는 이별의 증언자와도 같다. 영화에서 각각의 질문들은 여섯 개의 풍경화로 제시되고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제시한 첫 번째 감상할 작품을 “기억의 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머지 그림들을 감상에서 저마다의 시각 방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가 우리에게 풍경화를 제시한 이유이며 그 안에서 각자의 물음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누군가는 다른 것을 찾아내겠지만, 그가 던진 첫 풍경화에서 찾아낸 것은 사랑 혹은 삶은 생각과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이 아닐까라는 물음이다.
기억의 숲
숲 속의 두 여인이 등장하는 첫 번째 그림을 보면 한 여인이 꽃을 꺾는 듯 보이며 다른 여인은 지켜보고 있다. 숲 속의 꽃을 통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두 여인의 기억 속에 이 아름다운 시간은 언젠가 잊힐 것이다. 생의 한 부분을 채운이 시간이 훗날 선명하게 떠오르기 위해서는 꽃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 저 시간을 망각의 세계로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억할만한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이은영, 망각은 없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망각은 없다"라는 이은영 작가의 작품을 보면, 아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와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진 아기 때의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 모두 지워진다. 왜 그런가. 아기의 일상은 감각적인 시간들이다. 매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허기는 기억될 사건이나 지각적인 것이 아니라 해소되는 시점에서 사라지는 감각적 충동일 뿐이다. 기억은 강렬한 사건을 통해서 각인된다. 사랑을 확인하는 육체적 감각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양식화된 인생
같은 시대에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직장, 가정 안에서 노년으로 소멸해가는 과정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를 보면 사람이 죽으면 그가 죽었음을 그에게 끊임없이 말해준다. 더 이상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며 저승이라는 소멸의 세계로 갈 수 있게 인도한다. 시체가 부패할 무렵부터 벌판에 고인의 육체를 방치해 살과 뼈를 분리한다. 남겨진 뼈는 골수를 먹으려는 독수리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뜨려 깨트려진다. 그렇게 존재는, 소멸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도 티베트인들과 사후 세계관이라거나 인생관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삶의 완성은 소멸까지로 보았다. 생전에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 곳에 묻히고, 그를 기억할 만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그의 무덤도 사라진다. (한국의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통해서 고인의 영원성을 부여하고자 풍수지리라는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았다. 특이한 점은 한국을 침략한 중국과 일본은 종묘나 신사를 통해서 영혼의 영원성을 부여하는 작업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인간 존재의 완성은 삶과 죽음의 전 과정을 통해서다. 죽음에 관한 양식화된 의식인 장례식을 통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생명의 평등함을 전하며 존재는 소멸한다. 생의 출발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소멸이라는 종착지는 모두 같다.
사라진 관계들
화창한 어느 날 산책을 나갔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장대 비를 맞기 전의 낭패감에 엷은 미소를 지었던 난처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기억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시간과 장소, 자연현상이 세상에 한 번 펼친 광경은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삶도 매 순간 일회성이지만 그렇다고 감격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자연의 경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감정도 매 순간 내 안에서 만나는 일회적인 순간들이다. 존 컨스터블의 헤들레이 성을 위한 스케치가 태풍이 지나간 순간을 그렸다면 다음 그림은 비 오기 전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 그 순간은 단 한 번 찾아온다.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이름을 태풍이 오기 전과 같은 “사랑이 오기 전”으로 했다.
사랑이 오기 전
삶은 고단하고 외롭다. 희망대로 되는 일도 없으며 사소한 문제였던 것이 커다란 문제가 되어 당혹감에 눈물을 지어야 하는 일도 찾아온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불행은 경이롭 다기보다는 공포다. 그것을 견뎌내게 했던 친구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의 우정과 존경, 사랑이 오래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자연현상처럼 인간 현상도 끊임없이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에 관한 희미한 기억들은 폐가의 흔적과 같다. 모든 사랑의 기억이 아름다움으로 남겨지기보다는 흉측하게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 그림은 평온한 일상과 같은 모습이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삶과 죽음
아침에만 사는 버섯은 밤과 새벽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가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명하기 때문이다. 초나라의 남쪽에는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5백 년 동안 봄으로 삼고, 또 5백 년 동안 가을로 삼는다. 더 오래전에는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천 년을 봄으로 삼았고, 8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는 팽조(하은주에 걸쳐 800세까지 살았다는 인물)가 장수한 인물로 유명한데,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장자 내편 소요유, 우리 삶의 비율은 자연과 꼭 같지는 않다. 자연에 맞추려는 의식이 있을 뿐이다. 길면 잘라내고 짧으면 늘리는 형벌과 같은.
영화에서 제공한 그림들의 비율을 보면 하늘과 땅, 혹은 바다로 양분되어있다. 그림들을 보자마자 생각난 것이 장자의 소요유 편이었다. 봄과 가을에 여름의 푸르름과 시듦의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자연이다. 하지만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봄에 살고 있다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생명체는 죽음을 감각적으로 의식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의식 안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재빠르게 떨쳐내려는 것이 동물이다. 그래야만 생존과 생식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동물은 죽음에서 달아나려는 것은 같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죽음을 양식화해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두 노인을 등장시켜 늙음과 죽음을 양식화했다. 영화는 그 자체를 감상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도 시간에 따라 변형된다. 신혼부부의 공간, 아기를 키우던 공간, 노인이 된 공간은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늙어간다. 늙음의 공간 안에 가득한 것은 활동의 흔적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남겨진 기록들이다. 노부부의 공간은 책과 음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영화에서 가장 협소한 공간이 부엌이다. 두 접시와 물컵, 소금병 하나로 가득 채워지는 작은 식탁은 얀 호사르트의 노부부의 초상화처럼 엇갈린 부부의 시선, 빈곤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생명력을 얻기 위해 푸르른 채소와 붉은 핏빛 음식을 먹는다 해서 죽음을 피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이 글이 시작되게 한 그림이자 감독이 제시한 마지막 그림은 프랑스 어느 바닷가의 풍경이다. 감독이 왜 이 그림을 제시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글이기도 하다. 이 그림이 대가의 그림이든 평범한 작가의 그림이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 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이 균형 있게 그려진 관념적인 시선이다. 인간은 자연을 원형 그대로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을 떼어내 보고, 보고 싶은 만큼 재단하고 다듬어 본다.
장바티스트 르노, 디부타데스와 양치기 소년
코린토스라는 지역의 한 소녀가 떠나는 애인을 기억하기 위해 부지깽이로 소년의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서양 화가들에게서 회화의 기원이라 회자되는 한 장면을 그린 장바티스트 르노의 그림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어떤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잊은 사람을 연인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린토스의 소녀 디부타데스처럼소년과의 사랑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은 기억이다. 우리는 이렇게 보고 기억한다. 기억할만한 것들이 모여 관습이 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제시한 이유는 명확해진다. 관습적 대답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관습들을 알아야 한다고. 플랑드르 화가들이 풍경화에서 시도한 것은 종교화나 역사화에서의 복잡하고 경직된 사고가 아닌 시각적 자유의 즐거움이었다. 자연이 그들의 소유였던 부를 축적한 시민들이 늘어나고 풍경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풍경화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종교나 역사적인 관념적인 것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이었고, 당대의 새로움은 현재 우리에게 고전이라는 관습 속에 포함되었다. 여러 관습들이 플랑드르 화가들에게 모여들어 새로운 시각 방식을 제시해준 것처럼, 이제는 관념과 자본이 아닌 개개인의 자유로운 시선을 요구해야 하며, 사랑과 죽음에 관해서 도덕적인 성찰이나 관습적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에 자유로운 시선을 획득해야 한다고 하네케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분명한 점은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 내면에 있는 관습적인 것들을, 자연이나 인간에 관한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점이다.
Ps – 존 버거의 “초상들”에서 “관습적 대답”이라는 용어를 가져왔다.
지난 글, “팀 버튼의 상상 미술관”에서도 몇몇 용어들을 제임스 홀이나 존 버거의 책에서 가져왔지만, 각 개념들은 글의 필요에 따라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됐을 수도 있다. 단어들의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색을 만드는 안료처럼, 생각의 빛깔을 만들 때도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다음 편은, 관습적 대답에 가장 저항적인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살인마 잭의 집을 준비했으나, 영화를 아직 접할 수 없다. 시골이라 마땅히 DVD구할 곳도 없고해서, 미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