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그리다
미술사를 보면 연대기적인 나열로 되어 있지만 때론 여러 사조가 동시대에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색채주의(후대에 인상주의로 정립된)가 그렇습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계의 지지를 얻지만 아카데미 미술에 반발하기 시작한 색채주의(인상주의)는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낭만주의 화가들이 동시대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것이 더 수월했습니다. 명예와 부를 위해서도 아카데미가 지지하는 낭만주의 화풍으로 그려야 했습니다. 이 두 사조의 대립에서 갈팡질팡 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들라크루아였습니다.
낭만주의는 고전적인 선과 색을, 인상주의는 색 자체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들라크루아 사후에(프랑스 판 1932년, 미국 판 1937년) 발간된 그의 일기에 따르면, 색채주의 화가들과 떠들썩하게 언쟁을 벌이며 고전주의적 선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카데미 회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시류에 순응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어이 아카데미 회원에 뽑히게 됩니다. 아카데미 회원에 뽑히게 해 준 왕의 훈장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보들레르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아카데미 회원이 된다는 것에 왜 그렇게 집착한 이유를 물었더니, 돈 걱정 안 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특혜를 준 프랑스 왕정과 아카데미의 엘리트주의를 옹호하던 그는 민중이라는 집단을 매우 혐오했으며 귀족과 엘리트들이 국가나 사회 그리고 학계와 예술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을 오해하게 하는 그림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그림을 보면, 프랑스 국기를 하늘과 가장 가까이, 아니 하늘과 같이 그렸습니다. 그의 신념대로 프랑스라는 국가를 드높이기 위해서 그린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국가를 전복하려는 민중을 우호적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기를 여인이 들고 민중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기를 중심으로 보면 색이 앞장서고 국기를 매단 나무 막대는 국기를 떠 받치고 있습니다. 들라크루아가 그렇게도 옹호했던 고전주의적 선이 인상주의의 색에 패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색채주의보다 더 거부감이 심했던 것이 여성의 사회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서는 여인이 그 국기를 들고 있습니다. 색채주의의 승리뿐만 아니라 당시 남성들이라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부장적 사회가 전복된 모습입니다. 예술가라면 대개 여성에게 무척 호의적이었지만, 들라크루아는 예외적이었습니다. 여성 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스캔들이 없었으며, 그의 모델이 되어준 여성도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은 집안일과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생각은 들라크루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프랑스혁명을 성공시킨 민중과 여성을 옹호하려 그린 것이 아니라, 그냥 그가 보는 시대 상황이 그렇게 보였던 것일 뿐입니다. 그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세상이 어떻게 나아갈지 정확하게 짐작한 것입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본 자와 보였던 시대의 극적인 대립이 이루어지는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입니다. 그렇다고 봉준호감독이 들라크루아처럼 가부장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성들은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기생충에서는 그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 것을 재현했을 뿐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기생충의 서사와 관련된 것보다든 주로 시각적인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래서 들라크루아를 먼저 이야기한 이유기도 합니다. 들라크루아처럼 봉준호 감독도 세상이 보인 대로 영화에 재현했다면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대로 보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상상력으로 현실을 그려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죠.
그림이든 영화든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고 너무나 당연해서 쓸데없이 긴 말일 수도 있지만, 기생충이 창조해낸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시각적 태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시각적 태도를 인식한다는 것은 본 것을 우리가 지성과 감각이라는 두 방식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알고 본다는 것입니다. 지성적 인방식은 본 것을 의식의 재구성으로 개념화해 파악하는 것입니다. 감각적인 방식은 과거의 감각을 떠올려 현재화해 느낀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두 방식은 모두 학습의 정도와 자극의 빈도라는 경험에 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개별적인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봉준호의 기생충은 관객 모두가 같은 것을 보지만 동일하게 알게 되거나 느낄 수는 없습니다. 저마다의 경험에 근거해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생충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작품을 다시 보면 다른 것이 보이거나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라 하더라도 지루해지는 이유는 지성적 이해와 감각적 경험을 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걸작이라 평가되는 작품들은 그 두 가지가 충분해서 언제고 다시 보더라도 지루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난이라는 공간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봉준호 감독이 제시한 기태 가족의 가난은 냄새와 배고픔으로 느끼게 되는 감각적 세계입니다. 좁은 방안에 온갖 물건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아무리 많은 물건들이 저장되어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본다 하더라도 쉽게가난을 시각적으로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은 그래서 물리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거리감을 가지게 하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듯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 가난한 공간은 기택 가족의 감각으로 채워지고 교감하는 공간이면서 관객의 마음을 밀어내는 곳입니다. 이 곳이 감각의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기우의 친구가 가져온 수석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수석이라는 사물은 의식의 재구성을 통해서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수석은 이 공간에 그리 썩 환영받지는 못합니다. 그들에게 수석이라는 사물보다는 배를 채워주는 먹거리가 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먹을 것을 사 오는 게 낫지 않았느냐는 푸념의 대사 장면은 관객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가난이 요구하는 것을 재 환기시킵니다. 수석은 시대에 자신만만했던 구스타프 쿠르베의 돌깨는 사람들을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앉아 피자 박스를 만드는 장면은 자본주의의 속성 한 가지를 팝아트 작품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앤디 워홀이 브릴로 상자로 대량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속성과 평범한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미학적 질문을 던졌다면, 봉준호는 피자 상자를 통해서 앤디 워홀의 질문에 “무엇을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을 더했습니다. 피자 상자는 피자를 담는 그릇과 같은 용도만이 아니라 피자의 맛과 향이 최고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피자 박스는 맛과 향이 없지만 피자를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경험을 환기시켜 줍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먹기 싫어져서 피자와 상자 모두를 버렸다고 생각해 보면, 피자는 상할 것입니다. 먹다 남은 상한 피자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자의 피자 사진은 그대로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가장 맛있었던 피자를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피자 상자의 역할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실제의 상품을 소비하는, 그리고 다른 구매자에게 소비하게 하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제품들 모두는 대단히 상징적인 것들입니다. 모두가 아는 것이지만, 소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즉각적인 즐거움을 위한 자발적인 행위기도 하지만 부추김에 떠밀려 하게 되기도 합니다. 들라크루아도 그랬습니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지 못했던 들라크루아는 지속적으로 색채 주의자(인상주의)들을 비난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서 그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추긴 것은 그가 받은 훈장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파티에 참석할 때는 늘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참석했다 합니다. 훈장은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말을 할지 상대방에게 알리는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신고전주의와 달라서 우리는 그를 낭만주의 화가로 기억하지만 들라크루아 자신은 고전주의 화가로 여겼습니다. 그가 색채 주의자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더라도 훈장은 그를 고전주의자로서의 책임을 잊지 않게 했습니다. 들라크루아에게 훈장은 아카데미의 옹호자라는 보증서와 같은 심리적인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논쟁의 상대방 입장에서 들라크루아의 훈장은 악의 보증서와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프랑스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는 저항정신의 모범으로 여기고자 했는데 왜 그렇게 학술원 회원이 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보들레르가 그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들라크루아가 말하기를 학술원 회원이 되면 “한 팔이 망가져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학술원이 선생 자리를 줄 수도 있으며 커피나 담배 값 정도는 제공해 줄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화가로서의 명예도 중요했겠지만 그에게는 금전적인 이유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들라크루아의 훈장과 같은 악의 보증서인 위조한 재학 증명서를 가지고 부자 집을 찾아갑니다.
과외를 하게 될 자격을 증명해 준 것은 친구의 추천입니다. 증명서는 처음부터 필요 없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왜 동생 기정을 통해서 재학증명서를 위조했을까요? 여기에는 봉준호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훈장과도 같은 학력을 어쩌면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위조하는 기정의 손을 보여주면서 화가 한 명을 암시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미국의 표현주의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입니다. 앤디 워홀이 발굴해낸 바스키아는 80년대 빈부의 격차와 인종 차별과 갈등 문제, 마약과 같은 암울했던 미국을 표현했던 화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바스키아의 지지자였던 워홀이 죽은 뒤 그의 죽음을 너무나도 슬퍼한 나머지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마약을 과다 복용하다 27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정이 미술과외를 맡게 된 다송이 그린 그림은 바스키아의 오마주(찬양)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인종 문제였를 연상시키기 위해서 다송이에게 인디언 흉내를 내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가 기우의 친구 민혁이 과외를 알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면 시각적 맥락은 WiFi를 찾다 뒤샹의 샘과 같은 화장실 변기에 기우와 기정이 나란히 앉는 장면에서 다다이즘을 연상시키면서 시작됩니다. 서사와 시각적 맥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건은 박사장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부자 집을 찾아가는 길목은 회색 빛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처럼 보입니다. 이 회색은 미술관에서는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해서 다음에 볼 그림의 색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하는 미술관의 벽과 같은 용도입니다. 길의 모양도 흥미로운데, 종종 미술관으로 가는 길과 같이 곡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호기심과 조바심으로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시야가 도달하지 못해서 빨리 도달하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직선으로 되어있으면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거리가 실제로 멉니다. 보인다 하더라도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직선거리는 희미하게 보인 대상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 대상도 멀다고 생각되고 느껴져서 조금 먼 거리에서 대충 훑어보고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의 호기심과 조바심은 그리 길게 유지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희미하게 보이게 하는 직선보다는 아예 대상을 감추고 호기심과 조바심을 높이면서 금세 만나게 해주는 곡선이 더 관객에게 흥미와 재미를 줍니다. 곡선은 직선보다 감각적인 거리와 물리적인 거리가 짧습니다. 기우가 부자 집을 찾아가는 장면은 봉준호 감독이 우리를 미술관으로 안내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지 확인해 보러 갑시다.
입구에 들어서니 대나무가 보이네요. 아주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이 대나무를 의도적으로 장식해 놨다면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 겁니다. 그 의도는 아무래도 대칭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햇살 좋은 날 나뭇잎이나 풀잎을 태양빛에 뒷면을 비춰 보면 알게 되는 것인데, 나무 잎을 보면 비대칭적입니다. 인간의 발걸음처럼 좌우가 한 발짝씩 내밀며 성장해 갑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좌우가 정확히 대칭적입니다. 기택(송광호)의 집 창문 앞에 자라던 풀잎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칭은 균형과 닮음으로 해석되는데 기택과 박사장의 가족이 대칭을 이룬다는 암시 같군요. 하지만 대칭은 나뉨으로도 해석됩니다. 나르시시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울을 예로 들자면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자기와 닮아 있지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전혀 별개의 존재입니다. 환영이죠. 실제와 환영이라는 이 둘의 만남은 나르키소스처럼 불행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대나무는 어쩌면 불길한 징조일 수도 있겠네요.
영화와 관계없는 말이지만, 한국의 전통 신앙에서 귀신을 내쫓을 때에 대나무에 물을 적셔 귀신 들렸다는 사람의 몸을 때려 구마 의식을 하기도 합니다. 그 의식도 마찬가지로 대칭적인 것이 아닌 것을 떠나게 하려는 의미입니다. 환영을 물리치려는 것이죠. 그게 썩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집을 보러 계단을 올라갑시다. 시야가 탁 트인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군요. 저 멀리 능선도 보입니다. 집을 보니 어디선가 많이 봤던 집 같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아 보입니다.
통제와 배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잔디밭 스프링클러(Lawn Sprinkler)”와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의 배경이 된 집을 참고해서 지은 집 같습니다. 호크니의 건축양식이라면 선과 색의 통제와 배제입니다. 전에 보았던 잠깐 보았던 능선은 배제될 것입니다. 집의 모양을 만드는 선은 색을 잘 통제하고 있습니다. 색을 통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과 구별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배제시킵니다. 선이 색을 통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색에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색이 더 큰 면적을 차지하면서 색의 우월감을 자랑하게 해 주거나 더 부각시켜줍니다. 호크니의 선과 색은 통제와 배제의 관계이면서 서로의 영역과 역할에 관해서 조율되고 타협합니다. 그렇게 해서 호크니의 선과 색은 관람자의 시선까지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크니의 그림은 아주 잘 통제된 느낌이라서 마음의 안정감을 줍니다. 또한 보여주려는 것 이외에는 아주 과감히 배제되어 있어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첨벙(splash) 시리즈의 하나인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에서는 분명 뭔가 벌어졌습니다. 풀장에 누가 뛰어들었거나 어떤 물체가 물속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사람인지 물건인지는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집의 안정감으로 보자면 휴식을 즐기는 사람이 다이빙을 한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수영을 하는 남자를 그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박사장의 앞마당에는 스프링 쿨러와 풀장이 사라졌군요.
호크니는 물의 속성을 그려내려 했습니다. 단지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물의 성질과 빛깔에 관심이 많았고 어떻게 그려야 할지 늘 고심했습니다. 첨벙과 같은 그림 속의 물은 일화적입니다. 단 한순간 발생하는 사건이고 그 모습을 똑같이 재현해 내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스프링클러와 같이 지속적으로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물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잔디밭 스프링쿨러는 낮 동안에는 흰색으로 보였다가 밤이 되면 검은색이 되기도 합니다. 또 조명에 따라서는 여러 색으로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물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은 그대로이면서 다른 것들에 의해서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호크니에게 있어서 물은 환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풀장은 사라지고 다송이의 인디언 천막이 있군요. 저 천막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현관을 지나 계단 옆 부엌으로 향하는 벽을 보니 가족사진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다송이가 바스키아의 작품을 모방한 그림도 있군요. 개구쟁이 다송이가 갑자기 기정에게 고분고분 해졌는지에 관해서는 영화상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궁금증은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만남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주 권위 있는 사람이 친근하게 대해준다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내를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커다란 고양이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거실에도 비슷한 작품이 걸려있네요. 그러니까 가족 중에서는 누군가 개보다는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양이가 아니라 개를 키우는 것은 개를 더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충직함과 통제 가능한 개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2층의 좌측에는 다혜의 방이 우측에는 다송이의 방이 있습니다. 기우가 과외를 맡게 될 다혜의 방에 들어가 보니 풍경화 한 점이 걸려 있습니다. 다혜의 방을 나와 다송이 방으로 향하니 문 앞에 다송이의 그림이, 그리고 방 안에도 바스키아의 작품을 모방한 그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무례한 생각이겠지만 작품들을 돈으로 평가한다면 가장 저가의 그림은 커다란 고양 그림입니다. 저가의 인스턴트 음식인 짜파구리를 맛있게 먹던 아이들의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 같습니다. 정물화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그림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집에 전시된 그림 중에서 저가의 그림이라는 것이지 보통의 소득 수준에서 감당할 만한 가격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다혜의 방에 걸려 있던 풍경화입니다.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고 어둡습니다. 장난스레 그려진 것 같은 다송이의 그림이 가장 값비싼 그림입니다. 아이가 그려 볼품없는 그림이라며 거저 준다고 한다면 아주 감사히 받아 들고 오십시오. 바스키아의 1982년 자화상 작품은 최근에 수백억 원(668억 원)에 거래되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가치있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은 다송이의 생각이겠죠. 언제든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으니까요.
황금알 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를 곧바로 부화시키는 알이 있기는 했습니다. 마그리트의“새장 속의 알”이라는 그림이 그랬습니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마그리트가 아내 조제트가 키우는 카나리아의새장을 보고 생각해낸 것이 새장 속을 가득 채운 알이었다고 합니다. 마그리트도 새장 속의 알이 왜 떠올랐는지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는 알을 보면서 새를 그렸다고 합니다. 알 안에서 새가 하늘을 꿈꾸며 날개 짓 하는 시각적 환영을 보면서요. 그런데 새장 속의 알이라는 그림에서 어느 것이 새의 집일까요? 사람들 입장에서는 새장을 새의 집이라고 생각할지도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새의 입장에서는 새장도 그렇다고 알도 집이 아닙니다. 어미 새가 되어 새끼 키울 둥지가 집일 것입니다. 마그리트의새장이야기는 영화의 처음 시작 장면에 관해서 말하기 위해서 꺼낸 이유입니다.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보입니다. 영화의 시작 장면을 보면 새장 같은 선풍기 앞 커버에 양말을 걸어 놓았습니다. 기택의 집은 가족 구성원들이 일을 해야 집이라는 의미가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휴식이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집이 아닌 것을요. 감독의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천장에 매달린양말 자체만으로도 배고픔이 무엇으로 향하는지를 특별한 설명 없이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기택의 집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기택의 집을 포함에서 네 개의 집이 등장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각의 거주지는 시대에 따른 주거지의 변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폐쇄된 지하벙커는 오래 전 구석기시대의 동굴을, 다송이의 인디언 천막은 수렵 목축 시대의 이동식 주택을, 기택의 반 지하 집은 농경시대의 집을, 박사장의 집은 산업화를 넘어 현재의 자본주의 시대의 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재해나 맹수들로부터 몸과 시선을 은폐시키기에 가장 좋은 곳이 동굴입니다. 하지만 동굴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맹수들에게 저항하고 경쟁할 수단이 생기면서 인간은 동굴에서 나와 벌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맹수들은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 먹이사냥의 경쟁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맹수는 마주치지만 않으면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때로 맹수는 종교나 사회적인 이유로 인간의 사냥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맹수의 대립은 시간이 중재해 줬습니다. 시간은 배고픔을 달래주기는 커녕 보채기만 할 뿐이니까요. 서로 대결하기보다는 사냥이 우선이었을 것입니다. 정착생활을 하게 된 농경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동식 주택에서 살며 사냥과 약탈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모두가 아는 것과 같이 정착생활을 한 사람들의 승리였습니다.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위협을 시각적으로 탐지해 내고 그들에게 대항할 준비를 잘 해냈기 때문입니다. 근세의 지하벙커, 다송의 인디언 천막, 기택의 집은 그런 의미로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세 주거 형식의 주거자들은 자본주의 시대의 집이라는 박사장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박사장의 집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되기에 박사장의 권위는 마치 고대국가의 왕과 같습니다.
고대 국가가 생성되던 때부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집은 은폐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부와 권력, 그리고 체제의 정당성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말이죠.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차지한 것은 돈입니다. 돈도 과거의 권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과시하기를 좋아합니다. 박사장의 집은 사람 사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무엇을 진열해서 보여주는 전시관 같습니다. 값비싼 가전제품과 생활용품 그리고 다양한 고가의 제품들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 같습니다. 그림을 요즘에는 자본주의의 화폐라고들 합니다. 현대화가 중에서 가장 고가로 거래되는 호크니와 바스키아의 그림까지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생충은 각자의 주거 형태와 역사가 겹쳐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현대적인 주택을 제공 받아서 옛 시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것처럼 생각하기는 하지만 현대 문명 속에는여전히 옛 주택의 형식과 삶의 형태들이 남아있습니다. 박사장의 집도 미래의 어느 시기에 현대라 불리는 무엇으로 대체되겠지만 삶의 모든 형태가 달라진 그 주택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주택이라는 것에는 과거의것들을 폐기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옛 것들이 쌓인 기반 위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말하는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돈이 권력의 정점에서 왕궁을 건설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지만, 미래에는 모르죠. 생명이나 환경 문제로 인해서 과거의 주택 형태가 새롭게 각광받을지도 모릅니다. 예술이 그렇게 해 왔거든요. 동굴암각화나 벽화가 바스키아와 호크니의 그림과 묘하게 닮은 것처럼요. 그래서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의 죽음은예술의 종말을 박사장과 근세의 죽음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 문학가들과 철학자들이 모여 실존주의에 관해서 토론했었고, 오르세 미술관이 있는 생제르맹 데프레에서의 추억으로 남궁현자 선생이 박사장의 집을 지었다니, 그럴듯한 추측이 아닐까요?
종말에 관한 기억은 들라크루아 에게도 있었습니다. 선배 화가였던 테오도르 제리코의 “난파 장면”이라는 그림에서 모델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메두사호의 뗏목”으로 말해지지만 루이 18세의 의뢰로 제리코가 그려낸 그림의 제목은 “난파 장면”이었습니다. 그림의 제목이 변한 이유는 당대의 프랑스 사람들에게 난파 장면이라는 말만으로도 그게 무슨 상황인지 모두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잊힌 사건이기도 해서 오해할 점들이 그림에 있기 때문입니다.
메두사호가 난파되고 150여 명이 뗏목을 올랐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15명뿐이었습니다. 구조된 사람 중에서도 건강이 악화된 3명은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한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난파 장면이라기보다는 구조 장면처럼 보입니다. 저 멀리 배 한 척이 보이니까요. 선원들의 기도에 신이 응해줬는지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 배가 다가옵니다. 쓰러진 선원들을 간병하는 듯이 동료애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희망이 이들에게 다가오는 것 같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구조된 모습은 그림과 달랐습니다. 그들이 잠들어 있어서 구조선이 접근한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 구조선과 같은 배는 메두사호가 난파되고 뗏목에 탄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근처를 지나쳤던 배에게 신호를 보냈던 순간을 담은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갔습니다. 그림 속 그들에게는 바다라는 자연의 위협과 동료와의 혈투, 그리고 승리의 대가 치고는 잔인한 동료의 시신마저 먹어야 했던 불행이 시작된 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메두사호의 뗏목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하늘 높이 붉은 천을 흔들지만 하늘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태양은 메두사호처럼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돛대는 파도에 삼켜질 듯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이 파도 아래로 펼쳐지게 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20명이 그려져 있고 이중 5명이 죽어 선원들의 식량이 될 것입니다. 14명은 분명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데 한 명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삶의 끝을 붙잡고 있을 만한 사람은 흰 천을 흔드는 사람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선원의 다리에 엎드려 쓰러진 사람 같습니다. 중앙에 그려진 사람은 바닷물에 손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메두사호의 뗏목에는 승리와 희망으로 가득 찬 모습이 아니라 절망만이 함께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림을 희망 섞인 시선으로 보는 것과 절망만을 보는 것에는 그리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저들이 살아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겪게 될 배고픔, 갈증, 자연 앞의 무기력함,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적대감이라는 고난은 그대로니까요.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메두사호의 뗏목”처럼 기생충에서도 가장 약한 자들이 희생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두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본주의라는 뗏목에서 문광과 근세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기택은 어쩌면 그들이 사라지면 자기들이 가장 약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냄새라는 감각으로 알아차렸고 그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불행은 이성이 아니라 직감이나 예감이라는 감각으로 알아차리기도 하니까요.
메두사호의 뗏목이나 영화 기생충의 불행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겪게 될 불행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의 처지보다 대다수 관객들의 형편이 그리 나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기택의 가족이 문광의 핸드폰을 빼앗는 장면에서 “메두사호의 뗏목”을 재현한 것은 아무래도 “당신들도 이미 이 뗏목을 타고 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3자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문제화한 시선으로 보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기택의 처지와도 같이 이제 곧 당신들의 차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말이죠. 영화 기생충은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난과 재난을 다루면서 극적인 재미와 웃음을 주면서 영화적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게 합니다. 추함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도 않습니다. 봉준호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를 그가 관찰한 거리에서 본대로 우리도 보게 하려는 동시대 예술(Contemporaryart)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나 서사 방식에 공감을 하건 말건 간에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예술성에 있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에는 미술 작품들이 더 숨어 있습니다. 기우와 민혁이 가게 앞에서 소주를 마시며 과외를 제안하는 장면은 찰스 데무스의 “나의 이집트”를, 박사장과 아내의 부엌의 대화 장면은 펠릭스 발로통의 “거짓말”을, 기택의가족들이 술판을 벌이며 먹던 감자칩 깡통은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을(영화에서는 자본가의 비싼똥을 의미) 참고한 것 같습니다. 기생충은 주제와 서사, 시각 예술적인 것들이 매우 적절히 결합되어 재미와 의미까지 아주 뛰어나게 표현된 시각예술의 모범이 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긴 지면을 사용 했지만 이 말 한마디를 위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