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고증 영화
엠마
여성들이 예뻐야 했던 이야기
어텀 드 와이들 감독의 영화 엠마는 차세대 스타 안야 테일러 조이만큼 아주 예쁜 영화입니다. 흔한 로맨스 소설이 바탕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색채의 세트와 배우들의 드레스로 영국의 아름다움이 절정이었던 19세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위해서 예쁜 드레스를 제작한 것도 있겠지만, 시대 고증이면서도 그 당시 여성들에게 부여된 현실이 반영된 모습입니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을 발표할 1800년대 초의 여성들은 예뻐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자신과 가족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예쁨 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을 쌓은 남성들과 어느 정도의 대화가 가능해야 했기에 문학과 예술을 어느정도 공부하고 익혀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집 안에서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특히나 부유층 여성들은 요즘으로 치자면 자가격리와 비슷한 생활을 결혼 전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말이죠. 그래서 영화는 로맨스 소설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이야기지만 200여년 전의 영국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라는 점에서 예쁜 볼거리와 그 이면의 여성들의 슬픔도 보여지는 영화입니다.
여성이 아니라 장식성
예쁜 세트와 날씨 좋을 때의 아름다운 영국 풍경 그리고 예쁜 옷차림으로 여성들을 단지 볼거리로 전락시킨 영화라고 폄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당시 여성들은 장식적인 역할이었습니다. 그나마 영화가 보여주는 여성들은 요즘 말로 하자면 탈 코르셋 시기로서 그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던 시기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적 시대 이전의 여성과 그 이후의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해야만 합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서도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어릴 적 배워야 했던 것은 남편 집의 장식과 같은 아내라는 기능적인 헌신과 출산과 육아라는 엄마의 역할이었습니다. 손님들이 초대된 날이면 부유층 여성들은 여섯 번의 샤워와 다섯 벌의 드레스와 다섯 번의 화장을 했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하더라도 차려 입은 드레스 때문에 양껏 즐기지도 모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지는 식사 장면에는 적게 먹어도 많은 열량을 가진 달콤한 것들이 많이 보일 겁니다. 여성들은 함께 식사하는 남편의 반려자가 아닌 부를 과시하는 장식물과 같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다과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즐길 거리였습니다. 그 시간은 그래도 그나마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손님들이 떠나고 평범한 일상에서는 개구쟁이와 심술쟁이들인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야 테일러 조이가 연기한 엠마 우드하우스의 엄마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시대를 벗어 나고자 했던 로맨스 소설의 소비층이었던 젊은 여성들의 희망을 담은 것 같습니다. 독자는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영화는 그래서 자유 연애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진부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고 결혼은 늘 아버지의 사업적 이해 관계와 부합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즐기는 다른 방법 하나는 당대에 이 소설을 읽었던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꾸던 당시 영국 소녀들의 설렘을 느끼면서 보는 것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시기의 소녀들의 희망이 현실에서는 좌절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이 성장하던 무렵에는 자전거가 만들어 지면서 그것을 타기위해 치마가 짧아지고 테니스와 같은 운동을 즐기기 위한 신발과 가벼운 옷차림이 등장하면서 아내와 엄마라는 여성의 역할이라는 부담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저 멀리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와 그리스까지 그랜드 투어라는 여행을 다녀온 젊은 남성들은 여성이 아니라 시대를 장식물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의 인식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소망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소설적인 희망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희망은 그렇게 어떤 일들을 만나 어떤 미래의 시기에는 바뀌게 됩니다. 긴 시간의 기다림을 견뎌내야 하지만 말이죠.
영화 엠마는 무엇을 보는지에 따라서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도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영국 여성의 패션사를 중심으로 보자면 정말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주인공 안야 테일러 조이는 물론이고 등장하는 배우들의 의상 전부가 당대의 초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 화가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시선으로 촬영된 듯합니다.
200년 전의 엠마의 여성관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관해서 불쾌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엠마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또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기다림을 필요로 할까요. 예쁘면서도 슬픔을 간직한 엠마를 만나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