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일흔한 살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아홉 손자, 윤서 군.
무릎과 허리, 손목까지 모두 통증이 심해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 앉아 보내신다고 했다.
예전에는 남편이랑 동네에서 잘 나가는 짜장면 가게를 운영했고,
그 후에는 군청에서 도로의 꽃밭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
지나는 사람들에게 계절의 향기를 전해주던 분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리와 허리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젠 그 일조차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저희 할머니는 인자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분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10분도 서 계시지도 못해서 마음이 아파요.
빨리 걸으실 수 있게 돼서 할머니 모시고 어디든 가보고 싶어요."
윤서 군은 특성화고 3학년으로, 식품과에 재학 중이었다.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이미 식품가공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저녁만큼은 할머니와 함께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할머니를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혼자 계시던 할머니가 집에서 쓰러지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그날 처음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다리를 주무르며 청심환을 드시게 했는데,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늦게 왔더라면...
저 말고는 아무도 할머니를 도와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 일 이후, 윤서 군은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할머니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더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처음 마주한 양순 어머님의 무릎은 한눈에도 심각한 상태였다.
검사실 너머로 보이는 검사 결과에 윤서 군은 할머니가 얼마나 아프셨을지
알 것 같다며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간병이 필요하다면 학교에 사정을 말씀드리고
제가 직접 할머니 곁을 지킬 거예요."
열아홉 살의 소년이 그렇게 말했다.
그 단단한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양순 어머님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어요.
손자 졸업식에 걸어서 가고 싶어요."
우리가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했고,
수술은 어려운 만큼 시간이 걸렸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손자의 졸업식에 꽃다발을 전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임하셨다.
걷는 연습을 할 때마다 손자는 늘 곁에서 손을 잡아드렸다.
윤서 군과 양순 어머님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길에
꽃이 피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