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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복숭아 Apr 05. 2023

당신이 <세일러 문>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동경의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만화영화를 이야기할 때, 결코 <달의 요정 세일러 문(원제: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美少女戦士 セーラームーン)>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 시절 TV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만큼 <세일러 문>은 굉장했으니까. <세일러 문>은 나의 첫 마법소녀물도 아니었다. 이후에도 여러 마법소녀물을 보며 자랐다. 하지만 마법소녀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만큼, <세일러 문>은 분명 나의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에도 어떠한 흔적 하나를 남겼다. 내가 후일 좋아하게 될 마법소녀물의 원형을 제시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원래도 마법소녀물을 좋아했지만, <세일러 문>을 본 뒤로는 마법소녀물을 더욱 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으니….


그런데 나는 왜 <세일러 문>을 사랑했던 걸까? 그리고 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세일러 문>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일까?


문득 돌이켜보니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세일러 문>을 위시하여 마법소녀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이 나서 떠들 때도 왜 좋은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했던 말이라곤 그저 “진짜 예쁘지 않아요?” “너무 멋지지 않아요?” “완전 좋지 않아요?” 뿐…. 빈곤한 어휘력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랬는데 뭐 어떡해….


그래서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왜 <세일러 문>을 그토록 사랑했던 건지. 


<세일러 문> 1화를 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7년의 만우절, 역사적인 그날. 반지하집의 안방에 있었던 TV 앞에서 무릎을 감싸 안고서 앉아 있던 나. 이윽고 유명한 그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나는 오프닝을 보면서 충격에 빠졌다. 만화영화 오프닝이라고 하기엔 영상화보집 같았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과감한 색감, 컷 배치, 분할.  변신하기 전 ‘세라’와 변신한 뒤의 ‘세일러 문’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연출과 실제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나풀거리는 캐릭터들의 머리칼과 치맛자락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노래. 노래가, 지금껏 내가 봐왔던 만화영화 주제가와는 전혀 달랐다. 옆에 있던 엄마가 정확히 내 마음을 대변하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야, 이건 뭐 만화영화 같지가 않다.”


노래라면 <뾰로롱 꼬마 마녀>나 <꽃천사 루루>, <요술소녀> 등 그때까지 내가 좋아했던 어린이용 만화영화의 주제가들은 하나같이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가요에 빗대어 말하자면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느낌이었다고 할까? 근데 <세일러 문>의 주제가는 달랐다. 가요가 아니라 세련된 팝송 같았다. 엄마가 가끔 듣곤 했던 <I.O.U>처럼 말이다. (<세일러 문>을 보기 일 년 전쯤에 좋아했던 <요술천사 피치>의 오프닝도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주제가가 유난히 세련되게 들렸던 이유가 있긴 했다. 원제는 <문라이트 전설ムーンライト伝説>인데, 작곡가 고모로 데쓰야가 1965년도에 발표된 바이쇼 치에코의 노래 ‘안녕은 댄스 후에さよならはダンスの後に’를 표절하여 만든 곡이다. 후일 이러한 사실이 밝혀져 원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했다니, 어떤 의미로는 나와 엄마가 가요 같다고 느꼈던 게 당연했다. 


무려 30초나 되는 화려한 변신 장면 또한 어린 날의 나를 완벽히 사로잡았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마법소녀의 변신은 10초는 될까, 그렇게 길지 않았다. <세일러 문>보다 먼저 봤던 <웨딩 피치>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는 <웨딩 피치>가 후대 작품이었는데도! 하지만 세일러 문이 변신하는 모습은 달랐다. 잠깐동안 빛이 반짝! 하더니 옷이 변해 있고 액세서리가 달려 있고,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세일러 문>의 변신 장면은 그야말로 주인공 ‘세라’를 중심으로 한 환상의 무도회나 다름없었다. 온몸에 핑크빛 리본이 감기더니 세일러 칼라가 달린 유니폼으로 변한다. ‘세일러 문’인 이유를 알려주겠다는 듯 신체 부위의 변신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초승달 무늬의 빛이 반짝인다. ‘세라’가 춤을 추듯 우아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안 허리의 리본이 깔끔하게 묶이고, 주름치마는 비단처럼 차르르 떨어지면서 ‘세라’의 허리를 감쌌다. 그 기나긴 변신 장면 동안 잔잔하게 흐르는 ‘우우~ 세일러 문~’ 하는 배경음악은 또 어떻고! 이처럼 공들인 변신 장면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갓 국민학교에 입학한 여자아이는 그 순간 <달의 요정 세일러 문>에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 어린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아니, 어떻게 이런 만화가 세상에 있을 수 있어!? 어떻게 이런 게!? 


지금 봐도 높은 완성도에 입이 떡 벌어지는 이 변신 장면은 사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최대 효과를 뽑아낼 수 있도록 고육지책이었다고 한다. 예산이 부족해 제작할 수 있는 셀의 수(그때는 셀 애니메이션이었으니)가 한정되어 있으니 일단 한 장면을 공들여서 만든 뒤 계속 재탕하면 여러모로 자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감독이었던 사토 준이치가 고안해 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런 연출은 여아용 애니메이션에선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주로 로봇물에서 활용하던 방식이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파격이었던 셈이다. <세일러 문>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리듬체조를 하듯 약간의 율동을 하는 신체를 리본으로 감아 변신’하는 장면은 추후 등장하는 모든 마법소녀물에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니 그때 나를 포함한 여아들이 <세일러 문>에 열광하게 된 건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1화를 봤던 내가 그 뒤로도 <세일러 문>을 챙겨보도록 만들었던 이유일 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세일러 문>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분명 따로 있다. 어째서 나는 <세일러 문>을 계속 좋아한 걸까? 


음. 여러 모로 생각해보다가 재밌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세일러 문>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주제가나 변신 장면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에피소드들이었다. 내가 웃으면서 봤던 에피소드나 공감하면서 봤던 에피소드, 조금 무서워하며 봤던 에피소드, 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들. 난 아직도 기억한다. ‘세라’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한나’와 사랑에 빠진 악당 ‘네프라이트’가 결국 죽음을 맞고 빛의 가루가 되어 흩날리던 장면을, 최종전에서 전투를 치르던 세일러 머큐리 ‘유리’가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용 컴퓨터로 요마의 이마에 있는 약점을 공격하고 목숨을 잃던 장면을, 악당 ‘와이즈맨’의 꼬임에 넘어가 블랙 레이디로 변신했던 ‘꼬마 세라’가 모든 것이 오해임을 깨닫던 장면을, ‘세일러 넵튠’과 ‘세일러 우라누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정한 순수한 마음’이 마침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본인들을 희생하는 장면들 말이다. 


이러한 다채로운 에피소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아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간 계속 봐왔던 만화영화들은 메인 인물이 주인공을 포함해도 고작 서너 명 남짓이었다. <웨딩 피치>만 해도 주요 인물이 ‘피치’, ‘릴리’, ‘데이지’ 이 셋뿐이다. 거기에 추후에 합류하는 ‘사루비아’까지 넷. 많이 쳐줘도 전투신에서 가끔 등장하는 ‘리모네’와 ‘피치’랑 맨날 티격태격하던 ‘캐빈’ 정도. 하지만 <세일러 문>은 당장 1화부터 ‘세라’네 가족에 세라네 담임선생님, 세라가 짝사랑하는 오락실 오빠 ‘앤디’에 ‘레온(턱시도 가면)’, 단짝인 ‘한나’와 둘 주변을 얼쩡거리는 ‘대니’, 그리고 한나 엄마와 고양이 ‘루나’, 그리고 악당인 ‘제다이트’와 ‘베릴 여왕’까지 나온다. 이들 모두에게는 나름의 서사까지 주어진다. 


세라를 포함해서 다섯, 혹은 그 이상이 되는 메인 캐릭터들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 그룹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이 중에 네 취향이 한 명쯤은 있겠지?’ 같은 느낌이랄까? 인원이 많다 보니 그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관계성이 무궁무진했다. 서로 싸웠다가 화해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친했던 멤버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어색해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세라와 세일러 마스인 ‘비키’가 턱시도 가면인 ‘레온’을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내용도 있었고, 남을 잘 챙겨주는 세일러 쥬피터 ‘리타’가 욕심이 과해 항상 사고를 치는 ‘미나’와 티격태격하는 내용도 있었다. ‘비키’는 그러면서도 ‘세라’가 중요한 순간에 얼빵하게 있으면 호통을 쳐서 마음을 다잡게 만들었고, ‘리타’ 역시 ‘미나’가 기운 없는 모습을 보이면 제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린 나는 때로는 가슴 졸이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세일러 문>을 챙겨 봤다. 마치 어른들이 TV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 당시 <세일러 문>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TV 드라마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세일러 문> 속 생활을 동경했다. 지금 여기서, 우리 동네 이름이 붙은 국민학교에 다니는 내가 아니라 주름치마에 세일러 칼라가 달린 예쁜 교복을 입은 이름도 이국적인 ‘세라’가 되고 싶었다. 아빠가 직접 깎아준 연필로 깍두기 공책에 ‘영희야 안녕, 철수야 안녕’을 쓰는 게 아니라, 저기 <세일러 문>의 세계에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까먹고 방과 후에는 딸기 파르페 등을 파는 커피숍에 가서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런 일상을 살다가도 악당이 나타나면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변신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세일러 문’이 되고 싶었다. 아아, 알겠다. 내가 왜 그렇게 <세일러 문>을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게 있어서 <세일러 문>은 꿈과 환상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작품을 그토록 사랑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아이돌이나 유튜버를 그렇게 동경한다는데,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동경의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내가 ‘세라’가 되길 원했듯이 요새 아이들도 장원영이 되길 원하겠지. (장원영의 별명 중에 ‘세일러 문’이 있다는 것이 또 재밌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세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현재에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가상의 것을 동경해봤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에 지레 포기한 것일까. 음, 역시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세일러 문>에 열광했던 이유가 무엇일지. <세일러 문>을 그토록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세라’가 되기를 꿈꾸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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