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수 Jan 24. 2021

요동치지 않는 마음과 자유

- 샤우나 샤피로 저, <마음챙김>에 대한 서평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23


대부분의 종교가 '마음'을 강조한다. 마음을 지키는 것, 마음을 챙기는 것, 마음을 다하는 것... 다양한 표현으로 마음을 잘 다스릴 것을 권고한다. 


사람마다 이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관점에서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요동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분이나 감정을 컨트롤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인데, 가끔 지인들한테는 이를 '평안을 선택하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요동치지 않는 것, 평안을 선택한다는 것은 외부의 어떠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삶의 근본 자세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유명한 명언이 있다(이는 흔히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으로 알려져있는데, 사실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라고 한다).


Und wenn ich wüsste, dass morgen die Welt unterginge, so würde ich heute mein Apfelbäumchen pflanzen. (Even if I knew that tomorrow the world would go to pieces, I would still plant my apple tree.)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극단적인 외부 요인, 환경 앞에서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해나가겠다는 의지. 어릴 때는 위인전 같은 것을 읽으면서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듯 역사적인 순간 앞에서 보이는 결연하고 비장한 의지에 마음이 뛰었다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지금은 루터의 말이 더 마음에 울림을 준다. 


요동치지 않는 마음, 평안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물론 이에 대해서는 <마음챙김>에서도 많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전에 읽었던 또다른 책인 조신영 작가의 <쿠션>을 소개해보고 싶다. 



조신영 작가의 <쿠션>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돌이 물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깊이는 다른 사람이 던지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갈증이 해소되며 새 기운을 얻습니다. 비난이나 경멸의 말에 내 우물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내 마음의 우물은 얼마만큼 깊고 넓을까요?”
- 조신영의 <쿠션> 중에서.


조신영 작가는 말한다. "쿠션이 없는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아 있으면 혈액 순환도 안 되고 몸이 금세 고달파집니다. 인간의 몸이 닿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쿠션이 존재하지요. 우리 마음은 어떨까요? 마음에도 쿠션이 존재한다면? 마음 쿠션의 품질이 우리 삶의 질입니다. 마음이 늘 팍팍하고 고단해서 쿠션이 없으면 메마른 영혼, 황폐한 삶입니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하고 거친 반응이 튀어나옵니다."


이를 더 요약하자면 '자극과 반응사이에 쿠션을 만들기'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이 아닌 올바른 반응(<마음챙김>의 저자가 말하는 '대응')을 할 수 있다. 조신영 작가는 이렇게 자극에 대해 올바르게 반응하는 능력을 '자유'라고 표현한다. 


자극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자유라고? 그냥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표출하고 분출하는 것이 문자그대로 더 자유로운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요동치지 않는 마음'과 관련이 있다. 


“삶이 점점 더 풍족해지기는 했지만 훨씬 더 얄팍해지고 삶의 목적도 더 모호해졌다. 사람들은 삶이 그 실재를 잃어버린다는 자기 느낌을 점점 더 뚜렷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 데이비드 웰스(David F. Wells)

"정보가 소비하는 것은 바로 주의이다. 정보의 풍요는 곧 주의의 빈곤을 뜻한다." - 인지과학자 허버트 사이먼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 그리고 인지과학자 허버트 사이먼의 말처럼, 자본과 정보의 풍요 속에서 삶은 점점 더 풍족해졌지만 훨씬 더 얄팍해지고 그 목적 또한 모호해졌다. 우리의 주의는 분산되고 빈곤해졌으며, 정말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물질문명의 발전이라는 외부적 환경이 오히려 사람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먹을 것과 즐길 것은 넘치게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때가 많다. 아니 가끔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정해진 기준(, 좋은 직장, 좋은 학교 등)을 그대로 내면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치의 획일화가 이루어진 사회의 가장 큰 무서움은 많은 사람을 목적 상실의 상태에 내버려둔다는 데에 있다. 가치의 획일화 속에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소수의 좋은 직장, 좋은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면 뭔가 뒤쳐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 대학에 들어가고나서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의 공통된 목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적은 조금씩 수정되기도 하고, 목적과 현실이 타협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회의 분위기 자체가 내 마음의 평안을 저해하는 가장 큰 외부적 요인이자 자극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기도 어렵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숱한 외부적 요인, 남들의 시선 등 여러 자극에도 불구하고 요동치지 않는 마음,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위에서 말한 쿠션)은 무엇일까? 나는 제일 중요한 것이 '감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 의식적으로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을 10개만 찾아보자.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큰 질병에 걸리지 않은 것,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등등 감사할 수 있는 항목은 생각보다 많다.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는 만큼 불안과 근심, 걱정이 그만큼 뒤로 밀려난다. 나는 가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어도, 그 일을 가지고 감사하는 진정한 고수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도 종종 목격한 적이 있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일을 통해 내가 더 겸손할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아닐까? 


자극과 반응 사이에 쿠션(감사하는 마음)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올바른 반응을 하는 훈련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요동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아직 매일의 소소한 자극에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요동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언젠가 루터가 말했듯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내면의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727634


작가의 이전글 한 인간의 원인, 한계, 그리고 미래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