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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Jan 10. 2021

한 인간의 원인, 한계, 그리고 미래까지

빌 설리번 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서평



1. 현대판 골상학의 부활?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범죄학자인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는 인간의 범죄성은 선천적으로 유전되며, 그 특성은 인간의 두개골 등 머리 형태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학문은 '골상학'(phrenology)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는 과거에 두개골로 범죄자를 가려내는 것으로 대히트를 쳤다. 롬브로소는 이탈리아 교도소 안에서 죽은 범죄자들의 시신을 해부하여 아래와 같이 일반인들과 다른 범죄자들의 신체적 특징을 찾고자 노력했다.



가령,

- 암살자형은, 다부진 턱과 두꺼운 머리칼, 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공격자형은, 두상이 둥글고 손가락이 길다.

- 강간자형은, 손가락이 짧고 이마가 좁으면서 코나 특정신체 부위가 비정상적이다.

- 방화범형은, 사지가 길고 머리가 작고 몸이 왜소한 편이다.

- 사기꾼형은, 넒은 턱과 두드러진 광대뼈, 창백한 표정과 무거운 체중 등을 특징으로 한다.

- 소매치기형은, 긴 손과 검은 머리, 체모가 없다.


나아가 롬브로소는 범죄행위는 자유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고전범죄의 사고방식과 다르게 범죄의 원인은 선천적 조건으로 나타나고 타고난 범죄성 떄문에 예방, 교정이 불가능 하므로 영구격리, 도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생래적 범죄인, 정신병 범죄인, 격정 범죄인, 상습범죄인, 잠재적 범죄인, 準생래적 범죄인 등으로 범죄인을 분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골상학은 그 과학적 근거의 부족함으로 인해 20세기 이후 과학계에서 퇴출되었다. 골상학에는 인종차별적 요소가 많았으며, 특히 범죄자의 행동에 범죄자의 '의지'가 작용한다는 점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외에도 골상학의 관점에서는 선천적인 신체구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범죄자로 태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과연 어떤 근거로 처벌할 수 있을지가 -책임론의 관점에서- 문제되었으며, 또한 롬브로소의 주장처럼 범죄자의 두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예방, 교정이 불가능하므로 영구격리, 도태시켜야 한다는 것은 인권의 측면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행동 양식이 두뇌 내부의 작동 형태에 따라 좌우되며 두뇌 및 두개골의 형태와 거의 관계가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골상학이라는 유사과학이 극복되었음에도, 골상학의 난점과 맥락적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두뇌 및 두개골의 형태는 인간의 행동 양식과 관련이 없으나, 인간의 DNA, 그리고 그 DNA가 발현된 환경, 미생물총 등이 인간의 행동 양식을 규정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DNA 염기서열의 차이에서 생긴다. DNA는 우리의 신체뿐만 아니라 지능, 행복, 공격성 등 더 복잡한 특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재밌는 비유로 이를 설명하는데, 가령 우리가 엄마 배 속에서 수정될 때 물려받은 유전자는 포커판에서 손에 쥔 카드패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포커나 섯다와 같은 게임에서 안 좋은 패가 나오면 화끈하게 "다이!"를 선언하고 안전하게 다음 판을 기약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안 좋은 패로 베짱을 부리며 올인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에는 다음 선택지가 없다. 결국 자기 손에 쥔 카드를 가지고 최선의 게임을 펼쳐 보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카드패가 나의 향후 인생을 결정한다면 이것은 마치 현대판 골상학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심지어 "우리는 DNA에 의해 구축되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숨겨진 힘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생존기계다." 라고까지 표현한다. 약간 거부감이 드는 표현이긴 했으나,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이러한 표현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다(물론 이는 내가 미생물학, 유전학에 워낙 문외한인 탓에 저자에게 쉽게 설득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2. 두개골이 전부가 아니듯 DNA 역시 전부는 아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DNA가 향후 인생을 결정지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DNA 만큼 인간의 행동과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DNA가 발현되는 환경과 미생물총이다. 


당신이 환경에서 접하는 물리적 물질이 DNA에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켜 당신 몸의 유전자 중 어느 것이 발현될지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 이것은 당신과 당신의 자식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전자 발현 양상을 빠르게 바꾸어 환경 조건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리적 물질뿐만 아니라 아동 학대, 왕따, 중독, 스트레스 등의 행동도 후성유전학을 통해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인생의 부정적 사건이 우리 DNA에 흉터를 남길 수 있고, 일부 경우에는 이런 흉터가 자식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36~37면.


프로작같은 세로토닌 재흡수제는 세로토닌 수치를 높게 유지하게 해 심각한 우울증을 누그러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조절하는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뇌에 들어 있지만, 사실 세로토닌의 대부분은 소화관에서 발견된다. 이곳에서 세로토닌은 연동운동을 촉진한다. 세로토닌은 흔히 행복 및 건강의 기분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몸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기능과도 관련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소화관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고, 그 역도 성립한다. 최근의 연구에서 미생물총이 세로토닌 생산에 중요하다는 암시가 나왔다. 장내 미생물총이 기분과 긴밀히 연결된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162면.


DNA는 정말 말 그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 물론 DNA가 발현되는 환경(태아기, 유아기 등)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저자가 제안하듯이 일정부분은 사회시스템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해야한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아픔으로 다가왔던 '정인이 사건'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떠오르기도 했다. 


내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DNA, 그리고 유아기때의 환경보다는 '미생물총'에 더 변화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생물총은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운동 등을 통해 개선이 가능하다. 물론 운동의 경우, 운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DNA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결정론적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잠시 제쳐두자. 운동을 하기 싫은 것을 DNA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정밀검사를 하지 않는 한 내가 유전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도 없지 않은가?), 운동 체크 단톡방을 만들거나 친구와 같이 운동을 하는 등 환경설정을 적극 이용해보자. 


프로바이오틱스는 예전부터 꾸준히 챙겨먹었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적극 권장하게 되었다.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관련해서는 아래의 영상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5WNGNm2SYk&t=73s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프로바이오틱스와 운동 등으로 미생물총을 개선하는 것 외에 사회적 유대관계를 쌓는 것도 뇌 기능 개선 등에 매우 유익하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대유행병의 시대에서 사회적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곧 이 시기가 지나간다면 위축되었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해야겠다. 어쩌면 씽큐온 활동이 그런 소통의 장으로 기능할지도 모르겠다.


20대 중후반에는 종교와 관련해서 '결정론 vs 자유의지론'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 책을 통해서는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결정론 vs 자유의지론'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환경적인 측면에서 부모님께 감사한 부분이 많았는데, 나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내가 받았던 좋은 혜택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66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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