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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Dec 27. 2020

정신과 약, 조금 더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

- 로렌 슬레이터 저, <블루드림스>에 대한 서평




1. 정신과 약에 대해 어디까지 과학적 확신을 부여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 정신약리학 분야는 연구의 성숙도로 볼 때 아직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기원전 그리스 의사가 우울증 환자를 치료했을 만큼 정신과적 증상과 치료의 역사가 매우 길지만 말이다.   

   

현시점에서 정신의학과 정신약리학은 상당 부분 정신과 약의 효능에 의지하고 있다. 정신과 약의 발전이 정신의학과 정신약리학의 발전과 같이 여겨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언뜻 보기에 시대가 지날수록 부작용이 덜하고 효과가 좋은 약들이 개발되어 온 것 같지만, 우리는 약이 작용하는 방법과 이유를 과거에도 정확히 몰랐고 현재도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가령 프로작과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살펴보자. 프로작을 출시한 일라이 릴리는 프로작이 세로토닌에만 특정한 작용을 한다는 식으로(즉 문제되는 부분만 핀셋으로 콕 찝어서 해결한다는 식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세로토닌은 뇌의 일정 부분에 국지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경전달 체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체내 어디에나 존재하며 몸과 뇌에 광범위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세로토닌을 직접 겨냥하는 약을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약물과 뇌의 복잡한 화학물질에 관해서는 아직 베일에 감추어진 부분이 많다.      


물론 발명되고 처방된지 수십 년이 지난 약물이라면 어느 정도 연구가 축적되어 왔겠지만, 새로운 약물의 개발, 처방, 사용은 장기적인 연구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다는 미사여구로 홍보되는 신약을 환자들이 장기간 복용했을 때 그들의 뇌가 수십 년 뒤에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정신과 약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예를 들어 프로작의 효능과 관련해서는 임상 시험에서 참가자 3분의 2가 속임약으로 프로작과 똑같거나 더 나은 효과를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어떤 연구에서는 항우울제가 새로운 뉴런이 태어나고 신경들이 새롭게 연결되게끔 두개골의 상태를 바꿔주는, 즉 신경영양성(neurotrophic)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였다.      


프로작에는 도파민 시스템을 저하해 안면 경련, 성기능 장애 등 부작용, 감정의 범위가 좁아지고 둔감해지는 부작용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게다가 휘태커, 글렌멀린 등의 학자들은 프로작과 같은 약물이 환자의 뇌의 화학적 불균형을 바로잡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불균형을 유발하여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자 스티븐 하이먼도 프로작과 같은 정신과 약이 신경전달물질 기능에 교란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한편, 휘태커와 같은 학자들은 우울증에 대해 항우울제로 치료하는 것보다 그냥 놔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와 달리 토머스 프로들은 우울증 증상이 나타날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회백질이 파괴되어 해마가 쪼그라들고 뉴런이 혼돈에 빠지는 등 악영향이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극과 극으로 견해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가 약물과 뇌의 복잡한 화학물질에 관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단 정신과 약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진단에 있어서도 몇 가지 과학적 한계가 존재했다. 일례로 정신신체의학 24권(2016년)에 실린 '한국판 역학연구 우울척도 개정판(K-CESD-R)의 표준화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한점이 도출되었다. 이러한 제한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연속된 스펙트럼 중간 부근에 위치한 수많은 환자들에 대해서는 우울증의 과학적 진단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의 일반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면, 우울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부터 중증의 우울증상을 나타내는 경우까지 분절되지 않고 연속된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적은 수의 표본 추출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우울 증상 범위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요컨대 비교적 적은 수의 표본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연구 대상군과 정상 대조군 모집 과정에서 일반인구 집단의 구성과는 달리 집단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는 점에서 제한점이 있었다. 
- 위 논문, 89~90면.           


2. 자본의 논리와 정신과 약의 발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신과 약의 역사를 살펴보면 해당 약의 흥망성쇠는 단순히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약이 널리 홍보되고 이용되는 데에는 해당 약의 성패에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거대 제약사의 자본 논리가 많이 개입되었다. 이들은 정신의학과 정신약리학의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바로 돈으로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 자세히 서술되어있듯이, 과거에 담배회사들도 거대 제약사들과 마찬가지로 담배에 해가 없다는 쪽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금전적 압력을 행사하였다. 가령 담배회사와 관련된 저자들의 논문 31편 중 29편(94%)에서 간접흡연이 해롭지 않은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담배회사와 관련이 없는 저자들의 논문 75편 중에서는 단 10편(13%)에서 간접흡연이 해롭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담배회사는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과학자들에게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였고, 그들이 원하는 연구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대 기업과 같은 자본 권력의 선호도에 따라 필요한 지식이 생산되기도 하고, 생산되지 않기도 한다. 어쩌면 정신과 약에 대한 지식도 담배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온 것은 아닐까?      


알렉산더 부코빅은 말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신경과학자들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어요. 수익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지 않아서요.” 어쩌면 리튬은 정신의학과 자본주의 사회에 속한 기업 이익의 밀접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블루드림스, 152면.     


“심리치료는 돈이 되지 않는다. 약에 집중하면 1시간에 환자를 3~4명까지 볼 수 있지만... 그 시간에 심리치료를 하면 1명이나 겨우 볼까 말까 하다. 수입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기술 중에서 심리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는 대체로 돈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 터프츠 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자 대니얼 칼렛  
- 블루드림스, 228면.          


3. 심리치료,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례     


저자는 <블루드림스> 281면 이하에서 자본으로부터 외면당한 정신과 치료요법인 ‘심리치료’에 대해 상세히 언급한다.      


고백하는 행위 자체에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종류든 심리치료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의사의 전문 기술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오직 환자가 선택한 이야기다.
- 블루드림스, 297면.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심리치료’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는 정신보건법에 근거하여 2001년 처음으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후, 5년마다 해당 조사를 하고 있는데, 2016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자료 중 광주광역시가 2015년 6월부터 정신건강 종합대책에 따라 시행하는 마음건강 주치의 사업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 마음건강 주치의 사업의 개요     

지역사회 주민의 정신건강 문제 발생시 정신건강증진센터 내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통해 1차 상담 후 정신의료기관 연계     

시범사업 지역의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하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이 쉽고 편하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임     

또한, 초발 정신질환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 조현병 등 청년기에 주로 발병하는 정신질환에 대해 조기에 치료하여 만성화를 방지하고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도록 지원          

-  2016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중
광주전역의 45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참여한 “마음건강 주치의”는 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지역 정신보건기관에 직접 나가 주민들을 만나 상담하였다. 

- 그 결과 ’16년 6월~12월까지 총 1,500여 명의 시민들이 “마음건강 주치의”를 찾았고, 이 중 39.3%가 정신의료기관에 연계되었다. (종전 정신의료기관 연계율 9.4%)

- 마음건강 주치의 상담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청년층이 활발하게 이용하였고(10대~30대 65%), 이용자의 상담 만족도(92%)와 권유의사(90%)도 높게 나타났다.

- 광주 동구 마음건강주치의를 이용한 A씨(10대, 남성)는 우울증세로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면서도 치료를 미루던 중 “마음건강 주치의”를 통해 상담을 하고 가까운 정신의료기관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되었다. 

- A씨의 부모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정신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접근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만족스럽고, 이후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받아 계속해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 2016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중


이외에도 정신약물학 관련 논문에서 ‘심리치료(정신치료)’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의 정신의학의 역사는 질병에 대한 설명이나 환자치료에 있어, 생물학적 견해와 정신사회적 견해가 상호 부침을 거듭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치료에 있어서 정신의학은 정신치료라는 기술 분야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의사-환자 관계가 모든 의학적 치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큰 공로를 세웠다. 정신치료는 정신의학 뿐 아니라 기타 의학 전반 내지 사회 전체적으로 self-awareness, self-monitoring, 그리고 self-care의 개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신치료 연구는 약물치료에도 정신치료적 의미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즉 약물에 관련하여서도, 저항, 전이, 역전이 등의 현상이 나타나,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 약물치료 자체도 실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약효과 역시 약물이 단순히 화학적 작용만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간의 관련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임상에 접목되고 있지 않으나, 그 관계는 여러 연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중략) 이제 정신과의사는 dual identity가 필요한 것이다. 즉 biological technocrat인 동시에 soft-headed humanist practitioner여야 한다는 것이다.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민성길 교수,  "한국 정신약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대한정신약물학회지 제16권 제4호, 2005년, 267~268면.           



절친한 친구가 양극성 장애로 리튬 약을 먹고 있는 탓일까. 관련 논문도 찾아가며 읽어볼만큼 <블루드림스>는 개인적으로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본 책이었다. 현재 정신과적 증상을 겪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블루드림스>는 매우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만큼 일독을 추천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550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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