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 데이비스 저, <유전자 임팩트>에 대한 서평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한 마디로 유전자를 편집, 교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로 우리는 유전 형질을 전례 없이 손쉽고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이와 같은 혁신의 공로로 샤르팡티에 박사와 다우드나 교수는 2020년에 노벨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두 명의 여성 과학자들이다.
2012년 스웨덴 우메오 대학의 에마뉴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 교수, 미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 교수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모든 DNA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7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을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현재 프랑스 태생인 에마뉴엘 샤르팡티에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로, 제니퍼 다우드나는 UC버클리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벨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두 사람이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생명과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암을 비롯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환자 치료에 이 기술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 개발된 기술들과는 달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부위의 유전자(DNA 조각)를 지우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
의료계는 지금까지 약 7만 5000 종에 이르는 유전자 질환을 분류하고 있는데 향후 이 기술을 통해 난치병으로 분류됐던 질환들을 치료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동‧식물에 적용해 새로운 농작물이나 가축을 생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더사이언스타임스, 2020년 10월 8일자 기사
유전공학, DNA 분석 등 기술과 관련한 배경지식이 거의 전무한 내가 보아도 이 기술은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약 1달 전 우연히 <가타카>(1997년 개봉)라는 SF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바로 <가타카>에서 그리고 있는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술이 아닌가.
문제는 영화 <가타카>의 기술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구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타카>가 그리고 있는 사회까지 도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야기할 수도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만약 이 기술이 공정하게 사용되지 않고 최상위계층(?)의 욕구에만 부합하게끔 사용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한층 더 어두워지게 될 것이다.
DNA 연구 분야의 원로인 제임스 왓슨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가 "이중 나선구조 발견 후 과학에 가장 큰 발전"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기술의 공정한 사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상위 10퍼센트의 문제와 욕구를 해결하는 목적으로만 활용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왓슨의 경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불공평한 세상이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 될 수 있다."
- 유전자임팩트, 41면.
영화 <가타카>의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유전자 편집 기술 발달로 신분까지 결정되는 미래상을 그린 '가타카'(1997년)는 SF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유전자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열등하게 태어난 주인공이 끊임없이 분투하며 운명에 맞서 우주비행사가 되는 과정을 암울하게 그리고 있다.
"인생은 그런 거였다. 매일 밤 난 내 피부조직, 손톱 머리카락을 벗겨냈다. 내 직장에 흘려서 나의 열성인자가 발견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해야 했다" (영화 <가타카>, 주인공 빈센트 대사 中)
https://www.thedaily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80323
<가타카>의 배경이 되는 유전자의 우성과 열성으로 신분이 나뉘는 사회. 이는 부모의 '피'가 그대로 자녀의 지위로 이어졌던 전근대사회로의 회귀와 다를 바가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 제2항은 다음과 같이 신분제의 철폐를 규정한다.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헌법 규정이 공허하게 느껴질만큼, 우리 사회는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계급과 계층이 나뉘어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의 불평등은 점차 교육의 불평등, 건강과 삶의 질의 불평등, 경험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헌법이 말하는 평등은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이다. 한 마디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실질적 평등에 기초해서 '공군 조종사 시력 기준' 같은 것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시력이 좋든 나쁘든 무조건 똑같이 기회를 주는 것이 평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446318
문제는, "다른 것은 다르게" 라는 부분이다. 기술의 발전이 너와 나를 더욱더 다르게 만든다면? 부모의 지위와 재산이 너와 나의 차이를 더욱더 심하게 만든다면? 자본의 논리와 기술로의 접근이 결합된다면,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의 문제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퍼 가위를 둘러싼 CVC(캘리포니아 대학교, 비엔나 대학교, 샤르팡티에)와 브로드 연구소의 유명한 특허 분쟁. 이 특허 분쟁에 소요된 변호사 선임료만해도 수천 만 달러, 즉 수백 억 원에 달한다(유전자임팩트, 344면). 그리고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토대로 설립된 회사의 가치는 수조 원 대에 달한다.
이 '금액'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집단(회사, 단체, 과학자 등)이 앞으로 이 기술을 토대로 얼마나 막대한 금전적 부가가치를 창출할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렇게 '본전을 뽑는' 과정에서 과연 인류 구성원 모두가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기술로의 접근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점이다.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집단이 약 1%라고 가정한다면, 사회 구성원 대다수인 99%가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테니 이를 규제하고 금지시켜야할까.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크리스퍼 가위 기술에 투입된 자본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올리고 비용을 회수할 것인가. 다른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폭풍직전의 고요와 같은 상황이 아닐까 싶다. <과학기술정책과 사회적불평등>이라는 한 논문의 제목처럼, 기술, 그리고 기술과 관련한 정책,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 등에 관하여 치열한 담론이 형성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