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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Feb 27. 2022

가끔은 죽음을 생각한다.

- 브라이언 데이비드 존슨, <퓨처리스트>에 대한 서평




'메멘토모리(Memento mori)'라는 워낙 유명한 말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라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기 쉽지 않기에 이런 격언이 임팩트를 가지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는 마치 늙지 않을 것처럼, 죽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갈 때가 많고 나도 물론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이야말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가장 궁극적인 현상이자 내 삶의 종착지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부터.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죽음에 대해서도 물론 생각을 많이 해보았지만, 일상에서도 가끔은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가 주어지기도 했다. 당시 내린 결론은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 딱히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감사할만한 삶을 살아왔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죽음에 대한 생각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제거해주었다. 나의 미래는 어차피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고,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걸어나가는 과정이 나의 삶인 것 같다. 난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도 뒤로한 채 영영 떠나야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고 나니 물질에 대한 욕망을 상당부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해보니, 죽음은 결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최악의 상황일까? 여러 최악의 상황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가진 것들, 타이틀, 가족, 백그라운드...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떨까. 실제로 그런 극한 상황이 닥치지 않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냥 현실을 받아들일 것 같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해서도 최악의 상황이 닥치는 것에 대해서 별로 불안함이 없다. 만약 이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나의 가치가 없어진다면? 내가 아무런 일도 맡지 못하고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 내가 정말 실력이 없어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난 내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별로 억울한 일도 아니고 타인이나 세상을 탓할 일도 아닐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행위는 사실 미래를 생각하는 훌륭한 도구다.
이는 힘든 순간의 상상을 역이용해 인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 퓨처리스트 269면.


<퓨처리스트>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의 유익을 설명한다. 물론 뉘앙스가 나와는 조금 다르다. 나는 최악의 경우가 닥친다고 해도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느낌이 강한 반면, 퓨처리스트의 저자는 이를 역이용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퓨처리스트의 저자와 나의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일상이 소중해지고 거창한 '당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당위의 굴레는 20대의 나의 삶 전반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굴레에서 자유로워졌다. 


현재의 나에게는 이런  '자유'가 미래에 대한 불안, 나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별로 신경쓰지 않게 해주는 가장 든든한 무기인 것 같다.



가끔 죽음을 생각할 땐 모차르트 레퀴엠 - 라크리모사를 듣는다. 

어둑어둑한 밤,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열린 성 슈테판 대성당 앞의 벤치에서도 이 곡을 들었었다.

모차르트의 곡인 만큼 빈 필하모닉 버전(카라얀 지휘)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Y9hL78g3Sj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40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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