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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장점 확실한 단점

죽지 않게 위해 하는 훈련, 하지만 절대 죽지 않는 훈련

시뮬레이터 훈련

조종실을 실제와 똑같이 만든 기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이다. 화면에는 실제 비행기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한 마디로 진짜 같은 가상 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훈련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이뤄지는 것은 비정상 상황에 대한 훈련이다. 조종사들은 실제 비행에서 (없으면 좋겠지만) 경험할 수도 있는 상황들을 최대한 리얼하게 느껴보고 대처하면서 간접 경험을 쌓는다. 예를 들면


"이륙 직후에 새를 만나서 한쪽 엔진에 불이 난다면?" 


이런 상황을 말이다.


모든 조종사들이 이륙과 착륙 시에 Bird Strike를 대비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상황을 경험하지 않는다. 새와 충돌 하더라도 항상 엔진에 불이 나거나 고장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끔 엔진이 고장난 항공기가 안전하게 근처 공항으로 회항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당시의 기장님과 부기장님은 그런 상황을 경험해 본 분들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시뮬레이터의 목적이자 훈련 목적이 여기에 있다.


아-악! 오지마, 오지마. |  출처: RedFriday.co.kr


시뮬레이터를 통해

조종사들은 간접적으로 비상 상황을 경험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낀다는 장점도 있다)


훈련은 자격을 갖춘 교관님들에 의해서 진행된다. 기장님들 중에서 자격을 갖춘 분들께서 교육을 하시기도 하지만, 위탁 업체의 교관님들의 교육을 받을 때도 있다. 그분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시고, 현업을 끝내시고 지도자의 길을 걷는 베테랑 파일럿들이다. 




시뮬레이터에서는 절대 죽지 않아

교육생 시절, 훈련과 교육을 진행하셨던 담당자분의 이야기였다. 그 분도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라고 하셨고 해마다 수차례 교육받는 조종사들에게 여러번 하셨을 이야기다.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 놓으라는 의미도 있었을 것. 어쩌면 너무 가볍게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수많은 항공사 조종사들이 매년 최소 2번 이상의 시뮬레이터 훈련과 평가를 받는다. 훈련이 끝나면 우리끼리 '6개월 생명연장' 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는 만큼 훈련과 평가는 우리의 직업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내 직업 생명은 벼랑 끝으로 갈 수도 있다. 


'입사 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 껄껄껄'

평소에는 이렇게 말하더라도 다들 머릿 속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다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 까지 다 훈련하니까.


이륙 중 조종사가 쓰려졌을 경우

엔진 한 개를 잃었을 경우

유압/전기/여압 등 각종 기계 결함이 있을 경우

날씨가 안 좋아서 활주로가 보이진 않는 경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

기내 환자가 발생해서 회항해야 할 경우

그리고 여러 상황이 다 섞여 있을 경우까지




시뮬레이터에서는 절대 죽지 않아... 그래서

그러나 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이다. '스트레스', '위압감', '긴장', '멘붕' 등 여유가 없을때 내가 겪을 감정은 훈련을 통해서 온전히 느낄 수는 없다. 죽지 않으니까. 아무리 복잡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시뮬레이터에서는 내가 죽는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가 훈련을 준비할 때 항상 내가 어디에서 감정적으로 동요할 지, 여유를 잃을 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여유를 잃지 않는 법을 터득하려고 한다. 


둘 중 하나는 정신을 차려야 하니까. 조종실에 두 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 출처: 동아사이언스


Aviate, Navigate, Communicate 

비행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수 없이 듣는 이야기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행에 집중하고(Aviate),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살피며(Navigate), 동료 조종사나 관제사, 회사, 승무원 등과 의사소통(Communicate)을 통해 상황을 해결하라는 뜻이다.


(테러리스트가 승객 목에 칼을 겨눠도 조종실은 열리지 않는다. 비행이 먼저니까)




사실은 비행 중 훈련 덕을 본 일들이 있었다.

아주 크게 (지극히 내 기준에서)


손과 눈은 할 일을 했는데, 마음은 달랐다.

아무리 준비해도 계획과 실전은 달랐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나에게도. 기장님에게도.


그 뒤로 나에게는 Aviate, Navigate, Communicate 이라는 세 가지 규칙 보다 더 중요한 룰이 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고 같은 생각일 것이다.)


KEEP CALM & DEEP BREATHE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우선 마음에 여유 챙기는 일.

쉽게 말해 당황하지 않는 일.


비상상황에서 목소리로는 승객을 안심 시키더라도, 당황한 표정은 감출 수 없다. 영화 설리 중 | 출처: 넷플릭스
비행기가 무사히 내렸음에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영화 설리 중 | 출처: 한겨례
모두가 무사한 뒤에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모습. 영화 설리 중 | 출처: 유튜브 은혜로운 TV

에필로그:

곧 다시 시뮬레이터 시즌이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생각나서 적어 본 글입니다.



커버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zjyr0UZK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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