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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잊고 일하기

그냥 열심히 행복해지려는 중입니다

일은 사람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것이 증거다.


미셸 트루니예 - 프랑스 소설가


직장인이 봉급하고 때에 걸맞는 승진 아니면

뭐로 보상 받겠나


드라마 [미생] 11화 중




월급쟁이 전문직

나는 자격증이 있어야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지만 월급쟁이다. 의사, 약사, 변호사, 공인중개사 처럼 개업을 통해 사업을 할 수가 없다. 회사가 있어야 한다. 수백억 또는 수천억 짜리 비행기를 가지고 있고 나와 같은 조종사들을 훈련할 수 있는 회사. 그런 회사가 있어야 조종사들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다.


그래서 조종사는 전문직이다.

동시에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다.


꿈을 이뤘다는 기대

“너무 부럽다. 너가.”

“하늘도 날고, 꿈을 이뤘잖아.”


지인들은 내가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멀쩡히 다니던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가가 되어가던 내가 돌연 '나 미국 가, 조종사 해보려고' 라는 말과 함께 진로를 바꿨으니까. 카카오톡 생일 알림과 연말연시를 기회로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갑자기 조종사가 되었다니까. 그들에게 나의 진로 격변은 놀라움이었고 그들에게 나는 '꿈을 이룬 친구'였다.


다들 나에게 '나도 해보고 싶었던 직업'이라고 한다. 한 번 쯤은 꿈 꿔 보았으니까.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공항에서 지나가는 조종사들을 보며

탑승교에서 살짝 보이는 조종사들의 모습을 보며

'Ladies and Gentlemen ~'으로 시작하는 기내 방송을 들으면서

혹은 탑건, 플라이드와 같은 영화를 보며


아니면 그냥

한 두번은 꿈 꿔 보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나의 꿈은 조종사가 아니었다. 회사를 다녀 보니 조종사가 꿈이 아니었던 기장님들을 많이 만난다. 친구의 권유로 혹은 학비 때문에 우연히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조종사가 되셨던 분들이 은근 많았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은 아니다.

그냥 자격증으로 일하는 전문직인데, 회사원이다.


내 시급이 얼마인 줄 알아?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 되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자신의 시급이 얼마라고. 야근에 당직에 공부와 시험에 이런 저런 시간을 포함하면 자신의 시급은 얼마라는 이야기. 속마음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은 나에게 투정을 늘어 놓는다.


사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 친구들도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적어도 일터로 나가기 전 까지는 그 직업, 그 직장에 대한 로망과 갈증을 갖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직장에 들어가자 마자 자신의 노동을 시급으로 환산하고 거기에 한숨을 쉰다.


결국 직장 생활의 이유는 다 돈이라는 것 마냥,


직장인이 그렇지 뭐

나라를 위해 금을 모으고, 직장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고 밤낮 없이 일을 하던 예전 직장인의 모습은 교과서 속으로 사라졌다. 요즘 직장인이라 하면 금요일을 사랑하고 월요일을 혐오해야 하는 사람. 높으신 분들의 기분을 모시는 사람. 내 기분을 맞춰주면 좋은 사람이고 내가 맞춰줘야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요즘 직장인의 모습이다.


직장인들에게 '나' 라는 사람이 중요해졌다, 회사 영업이익이 아무리 좋아도 기쁘지 않다. 부서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기쁘지 않다. 내 성과급이 기대 이상이어야 기분이 좋고, 기대하지 않았던 이른 퇴근과 승진, 그리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법카로 마시는 커피 한 잔 처럼 나에게 직접적인 성과와 보상이 더 기쁜 요즘 직장인이 우리 모습이다.  


'직장인이 봉급과 시기 적절한 승진이 아니면 뭐로 보상 받겠는가' 라는 드라마 대사는 그런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모습을 요약하는 대사였다.


잃어버린 3년, 잃어버린 1억

요파, 너나 나나 못 받은 월급이 좀 있지 아마?


일을 하다 보면 기장님들과 이런 대화는 심심치 않게 주고 받았다. 나름의 고연봉 직업이라 한들 조종사들은 코로나가 터지고 3년 동안 마음 고생만 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어려우니까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받지 않기로한 급여를 합하고 보니 액수가 좀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채용되지 않고 있기에 부서 이동도 승진도 잘 없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봉급과 승진이 최고의 보상이라는데

이 말에 따르면 항공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3년 동안 시간도 잃고 돈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실제로 회사를 떠나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다행이라는 말이 싫었다

참 다행이지? 일할 수 있어서

그래도 해고 보다는 낫잖아


코로나로 일을 쉴 때, 월급이 0원이었던 달도 있었다. 월급날 아침에 통장에 입금된 돈이 없었을 때, 자고 일어나서 확인한 핸드폰 알림에 입금 알림이 없는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달 중 가장 마음이 따뜻했던 날이 25일 이었는데... 그 날이 사라지니 허탈하고 마음이 잔고 처럼 텅 비었다.


그래도 다닐 회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고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당장의 어려움에 숨이 막혀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누가 '참 다행이지 않아?' 라고 하면 짜증도 나고 화 나기도 했다. 내가 겪는 스트레스는 당연한 거니 그냥 참으라는 말로 들려서.


듣기 싫었던 말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불평한다고 당장 돈을 더 주는 것은 아니니까.


다행이다. 너무 감사한 일이야. 라는 말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비록 운수 나쁜 날이 있어서 출근이 부담되고 힘든 날이 있더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런데 언제 오니?'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마음이라는게 무의식이라는게 부정으로 가는 것은 한 순간이더라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간이 해결해 준 행복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점점 마음이 달라졌고 저절로 행복해졌다. 일부러 다행이고 나는 행복한 직장이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월급은 그대로지만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실제로 좋은 기장님들을 많이 만나서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비행에 대한 조언이나 배움도 있지만, 기장님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이렇게 하면 인생 N회차를 사는 것처럼 내가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물론 가장 좋은 기장님 중 하나는 먹을 것들을 주시는 기장님이다.


정말 잘 먹고 다닌다. 레이오버 비행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잘 먹고 다닌다. 시간이 남는 만큼 좋아하는 요리에 취미를 붙일 여유가 있고, 평일 런치로 좋은 식당에서 가성비 있는 외식을 즐기기도 한다. 비록 24시간 이라는 외국에서의 하루 더라도 맛있는 음식 한 끼에 행복해진다.


피곤해도 갓생을 살고 있다. 새벽 비행이 있는 날이면 아침에 3시 혹은 4시에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전날에 깊은 잠은 못 자지만, 점심 즈음이면 퇴근하기에 상대적으로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런 날이면 분명 8시간 동안 회사에 있다가 왔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도 오후 4시가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갓생을 살았다는 뿌듯한 마음에 행복하게 잘 수 있다.


바빠도 좋은 것들을 많이 본다. 비행하는 동안 나는 굉장히 바쁘다. 예쁜 하늘을 볼 수 있지만 강렬한 햇살에 선글라스를 써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하지만, 태어나서 가장 자주 일출과 일몰을 보고, 가장 많은 별을 보고, 좋아하는 야경도 틈틈히 누리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제주에서 마음샌드 Get 했던 날!
제주도에서 동기 형이랑 먹은 저녁1
제주도에서 동기 형이랑 먹은 저녁2
출근하는 새벽 5시, 하늘이 예뻐서 사진을 안찍은 사람이 없었다
출근하는 새벽 5시 - 공항에 도착하니 더 예쁜 하늘
동그란 무지개가 예쁜 제주 앞 바다 아니고 하늘
일 하는 추석이지만, 노을이 예뻐서 기분은 최고였다
올해 많이 본 일몰 중 하나
구름 위를 걸치면서 날아가면 은근 기분이 좋다. 드라이브 하는 기분도 들고
야간 비행은 피곤해도 좋아하는 야경과 별은 실컷 볼 수 있다
'아침 안 먹었지' 하면서 기장님이 꺼낸 것은 던킨 도너츠. 이제는 눈치 안 보고 내가 10개 중에 7개는 먹는다.
먼저 비행했던 부기장님이 선물로 두고 가신 커피에 기분이 좋았다
제주에서 관광도 좋지만, 글을 쓸 때 행복해요
종종 커피를 사주시는 기장님들이 많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행복하기

일은 사람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것이 증거다.


미셸 트루니예 - 프랑스 소설가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동안,

월급은 조금 늘었고 승진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많이 행복해졌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마음껏 느끼려고 한다. 힘든 시기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은 찾아온다. 행복한 하루에도 짜증나는 일은 있는 것 처럼, 힘든 하루에도 웃을 기회는 있다. 그럴 때면 어린 아이처럼 큭큭 거리면서 좋아하고, 바보처럼 실실 웃고 다닌다.


필요하다면 만들 수 있다.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옛날 무한도전을 보면서 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시시콜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라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행복해지는 인형. 제 룸메이트에요.


그렇게 조금씩 행복해지고, 이제는 많이 행복하다.


행복, 약간의 덜 행복

요즘은, 안 좋은 일이 있다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행복의 반대가 불행이지만, 그냥 '덜 행복한 일' 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운이 나빴다 생각 해버린다. 그러다 좋은 일이 생기면 또 마니 좋아하고.


좋은 일은 마음껏 좋아하고

나쁜 일은 약간 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보는 것.


월급이 늘지 않아도

승진이 없어도


어차피 회사를 다녀야 하는 나에게

필요한 마음인 것 같다.



-에필로그-

저에게 먹을 걸 버려 주세요 :) 기분이 조크든요.

새벽 출근에 아침도 못 먹었던 어느 날, 매니저님께서 나에게

먹을 것들이 잔뜩 담긴 비닐봉지를 주셨다.


"부기장님, 승객 분께서 드시라고 주셨어요"


한 손님께서 간식을 주셨다.

조종사들이랑 승무원들 나눠 먹으라고.


성격이 꼬였다면,

집에 가져가기 번거로우니까

가방에 자리가 부족해서 주고 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좋았다.

'먹을 거 주는 사람이 제일 좋아' 라고 하면서.


하루 종일 내 자리 옆에 쌓아두고 틈틈히 아껴 먹으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결론: 먹을 거 요파 주라고 남겨주세요.

(잘 먹고 요가하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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