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머피의 법칙

꼭 괜찮다고 하면 흔들리더라


‘코로나가 이제 풀리는 구나’ 라는 생각은 이제는 ‘이제 코로나 다 풀렸다’ 라는 생각으로 바뀐지 오래 되었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는 물론 인천국제공항은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를 벗어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코로나 시절 ‘유령공항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휑- 했던 공항은 이제 사람들로 꽉 찼다. 코로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비행기를 길게 타면 생각해볼 만한 부분 한 가지에 관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바로 Seat Belt Sign 이라는 안전벨트 관련 신호등이다.


#1 Seat Belt Sign이 꺼지는 고도, 10,000FT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내외의 국내선에서는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별 일이 없다면 기내에서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떠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행시간이 길어진 만큼 승객들은 기내 화장실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띵-

비행기 바퀴가 지면과 떨어진지 이륙하고 약 5-10분, 이 소리를 들었다면 우리 비행기는 10,000피트 상공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항공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착륙 단계를 지났다는 의미다. 항공사에서는 지상~10,000FT 구간을 ‘비행중요단계’로 지정하고 승객과 승무원은 물론 조종사들도 비행 안전에 불필요한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여담으로 조종석은 굉장히 바쁘다. 사람이 둘이고 비행기가 한 대라고 하지만, 눈으로는 수많은 비행 계기를, 손으로는 스위치를 조작하고, 귀로는 관제사와 다른 조종사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하니까.)


#2 승객에게 10,000FT 신호의 의미?

만약, 이륙 후 띵-똥 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승무원들은 기내식과 같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이제 화장실을 가도 된다는 뜻이다. 가방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아이패드나 작은 미스트가 있다면 선반을 잠깐 열어 조심히 꺼내도 된다. 가장 중요한 구간을 벗어났으니 비행기에서 “조심스럽게” 각자의 할일을 해도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위험하니까 추천하지 않아요, 비행기는 갑자기 흔들릴 수 있으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꼭 Seat Belt 신호가 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류가 너무 좋지 않을 경우 계속 Seat Belt 사인을 켜고 비행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 날이라면 더더욱 불필요한 자리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흔히 터뷸런스라고 불리는 난기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강하게 비행기를 흔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잘못하다가는 기내에서 넘어져 관절을 다칠 수도 있다.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이동하는 경우, 부모는 물론 아이도 다칠 수 있다.


“승객여러분,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계실 때는 안전 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라는 안내방송은 객실 승무원들의 업무이지만, 안전벨트 신호를 켜고 끄는 것은 조종사들의 역할이다.


출처: Travel + Leisure


#3 조종사들에게 10,000FT 신호란?

10,000FT에서 조종사들은 한 차례 고민을 한다. Seat Belt 사인을 켤지 아니면 끌지. 우리가 움직여도 좋다고 했는데도 언제 어디서 난기류를 만날지 모르니까. 기류가 좋다고 판단해서 안전벨트 사인을 껐을 뿐인데, 갑자기 흔들린 비행기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고, 커피를 쏟아 소중한 옷을 더럽히거나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기류가 안 좋다면 당연히 안전벨트 사인은 켜져 있겠지만, 흔들리지 않더라도 조종사들은 한차례 고민하고 서로 상의하고 Seat Belt 신호에 대해 결정한다. 


수 많은 버튼과 스위치 중에서 Seat Belt 스위치는 어디 있을까요? | 출처: Reader’s Digest
정답은 바로 여기!, 아주 작은 스위치죠? 그치만 많은 생각의 결과물 입니다 | 출처: iStock

이 작은 스위치 하나에

승객의 안전과 편의, 승무원들의 업무가 달려있다.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많은 생각과 판단의 결과다.


#에피소드: 머피의 법칙


나: 10,000FT!


제주에서 이륙해 김포로 가는 비행기가 10,000피트 상공을 통과했음을 알렸다.

하늘은 맑았지만, 아직 구름은 저 높이 보였다.


기장님: 음 .. 아직은 괜찮은데, 일단 Seat Belt는 ON에 두고 갑시다.

나: 네, Seat Belt Remain ON


기장님은 사무장님과 인터폰으로 간단한 대화를 하셨다. 비행기가 아직은 흔들리지는 않는데 곧 흔들릴 수 있으니까 Seat Belt Sign은 켜고 비행한다는 의미였다. 화장실을 간다거나 이동이 필요한 손님이 계실 수도 있고 승무원들도 각자의 업무가 있다 보니 조심해서 할일을 하자는 뜻에서 나눈 대화였다.


기장님: 매니저님~ 기류는 괜찮은데 조금 이따가는 약간 흔들릴 수 있어요. 조심해서 서비스 하세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매니점님: 네 알겠습니다 기장님. 감사합니다.

* 매니저님은 비행기 승무원 중에서 사무장을 의미해요.


어느덧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도달했고, 기류에 대해 물어보는 관제사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관제사: 26,000FT Turbulance Condition?


관제사가 우리 고도의 기류를 물어보는 것이다. 관제사들과 조종사들은 서로 기상상태를 물어보거나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기상 레이더가 있지만, 역시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알려주는 날씨 정보가 제일 정확하니까. 이 정보를 바탕으로 관제사들은 순항고도를 정해주거나 조종사들 역시 비행 계획과 다른 순항고도를 요청할 수 있다.


마침, 비행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늘도 맑고, 이상한 구름도 없고, 이륙하고 15분이 지나도록 비행기가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으니까. 고도를 바꾸지 않는 한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 No Turbulance at 26,000FT


라고 말하는 순간…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소 격하게.

(하늘이 맑아도 기류는 좋지 않을 수 있다.)


하늘이 맑아도 비행기는 흔들릴 수 있다. | 출처: Twitter 계정 @MelquiadesLun1


기장님이 껄껄껄 웃었다.


기장님: 요파야, 너가 괜찮다고 하니까 흔들리잖아~ 하여간 꼭 그렇다니까. 내려가자~

나: (기장님에게) 네, 기장님~ 이래서 말조심 하라고 하나봐요~ (관제사에게) 인천 관제사님, 우리 2,000 피트 내려주세요.


‘오늘 참 한가하고 좋네’ 라고 생각하는 날엔 꼭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비행기 안에서도 ‘머피의 법칙’은 유효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



작가의 이전글 어떤 이들이 파일럿이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