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릿속에 여러 개의 문장들이 휙휙 스치듯 날아다니는 날도 있었다. 어? 이거 얼른 어디에라도 옮겨둬야 하는데... 하며 혼자 초조해하다가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자그마한 단어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마는 날들이었다.
# 실은 조금 바빴다. 봄부턴 새벽 수영을 시작했는데 이제 막 초급반에서 어푸어푸를 시작한 주제에 접영을 하고 싶어 꽤나 용을 썼다. 주말이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레일에서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만졌다. 그러다 여름엔 프리다이빙을 배웠다. 새벽엔 수영 후 출근을 했고 저녁엔 퇴근 후 다이빙을 하던 여름이었다.
농담이 아니고, 나는, 진짜로, 도리였다.
수영에 대해서도, 다이빙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 여름이 시작될 무렵 소설을 쓰는 사람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사람과 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역시 뭐라도 쓰고 싶어졌다. 우리 사무실밖에선 친구 합시다, 하며 끄적이던 소설을 다시 꺼냈던 것도 그 친구 덕분이다.
물속 깊이 들어가기 위해선 이퀄라이징을 해줘야 고막을 다치지 않는데 코를 막고 귀 안으로 공기를 밀어 넣을 때면 고막이 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작고 귀여운 동물 울음소리 같은데 처음 그 소리를 들었던 날, 그 느낌이 너무도 특별하고 감격스러워 언젠가는 이 장면을 내가 쓰는 소설 속에 꼭 넣고 말 테다, 라고 다짐했었다. 근데 나의 주인공은 화초 키우는 여자라 갑자기 물에 뛰어들어 이퀄라이징을 할 일이 없다. 괜한 다짐을 해버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는 중...(헛소리)
# 쓰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지만(쓰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지만) 브런치를 3년이나 하는 동안 남편 외 그 누구에게도 이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러워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소설을 쓰는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이곳을 먼저 알려주었고, 사무실의 누군가에겐 들켜버렸고, 어쩌다 보니 최근 여동생에게도 알려주게 되었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조금 안심하면서도 얼떨떨해하는 중이다. 굳이 알릴 필요도 없지만 꾸역꾸역 감춰야 했던 일도 아니지 않았나 싶다.
#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가족 여행을 떠났다. 보홀 일주일, 보라카이 일주일. 우린 긴 여름을 보내겠네,라는 남편의 말과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돌아오니 가을이라 조금 놀랐다. 정말이지 느닷없는 가을. 들숨 한번 마시고 날숨 한번 뱉었을 뿐인데 갑자기 선선해진 공기 때문인가. 계절 하나가 달라져 있으니 바로 어제의 여행인데도 한참 지난 일 같이 아득하다.
너무너무 기대했던 여행이었던 만큼 여전히 아쉽고 이전보다 더 그립다.
코 앞에서 거북이를 봤고, 정어리떼 사이에서 헤엄을 쳤고, 노을도 많이 봤고, 산미구엘 애플도 이전보단 실컷 마시며 뽕따색 바닷물의 일렁임에 멍하니 흔들리기도 했다. 보홀에선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고 보라카이에선 땡보와 헬로스파를 다시 찾아가 반가움을 전했다.
이주동안 경험하며 느꼈던 것들이 또 나를 스쳐 흩어지기 전에 이것만큼은 잘 기록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