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우리는 왜 부자가 아니야?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자마자 다행이란 생각부터 했다. '우리는 왜 가난해?'라고 물었다면 더 할 말이 없었을 테다.
최근 아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된 데엔 이유가 있다. 친한 친구 중에 부자가 있는 것이다. 사실 부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학을 하자마자 미국여행을 다녀왔고 커다란 새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집에 다녀온 아들 말로는 피규어 방도 따로 있다고 한다) 한창 포켓몬빵을 구하기 힘들 때에도 그 친구의 아버지가 한 박스씩 구매하여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했으니 부자인 거 같다는 것이 아들이 추측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그 친구가 친한 친구 몇 명에게 "아난티 코브에 갈 건데 같이 갈래?"라고 제안했다. 아들은 거기가 어딘지를 모르니 "엄마, 나 아난티 가서 자고 와도 돼? 수영복만 챙겨 오라는데..." 라며 가볍게 물었고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내가 "아난티? 아난티 코브? 거기 회원권 있어야 가는 곳인데?"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다시금 아! 역시나 부자구나, 했던 것 같다. 우리도 그 회원권 사면 안 되냐고 묻길래 아마도 못 사지 않을까,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여지를 줄 것을 그랬나 싶어 살짝 후회된다.
모두가 다 부자가 될 수는 없고 대부분은 우리처럼 평범해. 그리고 부자들이 모두 그렇게 남들한테 친절한 건 아닌데 그 친구네는 친절하네. 좋은 곳이니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 아니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참 고맙고 신나,라고 생각하자.
......라는 말이 이제 고작 10살인 아들의 마음에 얼마나 닿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왜 부자가 아니야?
아들이 다시 물었을 때, '어이, 아들. 너 말이야...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라는 푸념을 하고 말았다. 그건 말이야, 비겁함을 삼키는 것이라고, 비겁함을. 어쩌다가 그런 말을 했더라. 생각을 더듬어 본다. 아마도 그때 남편에게 사무실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며 후배들한테 쪽팔리고 싶진 않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싶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아들이 엄마랑 아빠는 왜 부자가 아니야?라고 물었기에 밥벌이의 애환과 비겁함을 아들한테 털어놓고 말았다.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어떤 사업이 시행되었다. 선생님들이 없는 상황에서 업무분장이 되었고 방학 때 사업이 시작되어야 해서 담당자들이 부재인 상태에서 일이 진행되었다. 학교장의 의지가 강했다. 일단 시작만 하면 누가 하든, 어떻게 하든 일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래서 일이라는 것은 늘 하는 놈만 한다. 업무 분장표가 무용한 경우는 생각보다 아주 많다.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내 후배들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을까. 사업비가 교부되기도 전에 품의 시행 없이 공사 업체가 학교에 와서 공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후배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으며 감사 때 처분을 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 여름동안 자주 고민했다.
몇 년 간 계약업무를 담당했었다. 몇억 단위 계약을 하며 업체들의 민원을 상대했다. 민원 중엔 계약을 하기도 전에 사업을 진행하여 생긴 문제들이 많았다. 컨설팅을 할 때면 늘 그런 문제로 야기된 어려움과 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쓰며 '관리자 인식 제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랬던 내가 학교에 나와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을 벌써 몇 번이나 겪고 있다. 관리자 인식 제고 불가로 인한 실무 현장의 곤란 파악과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았나. 그 놈의 만전. 정말이지 헛짓거리를 하다 왔구먼. 이제 와서 후회한다.
이런 식이면 행정실만 경고 처분을 받습니다,라고 말한 후로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사실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런 일들의 부당함에 대해선 굳이 근거 법령이나 감사사례를 들 필요조차 없고 유연함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도 이제는 조금 할 줄 안다. 걱정되는 건 다른 것이다. 후배들한테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이런 상황에서도 위에는 한마디도 못 하는 비겁한 선배로 보일까봐 그게 무섭다. 내가 정리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이런 무기력함을 떨쳐내고 뭐든 하나라도 제대로 정리해야지, 다짐하며 출근하지만 그저 멍청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퇴근길엔 오늘도 하루치의 비겁함을 삼키고 왔구나,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돈을 버는 일은 비겁함을 삼키는 일이다.
비겁함을 삼키는 만큼 돈을 준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비겁함을 삼킬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 아들이, 우리는 왜 부자가 아니야? 우리도 그 회원권 사면 안 돼?라는 말을 한 후로 더 자주 생각한다. 예전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삼키면 삼킬수록 많은 돈을 준다고 한다면, 그래서 내 아들에게 어떤 결핍을 느끼지 않게만 할 수 있다면, 그까짓 거 못 삼킬 것도 없지. 그런 생각도 든다.
오늘 내가 삼킨 비겁함은 얼마짜리일까.
좌회전 신호를 받으며 도로 위에 멈춰서 계산을 해본다. 월급을 쪼개어 일당을 계산하고 그 일당에 포함된 비겁함의 값을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신호가 바뀌면 비겁해도 좋으니 아들이 가난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액셀을 쿠와앙 밟아 집으로 간다. 너무 하찮아서 도리어 조금 슬픈 내 비겁함은 잠시 뒤로 한다.
+ 조금 다른 소리를 덧붙여 본다. 요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있다. 이슬아 작가가 1편에 500원을 받고 연재했던 글들이다. 그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쓰는 글들은 얼마쯤일까, 생각하게 된다. 글의 내용도 그렇고, 구독자 수도 그렇고... 이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 글이 50원 정도의 가치는 있을까.
읽고 싶은 글에 대한 취향이 나름 확고한 편이라 브런치 안에서의 활동 반경은 좁다. 그런 내 눈에도 브런치의 '응원하기' 기능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보인다. 이슬아 작가의 글이 500원이었는데, 과연 저 글들은 얼마쯤 될까. 나도 모르게 그걸 가늠하고 있다. 글 한편에 대해 구체적인 값이 매겨진 것은 이슬아 작가의 글이 처음이라 그저 그 작가의 글이 기준이 된 것 같다.
사실은 50원의 가치도 없는 글을 쓰면서 내 글을 그 이상으로 봐달라고 하는 것 또한 내가 삼키고 있는 비겁함이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1편 정도를 쓰고 있으니 하루치의 비겁함은 얼마쯤일까, 생각한다.
사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비겁함을 삼키는 일이다. 그 비겁함을 삼켜가며 어쨌든... 꾸역꾸역 어른 행세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힘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