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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Jan 10. 2023

서울사무소에서 시공담당자가 하는 업무들

EPC 프로젝트 현장 부임 전에 해야 하는 업무들


“윤 과장” 


“넵, 부장님” 


토목건축설비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조재휘 부장님이 부르셨다.  


“나는 HVAC는 잘 몰라. 서울사무소에서 HVAC가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네. 부장님” 


“윤 과장이 알아서 준비해. 윤 과장은 해외프로젝트 몇 개 해봤지?” 


“아, 제가 Qatar에서 한 개, UAE 프로젝트 두 개, Kuwait 프로젝트 한 개 해서 총 4개 해봤습니다.” 


“그래. 윤 과장이 HVAC 전문가구만. 난 윤 과장이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고 있어도 되겠지? 솔직히 나는 토목팀 업무 챙기기에도 벅차.”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준비하겠습니다. 혹시나 문제가 있으면 부장님께 먼저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래. 나는 윤 과장만 믿을게. 어서 가서 일 봐.” 


시원하게 대답한 후에 자리에 돌아왔다. 컴퓨터 화면에 엑셀파일을 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어봤다. 


1. 작업절차서

2. 자재승인원

3. 협력업체 선정

4. Vendor 선정

5. 착수회의(KOM : Kick Off Meeting) 진행

6. 검사계획서 (ITP : Inspection & Test Plan) 작성

7. 도면 검토


앞으로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이 많은 일들을 서울사무소에 있는 몇 개월동안 다 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문제가 생긴 현장에 지원을 나가서 마무리하고 들어온 적이 많아서 일부 업무들은 경험이 없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으로서,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내가 다니고 있는 H건설회사에서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모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서라도 시간 내에 맡은 일을 끝내는 것이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작업절차서도 Duct 시공이나, 화장실 상하수 배관 설치, 냉수/냉각수/냉매 배관 설치 작업, HVAC 자동제어시스템 설치의 경우에는 혼자서 작성할 수 있지만, 건물 내 소방배관 설치 작업이나 HVAC 장비 설치 작업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꽤나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모르는 데 뭐를 망설이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십수 년을 일하면서 너무나도 절실하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모르는 것은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답이다.  


"네, 이번영입니다." 


"차장님, 저예요. 윤 과장이요."


UAE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하면서 꽤나 친해진 이번영 차장이다. 원래는 HVAC 시공 엔지니어였는데, 몇 년 전에 설계팀으로 넘어가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HVAC 설계 책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어. 윤 과장. 왜? 나 바쁘니까 빨리 물어봐."


"아, 제가 서울사무소가 처음이라서 모르는 게 있어서 그런데요. 혹시 차장님, 다른 프로젝트에서 썼던 작업절차서 가지고 계신 거 있으세요?"


"응? 작업절차서? 야, 그거 그냥 만들어. 다른 프로젝트에서 썼던 거를 아람코 애들이 쉽게 승인할 거 같아? 네가 시방서(Project Specification) 보고 만드는 게 더 빠를걸? 너 어떻게 만드는지 다 알면서 왜 이래?"


"아, 다른 건 자신 있는데, 장비설치랑 소방 배관 쪽은 영 자신이 없어서요. 제가 매뉴얼 보고 만드는 건 잘하는데, 아무 자료가 없으니까 감이 안 잡히네요." 


"그래? 잠깐만, 내가 찾아보고 메일로 보내줄게. 아마 다른 프로젝트에서 썼던 거 있을 거야. 없으면 다른 프로젝트에 있는 사람한테 받아서 보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역시, 차장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서울사무소라는 것은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사용했던 용어로 새로운 EPC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들이 모여서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회사마다 용어는 다를 수 있으나, 해당 프로젝트 전담팀이 모여서 일하는 공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해외 EPC 프로젝트의 경우 이런 전담팀 사무소는 발주처 인원들도 같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서, 발주처와 협의 후 그 위치를 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일본 발주처와 일하는 경우에는 일본 발주처 본사 근처에 사무소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보통 HVAC의 경우 시공도면(IFC)의 60%가 발주처의 승인을 받은 후에 현장에 부임(혹은 파견)을 나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IFC 60%라면 주요 건물들의 Plumbing 도면, Duct 도면, 장비 배치도, 냉수/냉각수/냉매 배관 도면들의 절반 이상이 완료된 경우를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HVAC 엔지니어가 발령을 받아서 서울사무소에 나갔을 때는 아직 시공도면이 준비되기 전이다. 정확한 크기나 위치가 명시되지 않은 IFR (Issue For Review) 버전의 도면을 발주처에 제출해서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일 가능성이 많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EPC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지연될 경우가 많으므로, EPC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미리 해서 추가적인 지연을 막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시공도면이 없는 이 상황에서도 HVAC 시공 엔지니어가 해야 할 일들은 아주 많다. 


1. 업체 선정

시행사 실제로 공사를 수행할 시공사를 선정해야 한다. 관련하여 국내 하도급법에 따라서 공개입찰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장설명회를 진행하고, 각 업체들에게 견적을 접수받은 후에, 계약적(Commercial)/기술적(Technical) 검토 후에 협력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계약과 관련된 업무는 보통 공무(Project Control) 팀과 협조하여 진행하게 된다.   


2. 구매 지원

주요 기계 및 장비의 구매는 설계팀 및 구매팀과 협조해서 진행해야 한다. 

시공 엔지니어는 현장 설치 일정을 고려해서 기계와 장비 납품 일정, 기계와 장비를 제작하여 납품하는 회사인 Vendor에게 요청할 사항(Supervisor 동원 기간 및 일정, 납품되어야 할 잡자재 종류 및 수량, 공사 및 시운전을 위한 여분 자재 종류 및 수량 등)을 정리해서 구매팀에 전달해야 한다.

설계팀에서 산정한 장비 용량 및 구성이 시방서 (Project Specification) 및 도면과 일치하는지 검토해서 그 결과를 설계팀에 전달해야 한다. 


3. 시방서(Project Specification) / FEED (Front End Engineering Diagram) / 발주처와의 주요 계약사항 검토

EPC 프로젝트는 대개의 경우 비슷한 경우가 많으나 프로젝트 별로 특별한 요구사항이 있는 경우가 많다.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는 문서들을 꼼꼼하게 검토하여 상기 문서들에 명시된 모든 사항이 도면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팀과 협력해야 한다. 


4. 작업절차서(Method Statement) 발주처 제출 및 승인

EPC 프로젝트는 각 공사 별 작업 방법을 사전에 발주처와 협의해야 한다. 

각 공사 작업절차서에 작업 방법을 명시하여 공식 문서로 제출하고, 발주처에 승인을 받아야 현장에서 관련 작업에 대한 공사 착수가 가능하다. 

 

5. 자재승인원(FMAR : Field Material Approval Request) 발주처 제출 및 승인

EPC 프로젝트에서 사용되는 모든 공사자재는 원칙적으로 발주처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Duct Sheet, Plumbing 배관 및 Fitting, 냉수/냉각수/냉매 배관 및 Fitting, Support 등의 HVAC 시공에 사용될 자재들에 대해서 자재승인원을 발주처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6. 도면 검토

시공 엔지니어는 시공 도면(IFC)을 검토할 때 시공성 및 유지/보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프로젝트 시방서에 있는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꼼꼼하게 시공도면을 검토하고, 만약에 다른 경우 설계 팀에 관련 내용을 문의해야 한다.


상세한 절차는 회사 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진행하는 업무의 내용은 대개 위에 명시한 것들과 비슷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업무는 회사 별로 수행하는 주체가 다를 수 있으므로, 회사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업무의 종류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작업절차서, 자재승인원의 제출 및 승인은 대부분의 건설회사에서 시공 엔지니어가 담당하므로, 고민하지 말고 미리 챙겨두자. 그리고 시방서 및 도면 검토는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업무이다. 특히 도면은 프로젝트 별로 그 종류 및 형태가 다를 수 있으므로 최대한 자주 확인하면서 빨리 익혀두어야 프로젝트 내용 파악 및 공사 관리에 편리하다.


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문서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현장 공사를 착수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EPC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회사끼리 문서를 주고받을 때 TR(Transmittal)을 사용하고, 공식 문서를 접수하면 근무일 기준으로 10일에서 15일 내에 답변을 송부한다. 즉, 내가 자재승인원을 만들어서 발주처에 보내면, 3주 후에 답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이므로 근무일 기준 5일이면 휴일을 포함해서 일주일이 된다.) 만약에 내가 어떤 공사를 착수한다고 하면 최소한 4주 전에는 발주처에 자재승인원을 보내야 3주 후에 승인을 받고, 자재인수검사(Material Receiving Inspeciton)를 진행해서 해당 자재를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모든 공사자재는 발주처의 승인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자재승인원은 최대한 먼저 처리해야 하는 문서중 하나이다. 


또, 현장에서 작업을 진행하려면 작업허가서(PTW : Permit To Work)를 제출하고 승인받아야 한다. 작업허가서를 만들 때 반드시 첨부해야 하는 서류 중 하나가 바로 발주처에 승인받은 작업절차서(Method Statement)이다. 발주처에 제출이 아니고, 승인을 받은 작업절차서가 필요하다. 작업절차서는 몇 차례 서류를 보완하여 다시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우리가 발주처에 제출하면 발주처가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어떤 작업을 처음으로 시작하려면 적어도 3달 전에는 관련 작업절차서 초안(Revision 0)을 발주처에 제출해야 한다. 


해외 EPC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엔지니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모든 영어문서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방서 및 계약서도 영어이고, 우리가 제출해야 하는 문서도 모두 영어로 작성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영어로 문서를 읽고 작성하는 것은, 영어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만약에 해외 EPC 프로젝트 엔지니어가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어 문서 읽기 및 작성하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데 능숙하다면, 업무 처리에 필요한 시간이 훨씬 적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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