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전 스케줄 만들기
"윤 과장. 소장님이 시운전 스케줄 만들어서 보고하라고 하셨어. 언제까지 할 수 있지?"
공정팀 책임자인 김동환 차장님이다.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스케줄을 작성하고 관리하는 공정팀의 책임자인 만큼 깔끔한 일처리 솜씨를 자랑하는 분이다. 발주처와 진행하는 모든 회의의 자료를 작성하고 소장님이 참석하는 모든 회의에 같이 참석하는 등 프로젝트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동환 차장님이 요청하는 것은 최대한 빨리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 그래요? 시간이 많이 있나요?"
"전기팀이 이틀 후에 보고하고, 기계팀이 4일 후에 보고하기로 예정돼 있으니까, HVAC는 3일 후에 하는 게 어때?"
"시간이 많진 않네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3일 후에 보고하겠습니다. 스케줄 자료는 모레까지 보내면 되나요?"
"아냐. 소장님도 이번 보고에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계셔서, 자료는 미리 보내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하셨어. 그냥 그날 보고할 때 설명하라고 하셨으니까, 보고 준비만 잘하면 될 거야."
"아, 다행이네요. 알겠습니다. 3일이면 좀 빡빡하긴 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막막하다. 총 15개 건물의 HVAC 시운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런 스케줄을 만들어 본 적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AHU나 ACCU 같은 장비들이야 Vendor Supervisor를 부르면 보통 며칠이면 끝낼 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HVAC Control Panel (HCP)은 문제다. 방화벽에 지나가는 Duct 마다 설치되는 MFD (Motorized Fire Damper)에, AHU에 3개씩 설치되는 MD (Motorized Damper)들, 중요한 방마다 설치되는 TT(Temperature Transmitter : 온도 센서)와 MT(Moisture Transmitter : 습도 센서)들, 건물마다 5대씩은 설치되는 EDH (Electric Duct Heater)에다가, 가습기 (EHU : Electric Humidifier Unit)까지 확인해야 할 장치의 종류도 많고 수량도 많다...
'어...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은데?'
막상 확인해야 할 장치들의 종류를 적어보니 10가지도 되지 않았다. 주요 장비는 Vendor Supervisor가 해결해 줄 것이고, 나는 온도 및 습도 센서들과 Damper류를 확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현장에 설치된 센서들과 Damper를 확인할 사람과 HCP에서 신호를 확인할 사람으로 나눠서 총 2명이 필요하다. Duct에 설치되는 MFD 같은 경우에는 사다리를 사용해야 하므로 사다리를 잡고 있을 사람 1명까지 총 3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전기 1 Set에 사람이 3명이면 1팀이 된다. 만약에 확인해야 할 장치가 많으면 HCP에 1명은 그대로 두고 2인 1조로 현장을 확인할 팀의 숫자를 늘리면 된다.
"Imran, please let me know the each building's total instrument and damper quantities such as MFD, MD, TT, MT, PT and so on."
"OK, Mr. Yun."
"I need all buildings' information."
"No problem."
사다리를 사용해서 확인해야 할 장치는 MFD, MD, EDH이다. 가습기와 센서류(온도, 습도, 차압)는 사다리가 필요 없다. 사다리를 사용한다면 40분에 하나의 장치를 확인할 수 있을게다. 사다리가 필요 없다면 20분이면 충분하다. 뭔가 실마리가 보였다. 이렇게 각 건물의 모든 장치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면 각 건물의 HCP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한 각 건물의 시간을 합하면 전체 15개 건물의 시운전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휴일을 제외하고 필요한 일수를 계산하면 될 것 같다.
...
"예, 윤성지입니다."
"응, 윤 과장. 소장님이 이제 들어오라시네."
"네, 알겠습니다."
준비한 스케줄 자료를 들고 소장님 실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응, 들어와."
"네, 안녕하십니까, 소장님. HVAC 윤성지입니다."
"스케줄은 다 만들었어?"
"네. 가능한 세세하게 뽑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 그래서 총 필요한 기간이 얼마야?"
"15개 건물 HVAC 시운전에 필요한 기간은 총 18개월입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3달, 아니 2달 내에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RFSU (Ready For Start Up)를 받아야 하는데, HVAC 시운전에만 18개월이 필요하다고?"
"네. 지금 저한테는 시운전에 사용할 수 있는 팀이 1 팀 밖에 없기 때문에 총 18개월이 필요합니다."
"이게 말이 돼? 스케줄을 어떻게 만들었길래 그런 결과가 나와?"
"여기 보시는 것처럼, MFD, MD, EDH처럼 Duct에 설치된 장치를 확인하는데 각각 40분이 걸린다고 계산했습니다. TT, MT, PDT처럼 사다리가 필요 없는 장치들은 2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건물 별 계기 및 장치들에 대한 총수량과 시운전 소요시간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15개 건물 HVAC 시운전에 필요한 시간은 총 281,000분이고, 이것은 4,683시간으로 전부 468일이 필요합니다. 한 달에 26일 근무한다고 계산하면 18개월이 됩니다."
"... HVAC 시운전에 뭐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해? 나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소장님은 내가 가지고 가서 설명했던 스케줄 자료들을 공중에 집어던졌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자료들을 집어 들고 소장님 사무실을 나왔다.
...
"윤 과장, 지금 어디야? 소장님이 다시 오라고 하시는데?"
건축팀 용태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김동환 차장에게 전화가 왔다.
"네, 지금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었어요. 5분 내로 들어가겠습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나한테 필요한 건 18개월이야. 그보다 더 줄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똑똑똑
"윤 성지입니다."
"들어와."
소장님은 손님과 이야기할 때 쓰는 소파에 앉아 계셨다. 나는 소장님 옆에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윤 과장. 나는 18개월을 2개월로 만드고 싶은데, 방법이 있나?"
"있습니다. 9개 팀을 꾸릴 수 있는 인원과 테스트 장비를 주시면, 2달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그래? 잠깐만. 어. 공무부장. 내 방으로 와봐."
갑자기 소장님이 공무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조금 후에 급한 걸음으로 공무부장님이 들어오셨고, 나와 반대 자리에 앉으시면서 소장님께 물었다.
"네, 소장님. 어떤 일이신가요?"
"응. 여기 윤 과장이 HVAC 시운전을 위해서 9개 팀이 필요하데. 윤 과장이 원하는 대로 인원을 뽑아주고, HVAC 시운전 용 장비를 구해줘. 윤 과장. 두 달이야. 난 더 이상 시간은 못 줘."
"네. 알겠습니다. 두 달이면 충분합니다. 그 대신 두 달은 9팀 인원과 테스트 장비 9세트가 갖춰진 다음부터 가능합니다."
"알았어. 들었지? 공무부장? 윤 과장이 원하는 대로 다 지원해 줘. 내가 봤을 때, 우리 프로젝트의 성패는 HVAC에 달려있다."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런데 윤 과장, HVAC 시운전을 하는데 Vendor Supervisor는 필요 없나?"
"HVAC 장비 시운전을 위해선 Vendor Supervisor가 필요한데, 건물당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작은 건물들은 동시에 3~4개 건물을 일주일 안에 완료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 Supervisor 말고. HVAC 자동제어 담당하는 Supervisor는 필요 없어?"
"네. 그 Supervisor도 한 이주일 정도 불러야 합니다. 그 Supervisor와 제가 직접 HCP에 대한 시운전을 진행하고 그 Supervisor는 돌려보낼 예정입니다. 발주처와 진행하는 Inspection은 저희 팀이 직접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필요한 인원이랑 테스트 장비의 종류랑 숫자만 하나 간단하게 정리해서 보내 줘. 내가 최대한 빨리 준비해 볼게."
"네, 감사합니다."
시운전이란, 어떤 장비나 장치를 가동하기 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이다. 보통 해외 EPC 프로젝트에서는 Pre-commissioning(Pre-comm.)과 Commissioning으로 구분한다. Pre-comm. 은 시스템이 아니라 하나의 품목에 대해서 가압 전에 확인하는 테스트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배관 설치 후에 진행하는 기/수압 테스트 (Pneumatic or Hydro Test), 전기 케이블을 설치한 후에 진행하는 IR (Insulation Resistance Test 혹은 Meggaring)과 Continuity Test, Duct 설치 후에 진행하는 Leak Test, 냉매배관 설치 후에 진행하는 기/수압 테스트와 진공 (Vacuuming), AHU와 ACCU 같은 장비에 전원을 연결하기 전에 진행하는 테스트 (Alignment, Belt Tensioning)등을 Pre-comm.으로 분류한다.
Commissioning은 가압 후에 기능을 확인하는 절차이다. 장비로 이야기하면 AHU나 Pump 등의 Motor Solo Run Test가 대표적이다. HCP의 경우에는 기능이 많아서 조금 더 종류가 더 많은데, SAT (Site Acceptance Test), Function Test, Performance Test 등이 있다. 각 Test에서 확인할 것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SAT : 공장에서 수행했던 FAT(Factory Acceptance Test)를 현장에서 다시 수행하는 것으로, 제품이 납품 중에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이다. 도면대로 HCP가 제작되었는지, 모든 Input/Output Point들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HCP의 모든 장치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프로그램(PLC, HMI 등)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한다. SAT를 진행할 때에는 현장에 설치한 케이블과 계기/장치들을 HCP와 연결하지 않고 HCP만 확인한다.
Function Test : HCP가 가진 모든 기능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단동 테스트와 연동 테스트로 구분된다. 단동 테스트 때는 HCP에 Hardwire로 직접 연결된 계기 및 장치들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수동 및 자동 운전 기능을 확인한다. 연동 테스트 때는 F&G(Fire & Gas System)이나 DCS(Distributed Control System)들과 HCP가 주고받는 신호 (Interface Signal)들과 관련된 기능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Fire Alarm을 발생시켜서 HVAC Control System이 Shutdown 되는지 확인한다. (F&G System의 기능이 HVAC Control System과 함께 제대로 기능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System끼리 주고받는 신호에 따른 기능을 확인한다.)
Performance Test : HVAC와 관련된 마지막 Test로 HVAC Control System이 그 목적대로 기능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프로젝트 시방서(Specification)는 중요한 공간의 온도/습도/압력 조건이 범위로 명시되어 있다. (23±1.5℃, 50±10%, 대기압 대비 25Pa Positive Pressure) HVAC Control System이 자동 운전으로 이 조건 안에서 운전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보통 5~30일 동안 온도/습도/압력 조건이 유지되는지를 Data Logger와 같은 Report를 출력하는 장치들을 건물 곳곳에 설치해서 그 결과를 확인한다. 만약에, Performance Test 중에 HVAC Control System 중 어떤 계기나 장치가 고장 난 다면, 관련 계기나 장치를 수리한 후에 다시 처음부터 Performance Test를 진행한다.
HVAC 시운전은 회사에 따라서 진행하는 팀이 다르다. 어떤 회사에서는 시운전 팀에서 진행하고, 또 다른 회사는 HVAC 팀에서 진행한다. 즉, HVAC 시공 엔지니어가 HVAC 시운전까지 담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나는 이 것 때문에 대기업 건설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공장자동화 시스템을 제작하는 외국계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가진 내게 HVAC Control System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시운전을 진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카타르에서 진행했던 비료공장 프로젝트에서 HVAC 프로그래밍과 시운전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본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일자리를 제안 헸고 이직하게 됐다. 덕분에 나는 이제까지 총 4개의 해외 EPC 프로젝트에서 HVAC 시운전을 포함한 HVAC 공사관리 업무를 담당했고, 지금은 5번째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위에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사항들 외에도, HVAC Control System의 시운전을 위해서는 HVAC 장비 설치 공사 일정, HVAC Control System 설치 일정 (센서, Damper 및 케이블 설치/결선/Pre-comm.), 전기팀의 공사일정, 전기팀 시운전 일정 (특히 MCC 시운전이 완료되어야 HVAC 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시운전은 해당 건물에 대한 공사를 완료하고, 시운전 절차서를 발주처에 제출해서 승인을 받은 후에 수행이 가능하다. (실제로 어떤 발주처는 첫 번째 시운전을 시작하기 최소 한 달 전에는 시운전 절차서에 대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시방서에 명시하고 있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스케줄은 결과적으로 맞지 않다. 하지만 작성된 스케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스케줄이 있어야 작업들 간의 관계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 각 작업 별 작업 기간, 인원, 자재, 장비, 공구 등 필요한 자원의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들을 기초로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HVAC 시운전을 시작하기 위해선 해당 건물의 MCC(Motor Control Center)에 대한 시운전을 완료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실현가능한 HVAC 시운전 일정을 파악하기 위해선, 전기팀의 MCC 시운전 일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 냉동기를 설치하는 건물이 있다면, PW(Portable Water) 배관의 설치 및 공급 일정이 필요하다. 냉수를 만들어서 AHU에 보내야 하는 냉동기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PW 공급 없이 냉동기를 가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해외 EPC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시공 엔지니어는 스케줄을 작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미리 완료되어야 할 작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목표한 작업량을 완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원/자재/장비/공구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HVAC 시공 및 시운전에 필요한 모든 공사 (Activity) 및 테스트의 종류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토목, 배관, 전기, 건축, 계장(Control & Instrument) 등 다른 팀들과 HVAC가 물리적, 논리적, 전기적으로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도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스케줄을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