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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산책 Jul 01. 2023

어차피 우리의 갈 길은 다르다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난 당신에게 전하는 이야기


  온갖 종류의 차들이 바삐 제 갈 길을 찾는 도심의 네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더럽게도 더워서인지 어딘지 모를 곳들에서 경적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한건지 아예 다른 쪽 차선의 일인건지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 하는 사이에 푸른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좌회전. 바닥에 칠해진 분홍선을 따라가는데 '빠앙-'. 순간 화들짝 놀라면서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이거 나한테 한거구나. 좌회전하고 바로 이어 우회전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바로 우측 깜빡이를 켜고 들어간다는게 뒷차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좀 더 빨리 퇴근하고픈 마음에 조금 성급하게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의미로 비상깜빡이 버튼을 누르는데 뒷차가 쌍라이트까지 켜고 속도를 높이려는게 보인다. 깜빡이도 켰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백미러를 힐끔거리다가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도 모르게 점점 화가 나는 느낌. 앞차에게는 쌍라이트를 날리거나 빵빵거리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지만, 뒷차에게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솟구치다가 이대로 가만 있어야 하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 쯤. 백미러에서 보이는 시야에 아까 그 뒷차가 사라졌다.

 쳇, 잘 가라.

 어차피 서로 갈 길도 다른 걸. 뭐하러 씩씩거렸나 싶다.

 집으로 오는 길에 화도 한 풀 꺾이고 시간도 많이 지나 그 일이 잊혀져갈 즈음,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는데 경비아저씨가 한 마디 하신다.

 저기, 뒤에 등이 나가셨네. 후진할 때 보니까 한 쪽만 켜져.

 아, 나 아까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갔구나. 빵빵거릴만 했네.

  혼자 괜히 웃음이 난다. 별일도 아닌 걸로 속끓이던 그 때 그 찰나의 내가 생각난다.

  어차피 우리의 갈 길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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