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단 이야기
올해 막 서른 줄에 들어서며 입사 2주년을 맞게 되었다. 벌써 2년이나 됐다 싶다가도, 아직 2년밖에 안 지났나 싶다. 그만큼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겪은 변화들이 많았음을 방증하는 것 같다. 놀랍게도, 팀에서는 아직 막내이다. 물론 인턴 분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팀의 귀여운(?) 막내로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가는 것을 보고 나의 업무와 프로젝트도 안고 떠나보내는 이런 시간들을 한번 곱씹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과 입사 이년이라는 명분이.. 좀 그럴싸했다. 그리고 작년엔 회고 안했으니깐.
그저 타임라인 순으로 있었던 일들을 정리할 수도 있지만 그럼 너무 재미없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회고 뽐뿌를 넣기도 힘들 것 같아서, 간단히 회고 모델을 만들어 보았다. 회사 내부와 외부에서의 이벤트 구분을 X축으로 두고, Y축에는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생각나는 꼭지들을 각 사분면 중 해당되는 것에 넣는다. 끝.
데일리 한 운영 업무가 줄어들었다.
해보고 싶어 앓던 몇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퍼포먼스 판단 기준에 사업적 영역을 고려하게 되었다.
든든한 업무 페어가 생겼다.
데이터 리터러시가 향상되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할 말이 많은 회고 포인트이다. 이 이외에도 수 없이 많은 말을 할 수 있겠으나, 이 정도로 정리해보았다. (나머지는 내 일기에 쓸 예정..) 회사에서 2년 차로 넘어오며 나의 리소스 중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운영 업무가 덜어졌고, 좀 더 굵직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데 리소스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난 운영 업무를 좀 더 admire 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손이 되어 열심히 일해 주시는 인턴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살짝 전해 본다. (평소에도 고맙다고 잘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줄어든 여유 리소스 덕분에 매우 하고 싶었던 몇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매체 광고와 CRM을 곁들인 프로모션, SEO 고려한 블로그 개편(드디어...!), 그리고 데이터 관련 TF까지. 각 프로젝트의 잠재 고객과 목표가 사뭇 다른 것 또한 스타트업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작년에 진행한 픗픗 인터뷰에서도 얼핏 얘기했던 것 같은데, 작년의 나는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 사업적인 관점을 좀 더 가지고 싶었다. 예전엔 프로모션 하나를 설계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마케팅 그리고 프로덕트 개발 관점에서는 영향성을 미리 예측하는 수준은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 이 프로모션이 전사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져다주고 어떤 우선순위를 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은 부족했다. 늘 우선순위 밀리는 기획을 가져가느니, 사업적인 관점을 좀 더 갖고 회사에서 원할 만한 기획을 해서 나와 동료들의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은 많이 해소되었다. 우리 회사에는 전략 기획에 탁월한 인재들이 많았으므로.
욕심이 많았으니 당연히 나는 종종 과부하에 걸려 뻗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든든한 업무 페어가 생긴 덕분에 파트너가 생기는 기쁨을 톡톡히 맛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일과 밥은 1/n 법칙에 약간 위배되는 것 같은 게, 1명 이서는 2인분을 먹기는 힘들지만, 2명이서 5인분은 쉽고, 3명이서 10인분은 더 쉽다.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 혼자면 3일을 걸렸을 일을 둘이 하니 하루면 끝나고, 1주일은 걸릴 기획을 이틀 만에 끝내며 귀인이 들어올 것이라는 작년 운세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또한 Sql과 태블로를 좀 더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덕에, 그리고 데이터 TF를 통해 당시 같이 프로젝트를 한 개발자분께 몇 가지 속성 과외 등을 받으며 이전보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한층 더 좋아진 것 같다. 다만, 요즘은 또 쿼리 안 보고 매번 태블로로 보는 탓에 머릿속에서 쿼리가 점점 휘발되려고 한다.. 여러분. 태블로는 사랑입니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태블로 자격증 취득(숙원사업)
내 이름이 쓰인 책이 출간되었다.
작년도 아닌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인 2019년 8월, 헤이조이스에서 손승현 변호사님이 진행하신 '내 일과 AI의 연결고리'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내 일과 기술을 연결해서 커리어 목표를 설계해보는 일종의 자기 계발 프로젝트였는데, 그때 난 저런 것들을 적었더랬다. 저기 적었던 나의 목표들은 훗날 나의 자양분이 되어 결국 회사에서 데이터 TF를 진행하고, 태블로 자격증을 따고, 대시보드를 구축하고, 그리고 이를 브런치에 올리는 등의 결과물로 나에게 1년 6개월의 시간에 거쳐 하나둘씩 나타났다. 소오름!
그리고 지금 회사 입사 전부터 나에게 머릿속에 콕 박혔던 만트라 같은 SEO가 점점 마케팅 씬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더니, 시기적절하게 SEO 콘텐츠를 브런치에 올렸다는 이유로 운 좋게 책도 쓰게 되었다. 언제나 출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다. 한 때는 그냥 작가가 꿈이었고, 나중엔 방송 작가.. 아 그럼 정 안되면 그냥 출간 작가.. 이런 거였는데, 며칠 전 실물로 책을 받아본마음은 매우 오묘했다. '열심히 살았더니 정말 이런 보상을 받는구나..'라는 식의 멋진 감상이면 좋겠는데, 의외로 나의 감상은 '내가..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될까..?'라는.
여전히 마케팅팀 막둥이
여전히 아름다운 나의 자리 뷰
앞서 말했듯, 인턴 분들을 제외하곤 내가 아직 팀 막내다. 나에게 이들은 퍼포먼스 마케팅 계의 대모(?) 같은 존재로 늘 존경하고 있다. 웃프게도 난 프로덕션, 나머지 두 분은 대행사 경험을 가지고 있어 아직도 가끔 술자리에서 내가 겪었던 가장 황당한 일 베스트를 손에 꼽으며 배를 잡는다. 그리곤 눈물을 조금 닦아요...
코로나로 아름다운 내 자리 사무실 뷰를 못 본지는 오래되었지만, 나의 사무실 자리 뷰는 나와 연봉대의 사람들 중에서는 감히 최고라고 장담해본다. 웃풍이 도는 단점은 있지만(..) 사실 난 내 자리를 너무나 좋아한다. 가끔 일찍 출근해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들어가 맑은 하늘을 보고 커피를 마시던 때가 조금은 그립다.
여전히 헤이조이스
여전히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
여전히 다양한 취미
사실 헤이조이스 가입 년수가 지금 회사 근속 년수보다 길다. 벌써 함께한 지 2년 반이 된 것 같은데.. 여전히 헤이조이스에서 사람들이랑 공부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고인물(?) 행세를 톡톡히 하고 있다. 작년엔 꽤나 다양한 자리에 참여한 것 같은데, 서포터로서 와인 트래블노트를 계속 참여하고 있는 것 이외에도 SNS로 손쉽게! 퍼스널 브랜딩 시작하기, 데이터 덕후가 세상을 지배한다, P2P 소액 투자가 뭔가요? 등의 이벤트와 클럽에 연사 및 리더로 참여하며, 올해에는 프로젝트 리딩을 도전해보려고 한다.
작년에 생긴 새로운 취미는 바로 그림 그리기. 좀 더 공고해진 취미는 와인과 타로. 약간 시들해진 취미는 디제잉.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플레이할 곳이 없다 보니 사람의 수가 적어도, 혹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을 확실히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앞으로도 유지될 듯. 여전히 운동은 하고 있지 않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서, '변하지 않았다' 축에 속하는 꼭지들이 다소 억지 경향성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란 있는 것이니까 괜찮지 않을까?!라고 자기 위안을 해보며 여러분의 일 년 회고에 조금의 뽐뿌가 되었길 바랍니다. 아직 진짜 새해가 오려면 2주 남았으니 오늘이 1월 30일이라고 해도 2020년을 회고하기엔 늦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회고의 끄트머리에는 올해 목표도 적어보세요. 원래 회고란 그런 맛이니까요.. 전 조금 부끄러워서.. 일기장에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