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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 Apr 15. 2020

[위스키] 셰리 캐스크에는 셰리가 담긴 적이 없었다.

셰리 식초라면 몰라도.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이 반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영향에는 맥캘란과 글렌피딕이 한국 주류 업계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던 시기와 당연히 맞물린다. 그 유행이 주춤하는 듯하더니, 요즘은 국내 스피크이지 바를 중심으로 다시 어느 정도 애호가층을 알게 모르게 형성해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 싱글몰트 시장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맥캘란과 글렌피딕 중 맥캘란이 대놓고 밀고 있는 그 키워드, '셰리 캐스크'. 과연 '셰리 캐스크'는 무엇인지, 내가 정말 그 '셰리 캐스크'를 먹고 있는 게 맞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맥캘란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싱글몰트 '셰리 오크' 라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당신이 마시고 있는 맥캘란을 담고 있던 셰리 캐스크에는 진짜 셰리가 담긴 적이 없다. 위스키를 품기 전 오크통에 담겨 있던 그 '와인'은 아마 식초쯤으로 가공되어 스페인 가정집에서 소비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스페인의 주류법과 위스키 제조사들의 마케팅의 콜라보에 깜빡 속아 넘어갔을 확률이 99%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셰리 캐스크 위스키의 일반적인 제조과정을 좀 알아야 할 것인데, 위스키 회사에서 주장하는 방법론은 아주 간단하다. 스페인의 주정 강화 와인 중 하나인 이 '셰리'를 양조장에서 만들고, 셰리를 병입하고 남은 오크통을 영국으로 반출한다. 그러면 영국에서는 이 오크통에 위스키 원액을 담아 숙성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셰리 캐스크 위스키 특유의 향과 맛이 입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셰리 캐스크 오크통이 초초초초초 비싸다

 오크통이 왜 비싼지 알기 위해서는 셰리의 제조 방식을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솔레라 방식'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요지는 이 솔레라 방식 특성상 한번 썼던 오크통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크통에는 셰리 와인의 퀄리티를 더 좋게 하는 효모가 점점 더 많아진다. 새로 들여온 신참 오크통에는 이 효모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 효모를 입히기 위해 일부러 창고 안에 새 오크통과 효모가 가득한 오크통을 함께 두고 자연스럽게 효모가 옮겨가도록 하기도 한다.


솔레라 시스템 image from winedecoded


 이 말인즉슨, 여러 번 재사용 한 셰리 캐스크일수록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과연 와이너리에서 이 오크통을 와이너리 밖으로 내보낼 의지가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No. 해당 오크통이 향후 창출해 낼 셰리 와인에 대한 수익을 계산한 값을 지불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위스키 증류소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그렇다면 위스키 증류소가 직접 진짜 셰리 와인을 만들어서 팔고, 그 안에 위스키를 숙성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셰리 숙성하는데 십몇 년, 그리고 또 위스키 만드는데 최소 12년을 기다리며 굳이 진짜 셰리 캐스크 위스키를 만들어낼 미친 증류소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자기네들은 진짜 올로로쏘(oloroso, 셰리주의 한 종류)나 피노(fino, 셰리의 또 다른 종류)를 만들어 묵힌다고 주장하는 몇 위스키 브랜드들이 있기는 하지만, 먹어본 자들의 제보에 의하면 그들이 만드는 올로로쏘는 올로로쏘라 하기에 한참 못 미쳤나 보다. 상상해보건대 ‘우리는 Ipa를 만든다!’ 해서 먹어봤는데 맛은 맥콜이었던, 뭐 그 정도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어쨌든, 그래서 위스키 생산자들이 생각해낸 대안이 소위 규정상 셰리 와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들어 오크통에 1-2년 묵힌 후, 그 오크통으로 위스키를 숙성하여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 안에 담겼던 와인은 일반 테이블 와인으로도 소비할 수 없는 수준이라 2차 가공을 거쳐 셰리 식초, 혹은 셰리 브랜디 정도로만 쓰인다.



trust me. liar liar.


 사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제외한 소떼른, 사시까이아, 에르미따주 등의 캐스크는 실제 이 와인에 생산된 오크통을 사용하기도 하고, 셰리 캐스크 위스키 또한 처음에는 그랬었다. 하지만 (전혀 알 필요는 없지만) 왜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느냐에 대해 좀 더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테니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셰리 와인 생산자들이 셰리 와인 수출 시 이를 병입 하여 수출하지 않고, 셰리 와인을 묵힌 오크통을 통째로 수출하던 것이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탄생된 시초였다. 이 당시의 셰리 캐스크 위스키는 정말로 셰리 캐스크를 사용했으며, 그 위스키의 맛은 지금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맥캘란의 맛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셰리 생산자들이 이 셰리 캐스크 오크통의 가치를 알게 된 후, 생산에 사용된 오크통을 반출하지 않고 다른 캐스크에 이를 담아 수출하는 과도기를 잠깐 거치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출 과정에서 셰리 위스키의 많은 양이 증발하여 소실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다음엔 스테인리스 통을 사용했다. 그러다 스페인 주류법에서 '모든 셰리 와인은 스페인 내에서 병입 하여 반출한다'는 규정이 생긴 이후에는 셰리 와인을 담은 통 자체가 스페인 밖에 나올 일이 없게 되었다.

  

셰리 캐스크.. 나가면 안돼요...?


 그렇다면, 흉내만 낸 '셰리'를 담았던 이 오크통을 사용한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는 맛이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사실 본인도 맥캘란 12년 산(물론 라인이 여러 개 있지만)과 글렌피딕 12년 산 중 맥캘란을 선호하는데, 글렌피딕 12년 산이 시그니처 몰트를 사용하는데 비해 맥캘란 12년은 셰리 캐스크다. (글렌피딕 15년 산은 셰리 캐스크다) 왜 맥캘란이 더 좋으냐 하고 물으면 그게 더 맛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현대의 셰리 캐스크는 정통 방식에 비해 오크의 작용이 크기 때문에, 오크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바닐라, 토스트, 정향, 탄닌과 같이 위스키의 향미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노트들이 위스키에 많이 입혀지게 된다. 짧은 시간 안에 확실한 맛과 색을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오늘 많고 많은 위스키 중에 굳이 맥캘란을 콕 집어 말하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싱글몰트 위스키 중 그나마 제일 인지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맥캘란뿐 만이 아니라 그 모든 위스키 증류소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위스키 마케팅은 공장 생산된 위스키를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생산과정을 숨기고 장인이 직접 만든 듯한 낭만적이고 그럴싸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가장 많이 집중되어있다. 이유는 당연히 잘 팔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위스키 라벨에서 등장하는 각종 정보는, 실제로 그게 아닐 확률이 더 크다. 다른 위스키에 같은 정보가 쓰여 있더라도, 그 정보가 같은 의미일 확률은 거의 없다. 이들을 규제하는 법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위스키 애호가들 조차 이런 사실은 자세히 알기 힘들다.


내추럴 와인과 위스키. 연남동 기브미피버에서.


 누군가는 불완전 판매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하느냐 마느냐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맛이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은 소비하는 쪽을 선택했지만, 불완전판매 시 법적인 규제를 받는 업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약간의 배신감을 감출 수는 없다. 당신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



* 해당 글은 whiskynotes의 Sherry casks in the whisky industry 글을 참조하여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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