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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 May 03. 2020

[와인] 선물 받은 와인, 맛이 없었나요?

고이 보관했던 그 와인이 맛없었던 이유를 알아보자

 술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다들 와인 하나쯤은 선물로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식사에 초대한 친구의 손에 병목을 잡혀 들려오는 와인부터 뭔가 고급진 박스 안 새틴에 둘러싸인 그것까지 개인의 경험이 각자 다를 텐데, 고마운 마음은 뒤로하고 언제나 이 와인들이 맛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경험한 첫 와인은 아버지의 찬장 속에 고이 보관되었다가 가족 기념일 때 등장한 와인이었고, 아마 얼추 그 이후로도 몇 년간 패턴의 변수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하튼 그때 술의 맛을 알았겠냐만은, 인상적인 기억은 없었던지라 -


나는 와인이랑 안 맞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더랬다. 아마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의 와인 경험은 제시된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와알못이 된다...


 (제아무리 와인이 유럽에서는 국민음료라고 한들)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로 분류되는 "와인". 그리고 "그 본연의 맛을 즐기지 못하는 나..."에 대한 모든 개개인의 경험은 여러 번 축적되어 국가적으로(?) 안타까운 현상을 낳게 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또 나중에 자세히 하도록 하고...


와인이 맛이 없었던 게 맞다면?


 정말 그 와인이 맛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자는 거다. 맛있는 술은 맛있으니 먹어 재끼고, 맛없는 술은 흉측하니 먹어 없애자고 주장하는 주류 애호가 1인이지만, 어쨌거나 먹는 입장에서 맛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맛이 있으면 왜 맛이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맛이 없을 때는 왜 맛이 없었는지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에는 맛없는걸 안 먹던지, 아님 조금이라도 덜 맛없게 먹던지 할 테니까.

 

 그래서 일단 선물 받은 와인이 맛없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3가지 정도로 정리해보았다. 이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자. 생각보다 문제는 복합적이다!


1. 와인 자체의 문제
2. 와인 보관의 문제
3. 와인 음용의 문제




1. 와인 자체의 문제

세상에 나쁜 와인은 없다. (정말?)

 

 당신이 소위 '와알못'이라면 상대방 역시 '와알못'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백화점 혹은 마트 와인샵에서 예산을 제시하고 그 가격대에 추천을 받아 패키지가 그럴싸한 와인을 샀을 확률이 절반 이상일 것이다. 예산은 5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 안쪽까지로 생각하고 와인샵을 갔을 것이다. 만약 5만 원짜리 1병 패키지를 샀다고 치면 이중 2만 원은 패키지 비용, 실제 와인 판매가는 3만 원임을 알아야 한다. 돈을 좀 더 써서 8만 원에 같은 생산자의 레드, 화이트가 하나씩 들어가 있는 세트를 샀다면 이때는 보통 와인 액세서리도 함께 들어가게 되니 2.5만 원 정도가 패키지 비용일 테고, 실제 와인 판매가는 2병에 5-6만 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선물용 패키지로 선정되는 와인들은 대부분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맛을 가지는 편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냥 그 맛 자체가 당신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와인을 별로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평소에 접하게 되는 와인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엄청나게 맛있을' 확률 자체가 매우 낮다. 당신이 와인을 사러 가게 되면 고르는 가격대가 딱 2-3만 원 대일 것이고, 당신이 선물 받은 와인 또한 그 가격대일 확률이 높다. 맨날 제육볶음 먹는 사람에게 간장 불백을 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나.. 사람에 따라 맛있게 먹을 순 있지만 굳이 또 엄청난 감흥을 받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2. 와인 보관의 문제


과대 포장이 야기한 다수의 문제건에 대하여...


 앞선 영역은 당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제 문제는 당신의 손으로 넘어왔다. 패키지가 훌륭해서 가격이 꽤나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당신은 네이버에서 와인 이름을 검색해 소비자가를 보게 되었다. (5만 원 선물세트였지만) 네이버 소비자 판매가 가격이 7만 원임을 발견하고 상당히 괜찮은 와인임에 기뻐하며 기분이 좋은 날 와인을 뜯기로 하며 와인을 고이 세워 찬장에 보관해둔다. 인테리어 효과도 얻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인테리어 용으로 이렇게 세워두다가 좋은날 먹어야지~ 하시면 안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있지만 일단 첫째로, 와인을 보관할만한 셀러가 없다면 구입한 와인은 1년 이내에 소비하는 것이 대체로 바람직하다. 적절한 온도, 습도가 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와인의 상태가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와인은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도수가 높은 주정 강화 와인의 경우 세워서 보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와인은 산화에 매우 취약한 편이라 와인병에 산소가 들어갈 상황을 만들어주면 안 된다. 세워서 장기로 보관하는 것은 와인 맛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와인을 세워서 보관하게 되면 코르크가 마르면서 젖지 않은 틈으로 병 내에 산소가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 와인을 눕혀서 보관해야 코르크가 촉촉하게 유지되면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셋째, 네이버 소비자 가는 거짓이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 와인의 가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매우 많아 나중에 이 주제만을 놓고 다룰 기회를 만들 예정이지만, 어쨌든 네이버 소비자 가는 볼 필요가 없다. 가격은 vivino 혹은 winegraph를 참고하는 게 더 낫지만, 이 역시도 100%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신경 쓰는 게 귀찮다면, 선물 받은 와인은 그냥 최대한 빨리 먹는 게 여러모로 속이 편하다. 빈티지가 있건 없건 대부분 시음 적기가 크게 상관이 없는 와인일 테고, 보관 중 변질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선물 받은 그때가 가장 마시기 좋은 때일 것이다. 보관을 조금이라도 하고 싶다면 그늘진 곳, 열이 닿지 않는 서늘한 곳에서 꼭 눕혀 보관하도록 하자.



 

3. 와인 음용의 문제


이 광경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설렌다

 

와인이 잘 보관되었다는 전제 하에도 와인을 맛있게 먹기 위해 챙겨야 할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세가지만 지킨다면 그래도 지금 가진 와인의 맛을 잘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적절한 시음 온도를 맞추자. 레드는 14도에서 18도, 화이트는 10도,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은 4-8도 정도가 적당하다고들 한다. 그러니 스파클링과 화이트를 먹을 때는 최소 반나절 정도는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해서 먹는 것을 추천하며, 레드는 무더운 여름이 아니라면 실온 상태에서 먹는 것이 적절하다.


 둘째, 와인의 색, 향, 맛을 다 느끼려 해 보자. 사람의 피부색이 각양각색이듯, 레드라고 레드끼리 다 같은 빛깔이 아니고, 화이트도 화이트끼리 다 같은 빛깔이 아니다. 아무리 알못이라 한들, 와인을 따라두고 천천히 흔들어가며 와인의 색도 살펴보고, 향도 맡아보고, 다음에 조금씩 맛보자.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와인의 맛이 다 열릴 때까지 와인에게 시간을 주자. 처음 먹었던 맛에서 점점 변해가는 재미도 더해질 것이다.


 셋째, 와인에 대한 부담감과 기대감을 내려놓자. 와인을 '알고' 먹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과, 이 와인이 엄청나게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면, 와인을 마시는 과정이 오히려 좀 더 즐거워진다. 소위 와인 좀 먹어봤다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도 와인에 대한 평과 감상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와인에도 취향이 있는데, 잘 모른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취향과 생각을 너무 묵살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의 장벽 없이 서로 와인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함께 마시는 이와 교환해보자. 부담감이 덜어지면서 와인을 마시는 일이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선물용 와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 와인이 대체 왜 맛이 없었을까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지만, 이 글을 다 읽은 당신이라면 비단 선물용 와인에만 한정시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와인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1. 취향에 맞는 좋은 와인을 구매
2. 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환경에서의 보관
3. 와인의 맛을 즐길 수 있는 환경


 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에 와인을 먹게 된다면 부담감과 근거 없는 기대감은 조금 내려놓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와인을 맞이해보도록 하자. happy vino!


다음 선물은 와인 꽃바구니? (출처: 연남동 떼뮤즐렛 인스타그램)




추가로, 한겨레의 신지민 기자님의 "찌질한 와인" 시리즈에서 이번 주제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는 칼럼이 있어 이를 덧붙인다. 실소를 터트리며 읽은 글이니 꼭 와인 선물을 하기 전에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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