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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Nov 06. 2020

모국어와 외국어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스물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Agota kristof 1935.10.30- 2011. 7. 27
<문맹 L'analphabète>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의 치크반드(Csikvánd)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성장했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이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직접 경험했던 일이다. 14세 때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모님과,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오빠와 떨어져 지내는 이별의 고통을 경험했고,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는 그녀에게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21세의 나이로 나라를 떠났다. 역사 교사였던 남편과 갓난아이를 데리고 피난한 곳은 스위스의 뇌샤텔(Neuchâtel)이었다. 스위스에서 시계 공장 일을 하며 5년 이상을 가난과 싸우며 보내다가 그녀는 공장도 그만두고 남편과도 헤어졌다. 소설을 쓰기 위해 불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슬픔 속에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소설에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지만 우울과 분노와 고통을 동정도 눈물도 없이, 차라리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어로 된 책이 정말 그리웠다.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으면 안 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느낌이라서 몇 페이지 못 가고 포기하게 된다. 때로는 영화도 프랑스어 자막으로 보면 느리게 글씨를 따라가다 보니 영화가 아닌 책을 읽는 것 같아서 힘들고 지루해 잠드는 경우도 많다.


그리하여 책이 없어 일 년에 책을 한 권 읽을까 말까 할 때도 있었다. 한국에 가면 책을 많이 읽고 또 사 와야지 하면서도 막상 집에 가면 여기저기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가 드물고 결국에 프랑스로 돌아오는 짐을 쌀 때면 라면을 한 묶음 더 넣기 위해, 옷을 한 가지 더 넣기 위해 결국엔 무거운 책은 제쳐놓는다. 그렇게 나는 모든 핑계를 찾아가며 책과 가까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심한 갈증이 오면 목말라 죽는 용기보다는 사막의 추위와 더위를 그리고 돌풍도 무릅쓰는 용기가 솟아난다. 그래서 스스로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다. 모국어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이 커질 무렵 무슨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밀리의 서재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었고, 신기루를 발견한 것 같았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이 다 있지는 않지만, 많은 책이 있다.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간절히 책을 읽고 싶었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 목에 막힌 떡 쪼가리가 쭉 내려가듯 시원하고 깔끔하게 언어적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막혀있던 모든 것을 쓸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밀리에 첫 발을 내디뎠고, 가장 먼저 읽을 책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발견했다. 읽기 전 책의 설명을 쭉 읽다가 '<문맹>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살해'하고 헝가리인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위협해오던 '프랑스어'라는 '적어()' 배워야만 했던 시간에 대한 조용한 싸움의 기록이자......'라는 부분을 보았고 순간 더 읽어볼 필요도 없이 나는 눈에 형광등을 반짝하고 켜냈다.



 이 책의 좋은 점 첫 번째는, 워낙 짧아서 몇십 분이면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자랑할 수 있으며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아주 고마운 책이고 두 번째는, 짧으면서 강한 뱃고동 같은 울림을 주는 유익하고 신기한 책이라는 점이다. 그 짧은 와중에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가게 막힌 길을 터줬다. 모국어로 읽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더 돋게 해 준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나의 모국어를 직접 써내려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을 구글 번역기에 넣어봤다. 프랑스어로 번역을 해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번역이 완전히 맞게 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거기에 적힌 글자들이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어 단어들이 뒹굴어 있었고 그게 문법에 맞는지 아닌지도 아예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생소해 그 언어가 내게 철벽을 치는 기분이었다. 일상 대화만 여차저차 가능한 것이지 문학적으로 접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처럼 이방인의 입장에서, 프랑스에 살지만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한다. 학생 때 공부하던 것 말고 살게 되면서는 따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때의 실력으로 지금까지 버텨온다. 또 사람마다 특유의 음성, 발음, 화법, 억양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어렵다.

비속어나 일상 속의 표현들은 자연스럽게 배웠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되물어야 할 때가 많고 때론 알아들은 척도 해야한다.(그렇게 해야 대화의 진도가 나간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된다. 일단 새로운 사람이 자체가 낯선데다 우리가 동일한 위치에 있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언어적으로 백퍼센트 내가 원하는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는 살기 위해서 생각을 바꿨다. ‘나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하는데 저 사람들은 프랑스어는 해도 한국어는 못하잖아. 엄청 대단한거야.’



 아직도 숫자를 한 번에 잘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할 일이 생기면 듣기 평가 시험 같다. 상대방이 번호를 부르기 시작하면 말을 자르고 "미안한데 우리 간단하게 하자. 내 번호를 불러줄게"한다. 이미 줄줄 외우고 있는 내 번호를 주는 게 더 편하니까.

 숫자를 말할 때면 가뜩이나 이과적 성향이 1도 없는 나는 일단 머릿속에 아라비아 숫자를 그림처럼 그린다. 그다음 그것을 한국어로 전환해서 떠올려야 인지가 되고,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머리 아픈 일이 아니다.(예를 들어 숫자 60이면 60을 머리에 그린 후 한국어로 이건 '육십이네'라고 생각하면 뇌가 그를 불어로 번역해서 'soixante'이라고 알려주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낸다. 그러니 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인가.


 게다가 최악인 건, 프랑스어가 아주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60은 불어로 'soixante'인데 70은 'soixante-dix'라고 한다. 'dix'는 10이다.

말하자면 (60과 10)이다.


"아니 왜????"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80은 quatre-vingt (20이 4번 있다는 합성어), 90은 quatre-vingt-dix.

즉, (80과 10)이다.


"아니 진짜 왜...?"

영어처럼 그냥 식스티 세븐티 에이티 나인티 하면 안 되나?

그래서 나에게 악마의 함정은 60~99를 말할 때다.

언젠가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된 거냐고 프랑스인 친구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이랬다."그게 왜 그러냐면, 너 같은 외국인이 못 오게 하려고 어렵게 만든 거야."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장난을 쳤다.(그 와중에도 특유의 자국애가 드러나는 프랑스인 특유의 유머다.) 그리고는 말했다. "뭐, 왜 그런 게 어딨어 그냥 그런 것 일 뿐이지.(c'est comme ça!)" 했다. 그놈의 '쎄 꼼 싸'는 지겹게도 들었다. 어쨌든 누가 이 프랑스인들의 못 말리는 논리를 왜 그런지 설명해주면 참 좋겠다...


 아무튼 그래서 숫자를 말할 때면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1 2 3 4 5 6 7 8 9 0]을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ㅌㅍㅎ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ㅐㅔㅖㅒ]로 바꾼 다음에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로 출력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게 뒤섞이니까 원하는 대로 빨리 말하지 못하고 더듬거나 두 세 박자 쉬고서 느리게 답한다. 그럴 때면 부족한 뇌를 탓하면서 동시에 세종대왕님께 감사인사를 올린다. 모국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우리 글자 자체가 많지 않고 간단한 것이 다행이다.



 같이 일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빌리는 나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내가 번호와 같은 숫자를 말할 때면 옆에서 이미 웃음 대기를 하고 있다. 그럼 나는 더 긴장해서 어버버 하다가 '음.... 81' 하면 곧바로 찰떡같이 알고는 "응 너 91 말하는 거지?" 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외국인이라고 놀리는 게 취미고 누군가 불어를 문법적으로 잘 못 말하면 놀리고 지적하기에 바쁘다.


그러기에 빌리는 사실 복수국적자라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다. 나는 "아 참 너는 외국인인 나와는 다르게 외국인이 아니고 프랑스인이지 참!." 하면 그가 승리의 표정을 짓는다. 그럼 나는 곧바로 "서류상에만." 하고 놀린다. 그다음 불어를 내가 더 잘하네, 내가 더 낫네 하며 서로 티격태격한다. 사실 빌리를 처음 봤을 때 약 5분 정도는 그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말 끝에 특이한 억양이 있어서 바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그 정도로 그의 불어는 유창하고 이중언어를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빌리는 프랑스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모국어인 영어의 추임새를 쓰곤 한다. 아직도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면 '깜짝이야', '엄마야', '아이고', '어떡해' 등이 먼저 나온다. 오죽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로 인사를 몇 번이나 가르쳐줘도 또 잊어버리고 잘 모르지만 '어떡해'는 알게 됐다.


 반면에 빌리는 프랑스어 쓰기를 잘 못해서 자주 틀린다. 그래서 문자 메시지는 항상 영어로 보내온다. 본인의 취약점이라 들춰내기 싫다고 한다. 난 오히려 쓰기는 괜찮아서 가끔 빌리가 써 놓은 프랑스어 철자를 고쳐주기도 한다. 그럼 누가 누구를 고쳐주는지 웃긴다며 정통 프랑스인 동료가 옆에서 우리를 보고 낄낄 한다. 빌리는 나처럼 피곤하거나 긴장하면 말을 더듬는다. 그래서 둘 다 피곤할 때 대화를 시작하면 반은 어버버 반은 그로 인해 박장대소하다가 결국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이 끝이 난다. 그래서 언제부터는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입을 닫게 된다. 그럼 나는 '아 때가 됐구나' 한다. 누군가 한 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너 지금 피곤해. 말할라고 하지 마. 알겠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하면 둘 중 한 명이 말하는 도중에 멈추고서

 "그래 내 말 뭔지 알지?” 하면서 또 실소를 터트린다.


서로가 어버버 거리는 게 안쓰러워서 피곤하다 싶으면 아예 말을 못 하게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정말 우리는 말을 일일이 하지 않아도 한 단어만 나와도 눈치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주 잘 이해한다.


 내가 타는 전철의 역이 2년 동안 보수공사에 들어가 평소 나오던 출구로 나오지 못하고 뺑뺑돌아서 나오게 되었고 그날 지각을 했다. 빌리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놀라면서 진짜 불편하겠다고 위로했다. 그런데 다음날 그가 오더니 웃음을 빵 터트리며 “야 나 너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하는 것이다. 또 무슨 놀림거리를 찾았나 표정부터 보고 알아챘다.

그가 말했다.

“그 지하철역 공사. 2년만 하는 거잖아!!”

어리둥절해서 덧붙였다.

“응 맞아 2년. 왜?”


몸이 반절로 접히면서 깔깔 웃더니 말했다.

 "야 어제 나한테 한 말 다시 말해봐" 하는 것이다.

“역 공사 2년(deux ans)두~졍 "하자 그가 푸하하 하고 웃더니 "어제 네가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두~(즈) 졍 이라고 했어. 12년!(douze ans)" 하면서 무슨 공사를 12년이나 하는가 해서 집에 가면서 유심히 보니까 2년이었다는 것이다. 빌리가 깐족거리며 "두~졍 아니고 두 졍 짧게 해 봐" 라며 내 발음을 고쳐주면, 분해서 제대로 말했는데 네 귀가 잘 안 들려서 못 알아들은 게 잘못이라며 받아치고 웃어보인다.


 프랑스어의 연음 때문에 이 부분이 늘 헷갈린다. 완전 더 초보일 때는 렌즈 세척액을 사러 갔다가 점원이 2유로라고 하자 아 괜찮은 가격이네 하고 계산하려 카드 기계를 보니 12유로가 찍혀있었다. 조그만 손가락 만한 병에 담긴 렌즈 세척액을 만 삼천 원이나 주고 산 것이다. 그렇게 비싼 줄 알았으면 안 샀을 텐데 정말 억울했다. 잘 못 알아들어서 착각했는데 가격이 부담이라 사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을 불어로 하지 못해서 눈물의 카드를 긁고 귀가했다.


아무튼 그래서 빌리에게 숫자 12를 이야기할 때면 "두~즈" 하고 크게 말 한 다음에 항상 덧붙인다. "투엘브~ 알지?"라고 하는 게 코드처럼 되어서 무슨 말을 하다가 숫자 12만 나오면 서로 마주 보고 하하하 웃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단어처럼 "두~즈, 투엘브~"를 동시에 말하며 눈으로 사인을 보낸다.    

아무튼 이 프랑스어의 연음과 숫자에 관한 재밌는 일도, 웃기지만 슬픈 일도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숫자 말하기가 두렵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에 가면 평소에 많이 쓰는 말들은 한국어보다 프랑스어로 먼저 생각이 난다. 정말 못살아. 그럼 머릿속에 타이핑된 프랑스 단어를 지워내고 "그.. 그.. 뭐지"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얼른 한국어로 바꿔낸다. 그렇게 조금씩 적응하다가 프랑스로 돌아갈 날이 되면 한국어 패치가 완벽히 깔려있게 되고 그때는 프랑스에 돌아와야 한다. 그럼 며칠은 한국어가 익숙해져 벙어리처럼 지낸다. 물건을 살 때도 괜히 소극적이 되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혹시 누가 말이라도 걸까 긴장을 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외국어가 자신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다고 썼다. 그 부분을 읽고서 아주 진한 공감이 되었다. 내가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았다. 맞다. 나의 것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서는 또 내가 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언어를 더 많이 읽고, 써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어차피 몇십년을 살아도 프랑스어를 자국민처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어도 문학적인 접근을 하게 되면 아주 어렵지만, 모국어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 표현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이 언어를 지켜내고 살려내야만 한다. 모국어는 정말 중요하다. 그것은 근원이자 뿌리이며, 외국어인 프랑스어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인 세세한 감정까지도 글자로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한글을 쓰고 한국어를 말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자산이며 축복인지 외국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한글,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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