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작몽상가 Nov 05. 2020

그때는 몰랐어

지금은 알았어



꽃을 파는 곳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있었다. 여러 가지 꽃다발, 화분 등을 구경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에 단돈 2유로 코너가 있었다. 눈이 뒤집어졌다. 싼 게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고 누누이 들었지만 싼 것이 주는 일시적 쾌감은 매우 좋은 것이기에 지갑을 열게 만든다. 그리고 웬만한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2유로 라면 사야 하는 게 맞았다.


 꽃은 사도 며칠 가지 못하는 데다 지속되는 시간에 비해 부담되는 가격 탓에 나를 위해서 직접 사는 건 드물다. 물론, 누가 선물로 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리고 선물로 들어와도 가격이 비싼 것을 알기에 하나의 습관이 생겼는데 바로, 다발의 70%는 화병에 꽂아서 두고 30%는 꼭 말린다. 그래서 오래 간직한다. 시들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싫어서 말린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당연히 화분도 사지 않는다. 한때 좋아하는 선인장을 많이 사서 집에 놓았고 선물 받은 것들도 있었고 큰 맘먹고 분재도 사봤었다. 그런데 불규칙적인 직장 패턴으로 (게으름 때문에) 관리를 하지 못했고 그들은 말라버렸다.

그 쉽다는 선인장도 죽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 화분도 사지 않는다. 사소하게 키우는 식물들도 사랑과 정성, 일정량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서 규칙적인 생활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겐 그것은 사치이고 식물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나의 마른 정원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임시 실업자가 된 지 (임시이길 바란다.) 벌써 7개월째다. 매일 집에만 있다 보니 이번에는 화분을 잘 키워볼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특히 2유로라는 것이 결심을 굳게 했다. 몇 가지 종류의 작은 화분 열매가 있는 것, 잎만 있는 것들을 뒤로하고 하얀 꽃이 피어있는 것을 고르고 지갑에 굴러다니던 동전을 꺼내 계산을 하고 신이 나서 집으로 왔다.

솜, 2020.11.01



 이번에는 나랑 함께 잘 살아보자, 열심히 봐줄게 하며 솜뭉치처럼 하얀 꽃을 가진 이 화분에게 '솜'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우리가 만난 날짜와 이름을 적어서 화분에 붙였다. 다음날 마침 연락이 온 윤정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새롭게 맞이한 가족 같은 나의 반려(?) 화분을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보냈다. 그런데 보내고 나서 뭔가를 화분의 정보를 말해주려고 보니 2유로라는 가격에 홀려서 사다 보니 꽃의 이름도, 물주는 법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아 바보. 사람이 뭔가에 홀리면 다른 아무런 생각도 못하게 되는구나.' 앞으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언니는 내가 꽃들을 보여주는 족족 이름을 뚝딱 알아맞혔다. 예전에 선물 받은 말린 꽃을 보여 주니 언니는 "리시안셔스. 그런데 개량종 같아. 꽃말이 변치 않는 사랑."

새로운 내 화분을 보더니만 "얘는 스톡" 하더니 잠시 후 "아 이거는 스토크 아니다. 잎사귀를 못 봐서 착각했어. 이건 카랑코에야." 하며 카랑코에라 불리는 화분의 사진들을 나에게 보내왔다. 백과사전 같은 언니가 신기했다. "꽃이 분홍색도 있네" 언니는 "저건 색이 여러 종류야. 봄에 많이 나오는 화분이기도 해." 했다.

언니와의 꽃에 관한 이야기가 즐거웠다.


그러면서 이 대화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었던 게 떠올랐다.




 바로 어릴 적 산에 가면 부모님은 온갖 곤충부터 들풀의 이름들을 모조리 알고 뭔가를 볼 때마다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굳이 친절히 읊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전부 아는 건지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박사님인 줄 알았다. 어릴 때 아빠는, 엄마는, 어른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또 하나의 기억이 스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무슨 영어단어의 뜻을 물었던 것 같다) 주방의 소음을 뚫고 들어가서 큰소리로 물었다. 엄마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뭐라고?" 되묻더니 또다시 질문하는 나에게 세상 퉁명스러운 말투로 "몰라 사전 찾아봐."라고 하며 그 와중에도 냄비의 뚜껑을 닫았다.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엄마가 정말로 내가 귀찮아서 안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내가 미워서. 그때도 속으로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분명 오빠가 물어보면 잘 알려줬던 것 같은데 항상 내가 물으면 늘 바쁜 상태로 뭔가를 하거나 모른다고 하니 서운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오빠를 경쟁의 대상으로 두고 있었다. 지식의 경쟁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받는 애정 경쟁이었다. 늘 엄마, 아빠는 오빠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다 하다 그런 생각까지 그려냈다.


 오늘날, 스스로 주방에서 밥을 해보니 요리를 할 때 사실 냄비 끓는 소리, 환풍기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수도꼭지 틀면 물 쏟아지는 소리 등 누가 말을 해도 잘 안 들린다. 말에 집중도 안된다. 올려놓은 것이 넘치지 않는지 타지는 않는지 보면서 재료를 다듬고, 썰어내고 할 일이 참 많았다. 생존을 위해 중대한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데 웬만한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주방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라고?'였다.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건 '엄마도 뭔가를 모를 수 있구나.'였다. 엄마라는 사람은 이 세상 전부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 누구도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모르는 것이 정말 무한하게 많다. 어른이 되어보니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지만 또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정말 많다. 궁금하지 않은 게 정말 많았다. 관심의 차이였다. 많은 걸 알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이 귀찮고 피곤하다. 굳이 모든 걸 알려고 하기엔 이미 충분히 머리가 아픈 상태이고 때론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들이는 시간도 모자란데 왜 어른이라고 다 알아야 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이 더 좋았다.



 최근 오랜만에 본 엄마한테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그때는 몰랐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거로 새는데 진짜 그때 몰랐던 게 너무 많았다고 하신다. 그때는 몰라서 우리한테 이래저래 좋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스럽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의 눈을 보니 말로는 다 풀어내지 않은 어떤 감정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인제는 알았어. 더 일찍 알 것을. 아이고." 하며 한숨을 쉰다.

그때는 뭐든지 여유가 없어서 그리고 엄마도 어렸고 그냥 무조건 많으면 좋은 건 줄만 알고 애를 셋이나 낳고 그냥 먹는 것만 잘 먹이면서 키우는 게 다인 줄 알아 세세한 것 까지 신경 쓰고 돌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했다. 최악의 딸이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에이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따위의 빈말 조차도 나오지가 않았다. 오히려 "맞아 더 일찍 좀 알지 그랬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턱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아니하지 않았다. 안 하기를 잘했다. 엄마가 나의 대답을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엄마는 혼자 하소연하듯 몇 가지를 대략적으로 늘어놓더니 "아이고야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안그냐.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된 거야" 하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후회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야 말로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는 모르고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이 워낙 셀 수도 없이 이 지구 상에 많다 보니 (그때마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어서 참으로 아쉽게 생각해'라고 말하기엔 너무 길잖아.) 간단하게 줄여서 자주 쓰기 편하도록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 엄마 말대로 더 일찍 알았으면 물론 좋았지만 모든 것은 시행착오를 겪으면 그 후에는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요령이라는 게 생겨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최대한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에게 더 괜찮은 거라고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그렇게 결론 내리려고 눈을 지그시 감고 느슨하게 떴다 깜박거리기를 반복해봤다.   


 하긴 나도 그랬잖아.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화분을 마구 샀지. 대충 두면 알아서 잘 자란다고 생각했던 선인장마저도 바짝 말라버렸지. '그때는 몰랐어'의 반대말은 '지금은 알았어'잖아. 지금은 여러 방면으로 실수를 해 보고 나서 방법을 알게 되고 내공이 쌓인 후 화분을 데려왔으니 그 전과는 다르겠지. 더 조심하고 세심하게 잘 돌봐주겠지. 이제는 전보다 잘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길러보고 싶었다.

선물 받았던 하얀 장미 2020.02

상상을 해봤다.

혹시라도 잘못되어 화분이 죽어서 내게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또는 "진짜 왜 그랬어? 게으른 인간아, 이럴 거면 왜 날 데려온 거야?"라고 하게 된다면. 지난 일로 구박을 듣는 것은 정말 괴로운 데다가 죽음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죄책감이 있는 상태의 당사자일 텐데 거기에 대고 비난을 받는 건 속상하고 너무 잔인하잖아.

 

그날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또 한 번 생각했다.


2020.11

작가의 이전글 백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