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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Nov 14. 2020

시간이 구름

 짧은 일기와 그림을 그리면서 떠오르던 느낌이나 몽상 등을 간간히 적어보긴 했지만, 마음먹고 제대로 긴 글을 적어 내려가 보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시작의 용기를 철저하게 감싸주고 있는터라 막상 하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나는 잠시 그림 그리기를 멈추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려온 그림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여기 저기 적어 놓은 글들을 한곳에 모아보고 싶었다. 그래야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길게 써내면서 단단해지길 다짐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표현 도구이자 비워내기 위한 채움이었다. 마치 머릿속의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는 것과 같았다. 그 과정에서 털어내고 제 자리에 다시 가져다 두기도 하며 먼지를 쓸어내고 닦아내고 나면 나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깨끗한 방에 앉아있겠지.


 잊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메모장과 몇 년 만에 돌아와 본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 속엔 저장된 글 몇 개가 있었다. 한때 써 놓은 얼토당토않은 두서없는 쓰다 말고 방치해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읽어보니 엉망진창 만신창이의 내가 있었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아 저때는 그런 생각을 했구나.' 하며 어리숙한 그때가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그 글이 말도 안 된다는 사실보다 ‘그 당시에는 혼란이라는 감정이 많았던 때라 글마저도 뒤죽박죽 했지’ 라고 이해를 하며 나를 꼭 안아주게 되었다.


 

 직면하기로 했다. 주 감정인 불편, 불안이 어떻게 오게 된 것일까 거슬러 가보자 하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 하나 둘 꺼내다 보니 주로 상처 받거나 충격을 받은 일들이 남아있었다. 그것들을 소재로 써 내려가다 보니 어떤 때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해 보였고 안쓰럽고 불쌍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비참해져 쓰기를 그만두고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 기가 죽어 시무룩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길게는 며칠 후 마음이 좀 풀리면 다시 돌아와서 저장된 글을 이어나가기 위해 다시 그 글을 읽어 보면 '음  생각보다 그렇게 초라할 일도 아니었네’라고 생각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언가에 심취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변하고 그 감정에 묻히면 걷잡을 수 없이 높이 솟아오르기도,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 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심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데, 창작은 그 위험을 감당해야 하고 기꺼이 심취해야만 결과물이 손에 쥐어지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난 직후에 어떤 때는 정말 보기도 싫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제는 잠시 감정 멈추기를 할 뿐이지 그림을 버리지는 않게 되었다.

 한 때는 버리기도 했는데 조금 지나서 정신을 차려보면 그때 느꼈던 그 싫음도 다시 되돌아보고 싶은 너그러움이 솟아난다. 나중이 되고 후회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사소한 스케치까지도 모아둔다.

 그림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회상 하다가 그때의 모습이 생각나면 또다시 눈물을 떨구기도, 입꼬리를 귀에 걸어 보기도 했다.

 언젠가 펑펑 울며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는데, 그 그림 속의 풍경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해 줄까 해서 액자까지 사서 넣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주게 되면 이제 그날의 감정을 꺼내 되풀이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차마 주지를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림을 다시 보니 그것은 나의 감정 역사책 속에 한 페이지가 되어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선물하기를 작정하고 그림을 그린다. 나 자신의 감정을 조금 빼고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조금은 평정심을 유지해 그려본다.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떠나보내기가 힘이 드니까.




시간은 냉정하고 차갑다. 그러나 시간은 옳다.

시간은 시간을 준다. 우리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



자격을 갖춘 유일한 평론가는 시간뿐이라고 생각했어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그림을 단 한 장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세계가 사랑하는 천재 화가가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판 유일한 그림 <아를의 붉은 포도밭>1888
테오는 매달 고흐에게 생활비와 작업비를 보내주었다.

"나도 지금까지 형을 지원하는 일을 그만둘까 생각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야. 하지만 그는 예술가야. 그것도 아주 드문 재능을 가진 예술가. 그런 그를 모른 척한다는 것은 화상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 돼. 그러니까 나는 형을 계속 지원할 거야. 언젠가 형은 반드시 후세에 길이 남을 멋진 작품을 만들게 될 테니까. 그런 예술가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야."

 그에 대하여 항상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던 반 고흐가 이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가 생전에 그린 1500여 점의 유화 중에서 테오가 팔았던 유일한 작품이다. 테오는 이 작품을 1890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인 전에 출품했는데, 그때 반 고흐와 친분을 쌓고 있었던 시인 외젠 보쉬의 누이이자 벨기에 인상주의 여류 화가인 안나 보쉬가 구입했다. 이후 이 작품은 한 러시아 사업가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나머지 그림들은 오직 시간만이 그의 진정한 가치를 높여주었다.



20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직업은 학생이지만 그때부터는 술집에서 술도 마실수 있고, 밤늦게 돌아다니고 운전도 할 수 있고 그 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는 게 진정한 어른이라며 그 맛에 빠져 대학생이 되고서 마치 성숙한 어른이 된 것으로 착각하며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고 밤이 되면 진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그 잔인함을 인식해 나가는 때가 온다는 것과 같았다.


십 대 이전에는 시간에 대해 그렇다 할 개념이 없었다. 그냥 얼른 크리스마스가 와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두고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사촌들과 오래 놀고 싶어서 주말과 명절, 공휴일을 기다렸다. 매일 저녁이 되면 퇴근하실 부모님을 그토록 기다기리는게 일이었다. 되는대로 그때그때 원하는 것에 맞춰 시간에게 이끌려 다녔다.


십 대 때는 "시간 진짜 안 간다"를 달고 살았다. 그때부터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조금 자리 잡으려고 했나 보다. 빨리 대학생 언니가 되고 싶은데 시간이 도와주지 않고 느리게 흐르면서 자꾸 학원으로, 방과 후 학습으로, 숙제로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니 야간 자율학습으로 자꾸 나를 데려갔다. 그래서 너무 벗어나고 싶다 보니 시간이 정말 안 간다고 생각했다. 지루함과 반항심에 십 대 후반에는 어설픈 어른 놀이를 하며 진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술병을 비웠다.


 이십 대가 되니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생활에 노는 일이 많아졌고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느꼈다. 놀 시간이 부족했고 그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배워보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생겼다. 물론 사람들에게 끌려다니고 지치기도 하며 관계에 집착한 시간도 많았다. 그리고 허망하게 가만히 있는 시간, 절망에 빠진 시간, 우울한 시간도 셀수 없이 많았다.

이십 대 후반에는 "시간 진짜 빠르다"를 입에 달았다. 오죽하면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빨리 가달라고 말할 때는 달팽이처럼 가더니만. 특히 그림을 그리는 일에 푹 빠져서 그림 그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어 시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만 좀 빠르게 가라고 고함쳤다. 나는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는데, 드디어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시간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늘 그래 왔듯이 자신의 길을 쭉 걸어갔다. 그렇게 빠르게 가는 시간의 속도에 매번 놀라고 화내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삼십 대가 되었다.


 삼십 대가 되니 이제는 시간의 흐름을 애석해하며 붙잡고 애원하고 싶다기보다 조금은 그의 고집을 인정하게 되는 시기가 왔다. 내가 잡지 못함을 깨닫고 이제는 그를 흘러가게 두면서 나는 그 안에서 쪽잠을 자듯 시간을 틈틈이 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는 내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고함치지 않고 정중히 부탁을 하게 되었다. "조금만 천천히 가주면 안 되겠니?"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 누군지 상을 주고 싶었다.

 



 '시간은 약이다'

맞다. 아주 쓰디쓴 약. 먹기 싫어도 병이 나으려면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약. 이 말도 누가 한 것인지 그분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싶다. 내게는 시간이 약이 되어 준 게 확실했다.

 시간이 지나게 두고 나중에 돌아와 되짚어 보면, 내가 망쳤다고 생각했던 그림에서는 그 날만의 기분, 미숙함등이 당시보다는 훨씬 소중하게 느껴졌고 나는 성숙해져 있었다. 그 시간을 다시 살아내는 것 같아 아주 새로웠다.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판단도 다시 보니 그게 최선이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원망했던 일도 그때 그 일이 일어나 줘서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것을 배우지 않았나.시간 덕분에 운명이라는 말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 정말 많았다.


앞으로는 또 시간을 어떻게 느껴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오늘도 나는 시간에 기대 보았다.


그래 시간아. 지금처럼 가긴 가되, 강물처럼 마구 흘러가지는 말고 네가 그냥 잘 굴러갔으면 좋겠어.





하늘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처럼,

시간도 나와 함께 구름.

내가 시간 속에 구름.

떼굴떼굴.

  

시간이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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