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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Dec 02. 2020

산타를 기다리는 마음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누구나처럼.


정말 가지고 싶었던 미미 인형을 놓고 가주시라고 정성 들여 편지를 썼다. 그리고 혹시 이 집 저 집 바쁘게 다니면서 목이 마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오빠와 진지하게 상의를 했다. 그래서 당시에 우리가 정말 아끼고 귀하게 여긴 콜라와 종이컵을 편지 옆에 두고 기도를 한 뒤 들뜨고 설레서 잠 못 들었다.

취침 시간이 넘어서 계속 쑥덕이고 키득 거리니 듣다 못한 엄마가 우리를 재우러 출동하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어 다음날이 되었다.


뜬눈으로 냉큼 편지를 써 놓았던 곳을 봤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콜라는 잘 마셨단다...'

라고 시작되는 산타할아버지의 답장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콜라를 보니 정말인지 어제 남겨놓은 것에 비해 아래만큼 바싹 줄어 있었다. 우리는 산타할아버지가 왔다가 콜라를 마시고 가셨다며 흥분하여 날뛰었다.


그 뒤 편지 내용은 우리가 엄마 아빠 말씀을 아주 잘 들어서 기특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있는 집을 바삐 다니다 보니 물건이 더 이상 없어서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하고 꼭 나중에 다시 올것이며 대신에 다른 것을 놓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다른 선물을 받았다는 실망감보다 산타할아버지가 우리가 제공한 콜라를 마셨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선물도 잊은 채 신기해서 오빠와 함께 하루 종일 줄어든 콜라에 대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리고 심각하게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느라 정말 힘들었을 것을 걱정하며 씩씩하게도 받고 싶은 선물을 못 받은 것을 크게 담아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동심은 거기 까지였나 보다. 그때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그 시기에 '산타할아버지는 엄마 아빠래.'라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만나는 친구들에게 콜라가 정말로 줄어 있었다고 말은 했지만 무언가 초라함을 느꼈고 이후에 의심의 시기를 거쳐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 해마다 기다려도 주문하지도 않은 허접한 선물이나 쪽지만 남길 뿐 직접 눈앞에 나타나 주지 않는 데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에 신빙성이 더해졌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을 것이다.


산타가 없다는 충격을 받고 나면 한층 더 현실에 가까워지는 계기이자 동심의 껍질이 한 겹 벗겨지면서 본격적으로 혼란스러운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진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삶의 고난이 느껴지는 것은 산타를 믿지 않게 되고 나서 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단지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일어나는 일들의 옳고 그름의 여부가 점점 구분되면서 선물 즉 보상을 받기 위해선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자연스레 배워간다.

믿었던 엄마 아빠가 행하는 공식적인 선의의 배신을 겪으며 뭐든지 의심을 조금씩 하는 시기가 오게 된다. 많은것들이 시시해지면서 나는 산타나 믿는 어리석은 어린아이가 더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훌쩍 뛰어넘어 20살이 넘어 보니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의 축제가 아니라, 연인들의 축제가 되어있었다.

성당에서는 아주 크게 미사를 했기 때문에 거기에 참석을 했다. 예수의 탄생일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본적도 없는 예수님의 생일잔치가 무슨 의미 일까 하며 사실 내겐 연말에 일어나는 하나의 호들갑스러운 행사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웃기고 있네.

이건 그냥 삭막한 겨울, 앙상한 나무 가지, 차디찬 바람을 피하고 숨기려는 사람들의 억지 또는 가짜의 마음이 지배한 축제라고, 아무것도 즐겁지 않은 잔인한 추위 속에 위안을 받으려고 최대한 현란하게 주변을 꾸며내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짓 행사라고 여기며 콧방귀를 뀌기도 했다.


프랑스에 오고 나서 크리스마스를 다시 맞이하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시기가 다가오면 상점과 거리는 풍성하고 화려한 조명과 장식을 설치하여 형형색색 빛이 나며 붉은 온기와 북적이는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다.

이곳에서는 종교행사이자 일 년 중 최대 가족명절이다. 우리나라 설과 같이 민족의 대 이동이 시작된다. 성탄 이브에는 집안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길거리는 텅텅 비어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였다. 캐롤을 들으며 남들보다 일주일 먼저 트리를 설치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고, 있지도 않은 산타를 상상하며 거짓 동심으로 선물까지도 기대하며 따뜻한 분위기와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다.

산타를 기다리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불행하고 그렇다고 믿으면 상쾌하고 사는것이 수월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있다고 믿는 척을 하며 사는게 그것이야말로 즐거운 방법이기에, 그를 따르는게 낫다고 여기는 이유는 바로 내가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산타가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누구보다 매끄럽게 잘 해내는 철저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어차피 모든 아이들은 이런 시기를 전부 겪은 후에야 '척'을 담담하게 잘하게 되고 그래야만 아주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야 기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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