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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Nov 07. 2020

아무렇지 않음

성공이란

오래전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어떤 책을 주워왔다.
중고로 팔기에는 귀찮고, 가지고 있기엔 짐이고, 누구를 주기엔 그럴만한 내용이나 가치의 책이 아니었나 보다.

꼬부랑글씨가 나뒹구는 와 닿지도, 읽히지도 않는 이 책을 주웠던 이유는 부서지고 구겨진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 옆에 혼자 무심하게 누워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모습을 풍기는 그 아무렇지 않음 때문이었다.

-2018.04
주워 온 책 위에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의자를 모작



언젠가 직장 동료가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온 것이다. 나는 가장 먼저 보고도 모른 척했다. 내가 그 사실을 말하면 그는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런데 바로 뒤 다른 누가 와서는 "이야~ 너 감자 농사 지었네 ~ 푸하핫~ 키키 킥~" (프랑스에서는 감자 있냐는 말'tu as des patates' 은 양말에 구멍이 나서 발가락이 구멍 사이로 비치는데 구멍을 꽉 메운 모습이 꼭 감자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그렇게 말한다. 표현이 정말 귀엽다.) "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쟤는 왜 굳이 민망하게 이걸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말하냐 미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양말을 보더니 "오~ 헤헤 진짜네. 알려줘서 고마워. 바꿀 때 됐는데 사러 갈 시간이 없어” 하며 킥킥거리더니 발을 제대로 슬리퍼에서 꺼내더니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대화를 이어갔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도 큰일이라 말도 못 해줬는데 누군가가 지적을 받고도 함박웃음을 짓는 그가 신기했다.

 얼굴 하나 빨개지지도 않고 오히려 뒤에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것 봐 나 오늘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왔더라니까. 내 감자 좀 봐 예쁘지" 라며 자랑(?)을 하더니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바람 잘 통해서 좋긴 해" 하고 하하하하 웃는 것이다.


 얼마나 멘탈이 강하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나 같았으면 얼굴이 빨개져서 그 뒤로 누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리면서 얼굴이 빨개짐을 스스로 느끼며 더 창피해서 식은땀까지 나고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사태가 왔을 것이다. 기가 죽어 그 생각만 하느라고 쥐구멍에 숨고 싶어 일이 잘 안 풀릴테고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서는 나 자신을 한심스러워하며 자책했겠지. 왜 확인도 안 하고 신고 간 것이며, 왜 또 얼굴은 빨개져서 땀까지 나게 된 거냐며 속된 말로 '쪽팔려' 했겠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누군가 어떤 것을 지적해도 자신을 낮춰가면서 까지 잘못됨을 비난하지 않는 단단함. 실수도 유머로 받아 낼 수 있는 여유로움. 강한 사람들만 가능한 아주 '사소한' 일이다.


아무렇지 않음에서 나는 또 무언가를 배운다.

아무렇지 않은 무심함이 그 사람을 더 빛나 보이게 만든다. 그런 사람은 옆에 두고 싶어 진다. 오죽하면 그 책을 주워오게 되었을까.  

 

성공한 사람?

본인의 행동 가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정을 다스릴줄 알며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 같았다. 자신과, 자신의 실수마저도 사랑할 줄 아는 정신을 가진 자야말로 정말 누군가가 우러러볼 만한 큰 일을 해낸 사람이니까. 그게 성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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