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예르모 델 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서양철학 입문을 배울 때 피터 싱어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공부한 바에 의하면 피터 싱어는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기본 권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가이다.
왜 동물에 인간과 똑같은 권리, 즉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할 권리를 줘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교수팀은 인간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인간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동물에게 주지 않는 이유는 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물은 인간처럼 두발로 서지 못하고 말을 할 수 없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두발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동물과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정의를 찾아보자. 아무리 정교하게 정의를 해봐도 60억 인구를 정의 안에 넣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인해 동물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동물보다 사회성이 없는 사람도 수두룩 빽빽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정말 인간은 뭐지?
2017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 사자상(대상)과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가 받았다. 동화적인 아이디어로 잔혹한 판타지를 그려내는 길예르모 감독의 첫 번째 멜로 영화가 아닌가 싶은데 괴수를 좋아하는 감독의 취향에 맞춰 멜로의 남주인공은 어인이다.
미국과 소련 간 우주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 대. 정부 소속 우주 연구소에서 청소부 일을 하는 엘라이자 에스포지토(샐리 호킨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이자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연구소에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들어온다. 이 생명체는 미국이 소련에게 우주 경쟁에서 뒤처질 위기에 처하자 실험체로 쓰기 위해 아마존에서 잡아온 것이다. 어인이 잡혀 있는 실험실을 청소하는 엘라이자는 어인&양서류 인간에게 이끌려 달걀을 주고 음악을 틀어주는 등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어인을 담당하던 스트릭랜드 대위는 양서류 인간을 고문하고 결국 해부할 계획을 세운다. 사실 소련의 스파이였던 실험실의 호프 스테들러 박사에게 어인이 해부당할 거라는 계획을 엘라이자에게 알려주고, 그 이야기를 엘라이자는 동료들과 함께 어인을 구출하기로 결정한다.
우선 이웃사촌인 자일스의 집 욕조에 어인을 두고 비가 와 댐이 열리는 날 부두에 풀어주기로 결정한다. 어인이 집에 있는 동안 엘라이자는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인을 놓친 스트릭랜드 대위는 호프 스테들러 박사의 뒤를 쫓아 어인의 행방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은 어인을 풀어주기로 한,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었다. 부두에서 만나게 된 엘라이자와 어인, 그리고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는 총으로 엘라이자와 어인을 쏴버린다.
하지만 어인은 스스로 총상을 치료하고 스트릭랜드를 죽여버린다. 경찰이 부두로 몰려오자 어인은 그녀를 안고 물 안으로 들어간 후, 그녀를 되살린다. 이때 엘라이자의 목의 흉터가 아가미로 변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 장면은 엘라이자도 양서류 인간이나 어인의 일종일 가능성이 있으며, 감독도 인터뷰에서 이런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설정도 인어공주에서 따온 알레고리일 수도 있다.
한창 우주에 대한 관심이 컸을 때가 2004년 말이었다. 당시 정부는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을 일반인을 상대로 뽑겠다고 발표했다. 평범한 사람 중에서 뽑겠다는 슬로건과 달리 실제 모집 원하는 스펙은 대단했다. 당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마련한 우주인 선발기준에 따르면 우주인 후보는 품행, 임무수행 능력, 의학적 지식이 뛰어나야 하고 영어, 러시아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일본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으면 유리하다. 평범한 국민에게 우주인이 될 수 있다고 알린 정부의 발표와 괴리감이 커 많은 사람이 평범의 기준이 언제 저렇게 높았냐며 분노와 허탈감을 쏟아냈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의 정의는 무엇일까? 평균에 치에 가까운 사람일까?
남자의 경우 키 173 정도에 학자금 대출이 2,000 정도 있으며 월 200 이하를 벌면서 평균 7시 30분에 퇴근하면 대한민국에서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평균 혹은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
엘라지아 - 말을 못함
젤다 - 흑인임 (당시 흑인은 ....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스트릭랜드 - 손 잭스임 (손가락 2개 잃음)
자일스 - 게이임
어인 - ??
영화 초반 영화관 주인이 S자 두 개를 붙여야 하는데 하나를 빼먹었다고 소리치는 것처럼 우리는 평균 혹은 정상 혹은 이상적인 인간상에서 뭔가 하나씩 빼먹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처럼 완벽했던 남녀가 제우스의 창을 맞아 분리된 것처럼.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가 하는 실수는 사랑스럽다. 그리고 불완전한 존재가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엘라이자와 어인의 사랑이 기괴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다시 피터 싱어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엘라이자는 인간도 아니라며 그 어인을 왜 구출해야 하냐는 자일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싱어는 인간을 정의하려는 이유는 기준을 정해야 복지, 기본권, 행복 추구권 등을 선별해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에게 인간과 같은 권리를 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싱어는 이 범위를, 더 넓혔다. 그는 유인원, 개, 돼지 같은 동물이 인간에 비해 차별받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정의가 모호하니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까지 행복권을 넓혀야 차별받는 인간이 없다는 논리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피터 싱어의 사상을 배울 때, 대해 반박하는 게 과제였는데 농담으로 ‘업진살 살살 녹는다’라고 쓰고 싶었던 걸 꾹 참고 글을 썼던 게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