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여배우는 오늘도
한 시간이 살짝 넘는 러닝타임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놀랍게도 배우 문소리가 각본과 감독, 주연까지 맡아서 만들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는 이 영화는 문소리의 대학원 석사과정 과제이기 때문이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3편의 단편영화를 하나로 붙여서 만들었는데 아마도 중앙대 석사 졸업 요건이 단편 영화 3개를 찍는 거였나 보다.
이 영화는 여배우 문소리의 삶을 보여주는 1막 (제목은 여배우)
일상의 문소리의 삶을 보여주는 2막 (제목은 여배우는 오늘도)
장례식에서 벌어진 일을 보여주는 3막 (제목은 최고의 감독)
으로 구성된다.
막과 막 사이에 암전은 연극처럼 길게 설정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왜 문소리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토록 길게 설정했을까?
이 영화는 문소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같지만 사실 픽션이다. 1막에서는 실제 지인에게 부탁해 연기를 맡겼지만 너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고 느껴 감독은 2막부터 전문 배우를 투입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문소리라는 배우의 삶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가상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문소리 감독은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여배우는 오늘도>에 나오는 인물들은 주로 필자의 가족과 지인들이다. 첫 단편 연출작 <여배우>에서는 주인공 문소리와 매니저를 제외한 모든 역을 배우가 아닌,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주변 지인들을 캐스팅하였다. 그러나 <여배우는 오늘도>에서는 거의 모든 역을 전문 배우로 캐스팅하기로 결정하였다.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보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관객들에게 인식될 가능성이 크고, 전문 배우들이 연기한다면 보다 극영화에 가깝게 이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이 영화는 분명 문소리가 겪었을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여배우로서 겪는 사람들의 편견, 배우-엄마-아내-며느리-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인간 문소리의 불편함과 싸워야 하는 편견, 부조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서두에 한 질문에 답이 여기에 있다. 왜 문소리 감독은 막과 막 사이의 암전을 연극처럼 길게 설정했을까?
정답은 관객에게 각 막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충분한 시간을 준 것이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대배우 문소리의 삶을 보고 느끼고 공감하라고? 응.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대배우 문소리의 삶을 공감하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문소리니까 돈 많잖아.’ ‘쉬어도 되지.’ ‘팔자 좋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문소리는 꾹 참는다. 돈이 많을 것 같은 문소리는 임플란트 50% 할인을 위해 엄마가 가는 치과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주고 출연하고 싶지 않은 무보수 특별출연을 위해 지친 몸을 자동차에 싣는다.
우리도 타인에게 저렇게 이야기한다. ‘대기업 다니니까 네가 사.’ ‘맏이라 책임감이 있어.’ ‘그래도 넌’ ‘넌 나보다’ 타인의 삶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조건으로 타인의 삶을 규정한다.
장 폴 사르트르가 괜히 “타인은 지옥이다.(hell is other people)”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내면을 알 수 없으며, 절대적인 주체인 나를 객관화하여 비추체적인 존재로 격하시키는 타인은 그런 의미에서 지옥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남을 평가하고 남에게 평가받기 때문에 <여배우는 오늘도>는 짙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우리가 배우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여성이 아니더라도. 개인은 사회라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기 때문에 아무리 친구가 많고 외향적이더라도 사람은 외롭다. 대배우 문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문소리는 화려할 것만 같은 여배우가 겪는 외로움을 영화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여배우는 오늘도>의 촬영 컨셉은 주인공 소리가 느끼는 ‘외로움’에 있다. 여배우로서 화려한 삶을 산 것 만 같은 소리는 여느 누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무게들을 견디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배우라는 기존의 관념들이 만들어내는 부담감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영화 속 소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며 그런 중에서 쉴 새 없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캐릭터이다.
.......
소리가 느끼는 외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화면에 소리가 담겼을 때 빈 공간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1막에 함께 막걸리를 먹는 아재의 한 마디 “역시 민노당이야"라는 그런 경험이 없다면 절대 쓸 수 없을 대사였기에 웃펐다.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조각을 가지고 타인을 쉽게 규정하고 상처 주는가.
PS- 피키 캐스트의 <부기 영화>에서 리뷰한 <여배우는 오늘도> 中
문소리 감독은 논문에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핸드헬드 기법은 주로 격한 움직임을 담아내는 데 적합한 촬영 방식이지만 <여배우는 오늘도>에서는 정반대의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 오히려 숨죽여 소리의 삶을 바라보는 느낌으로서의 미세한 떨림으로써 사용된 기법이기 때문이다. 그 현장에서 소리가 겪는 상황들과 느끼는 감정들을 관객이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고, 다큐멘터리에서 느껴지는 현실성에 대해서도 함께 느껴지길 바랐다.
이동이 없는 영상임에도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해 카메라가 조금씩 흔들리고 소리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조금씩 흔들리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