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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캣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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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Jan 25. 2019

고양이 사전엔 감지덕지가 없다

한 달에 길고양이 사료를 60킬로 정도 주문한다.

처음 시작할 땐 5킬로 정도로 한 달을 먹였던 것 같은데 밥자리가 늘어나고 챙기는 아이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조금씩 는 게 여기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사료를 선택하는 제일 기준은 가성비.  싸고 하자 없고 잘 먹어주는 사료가 최고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야 홀리스틱이니 프리미엄이니 하며 등급이나 영양성분을 꼼꼼하게 따지면서들 키우지만 미안하게도 길고양이들에겐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다.

다행히 지금 먹이는 사료는 거의 모든 길고양이들이 맛있게 먹는 사료로, 처음 개봉을 하면 고소한 남새가 난다.


얼마 전 사료가 간당간당해 주문을 한다는 것이 깜빡하고 하루를 놓쳤다.

다음 날 받지 못하면 당장 그 다음 날부터 먹일 것이 없어 급히 온라인몰에 주문하려니 익일 배송 상품이 없었다.

좀처럼 드문 경우라 망설이다가 대체 상품을 선택했다. 가격은 비슷하지만 기호성이 조금 떨어지는 사료였다. 하지만 굶을 수야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차라리 굶기를 택하는 녀석들이 있었는지, 사료 줄어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침에 가져다둔 사료가 저녁까지 남아 있는 곳이 늘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준다고 아무거나 먹는 건 아니다, 뭐 이러며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받는 쪽이 아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고양이들에겐 주면서도 굽신거리게 된다. 안 먹어주면 섭섭해서 막 눈치를 보게 된다.

"맛이 전에 먹던 것만 못한가요?"

"꼬순내가 덜한가요?"

베푸는 게 아니라 갖다 바치는 격이라고나 할까.

불만이 있는 것 같으면 시정이 필요한 법.

추워서 얼까 봐 안 주던 간식 캔과 닭가슴살로 먹음직스럽게 토핑을 하고 냥님들의 처분을 기다렸다.



토핑의 효과가 있었는지 밥 줄어드는 속도가 조금 났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좀 더 맛있게 먹으려면 섞어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전에 먹이던 사료를 추가로 주문했다.


춥고 불편한 길생활을 할망정 입에 안 맞는 음식은 당당히 거부할 줄 아는 고양이란 녀석들.

감지덕지 따위는 개나 줘버린 듯 자존감 하나는 꼿꼿하다.

그래도 우리 구역 길냥이들이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 만큼 너무 가혹하지 않게 지나가는 이 겨울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감지덕지: 분에 넘치는 듯싶어 매우 고맙게 여기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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