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 쪽에오래된 중고가구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가게 앞주차장에 개 한 마리가 살았다. 흰색인데 목욕을 안 시켜서인지, 원래부터 누런색이 섞여 있던 건지 누런빛을 띤 흰색 개는 짧은 목줄을 차고 하루 종일 가게 앞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가게가 문을 닫은 뒤에는 주차장에 혼자 남아 밤을 보냈다.
저렇게 목줄을 차고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얼마나 우울할까, 그 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도 우울한 것이 그 길을 지나다니기가 싫을 정도였다. 가끔 먹을 걸 챙겨 가 옆에 앉아서 말을 붙여보기도 했지만 개는 사람을 싫어하는지 먹을 것만 받아먹고 일체의 교감을 거부했다.
사실 그전에도 동네에 묶여 있는 다른 개를 본 적이 있다. 역시 어느 가겟집 뒤편에 묶여 있던 어린 강아지였는데 안쓰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내 몸에 침을 묻히곤 했다. 묶여 있는 게 안쓰러워 뭐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먹을 걸 주고 잠깐 놀아주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아는 게 없었다.
이후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란 프로를 통해서야 개들에게 산책이 정말 꼭 필요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활동이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미 강아지는 그 가게를 떠난 뒤였다.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그 녀석이 생각나 가끔 산책이라도 시켜줄걸 후회하곤 했다.
중고가게점 개도 저렇게 묶여 있다가 누가 잡아가는 건 아닌지, 늙었다고 이상한 데다 팔아버리는 건 아닌지 늘 마음이 쓰였다. 동네 고양이 밥 챙기기도 바쁜데 왜 남의 집 개까지 신경을 쓰는지 내가 생각해도 참 오지랖이었다. 하지만 한번 눈에 들어온 그 아이는 그렇게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가게에 들어가 일면식도 없는 사장님께 물었다. "제가 저 강아지 가끔 산책 좀 시켜도 될까요?" 잠깐 의아한 눈빛을 띄던 사장님은 곧 "그러세요."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이름은 백구. 나이는 열네 살 할머니라고 했다. 개가 만지는 걸 싫어하나 봐요, 머리도 못 쓰다듬게 해요, 하니 이전 주인에게서 학대를 받은 것 같다며 사장님은 자기도 두 번째 주인이라고 했다. 주인이 있든 없든 아무 때나 와서 산책을 시켜도 된다는 말에 그러다 나쁜 사람이라도 데려가면 어쩌나요, 하고 물었다. CCTV가 있어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안했지만 어차피 거두는 이는 내가 아니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산책에 나선 첫날, 아마도 산책이란 걸 처음 해봤을 백구는 제자리에 서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를 따라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내가 자기를 끌고 원치 않는 곳으로 가는 걸로 여겼던 모양이다. 나 역시 개를 산책시키는 게 처음이라 대책 없이 목줄만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백구는 자리에서 더욱 힘을 주며 버텼다. 할 수 없이 가만히 서서 백구가 걸음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
짧은 목줄에 묶여 있느라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똥싸고 오줌 싸며 지내던 백구는 잠시 후 약간 자리를 옮겨 주변을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리고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내가 목줄을 쥐고 걸음을 떼자 백구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걸음 뗄 때마다 땅바닥에 코를 들이댔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것이 가득했냐고 온몸으로 감탄하는 것 같았다.잠시 후 백구가 걸음의 속도를 높이더니나를 앞서 나갔다. 멍하니 줄을 잡고 백구를 지켜보던 나도 백구에게 질질 끌려 뛰다시피 걸었다.
그렇게 처음 산책이란 걸 시작한 우리는 서툴게 보조를 맞추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더해서 한두 정거장 너머에 있는 공원까지 함께 걸었다. 먼 길이었지만 그동안 한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지내던 백구에게 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공원에 다다른 백구는 혀를 내밀고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언제나 웅크리고 있던 어깨를 당당히 폈다. 높은 곳에 올라서 먼 곳을 바라보는 백구의 눈빛에 괜히 나도 기분이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