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경진 Mar 13. 2021

순환, 710번의 동네

[19] 2021.03.13 종점 여행 3

서울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시내’가 어러 곳이라는 점이었다. 다수가 모여 먹고 놀고 쇼핑하는 장소를 시내라고 했을 때, 전주에서 살았던 나에게는 꽤 오래도록 ‘객사 앞’만이 시내였으니까. 서울이라면 ‘시내’는 당연히 명동, 뿐이라고 생각했다.


710번은 상암동과 수유동에서 회차하는 버스다. 대학로 공연을 보고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버스를 탔다. 마포구가 출발지가 아닌 첫 종점 여행. 버스는 수유 중앙시장에서 일단, 끝난다. 맥도날드부터 각종 브랜드의 커피숍, 교보문고와 알라딘 중고서점, 크고 작은 가게들이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각종 음악이 흘러나오는, 시내.


주말의 인파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빛바랜 간판들이 등장했다. 채도 낮은 색상에 큼직큼직하고 고풍스러운 글씨로 국밥과 족발, 칼국수와 곱창이 쓰여있었다. 옷가게와 미용용품점에는 아주 인위적인 외형이라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마네킹이 있었다. 30년은 넘었을 다가구 주택이 즐비하고, 담장에는 ‘칼갑니다’라는 누렇게 뜬 스티커가 붙어있다. 오늘은 커피 대신 40년 된 우동집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었다.


골목을 걷다 만나는 놀이터에도, 재래시장 곳곳에도 아이와 노인이 함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킥보드를 타던 여자 아이는 강아지를 안은 낯선 중년의 여성에게 말을 걸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2층짜리 단독주택 앞에는 노인용 보행보조기구가 있고, 할머니들은 동네 곳곳에 놓인 편의점 의자에 앉아 볕을 쬔다. 3대가 지금을 함께 사는 동네. 오래도록 ‘수유리’로 불리던 곳이었다는데, 아마도 수십 년간 여러 세대가 그렇게 이어져왔겠지.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았다. 그 공기가 주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새로운 것에서는 절대 느껴지지 않는.

매거진의 이전글 경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