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021.03.22 종점 여행 4
한참 해외로 여행을 다닐 때 하고 싶었던 게 하나 있다. 무작정 공항에 가서 지금, 가장 먼 곳으로 가는 항공권을 사서 떠나는 것. 경험하기 어려운 방식이라 더 꿈꿨는지도 모른다. 합정역 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버스에 올라탔다. 5712번. 오늘은 저상 전기버스다. 일반 버스에 비해 조용하고 버스기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급출발과 급정지가 적어 안정적으로 느끼는 편이다.
어쨌건 5712번 버스는 홍대와 합정, 염창과 등촌을 지나, 가산디지털단지에 선다. 양화대교를 달리고, 목동의 대단지 아파트와 작은 공원들을, 고척 스카이돔을 지나서. 구로동으로 들어오니 중국교포들이 많이 탄다. 양꼬치와 중식당 간판이 빼곡하고, 버스 안에서도 중국어가 들린다. 구로동과 가리봉동이 대림동 옆동네라는 걸 몰랐다.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환전 교환소’ 같은 간판이 종종 눈에 띄고, 플래카드에도 육교 안내판에도 한국어와 중국어가 병기되어 있는 동네.
거기서 두 정거장 정도를 지나면, 고층빌딩이 등장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거대 빌딩 안에 촘촘히 박혀있는 가산디지털단지다. 서울에서 오래 일하고 있지만, 빌딩에서 일한 경험이 드물어서인지 이런 곳에 오면 금세 기에 눌려버린다. 모든 건물의 지하와 1, 2층에는 수많은 상점들이 있다. 샌드위치부터 찌개, 분식과 동남아 음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음식을 판다. 카페도 많다. 입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투썸플레이스가, 왼쪽에는 할리스가 1층을 차지한 건물도 있다. 스타벅스는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있다. 버스에서 내려 30분 정도 동네를 걸어 다녔는데 서로 다른 지점의 스타벅스를 4개나 봤다. 산업단지를 잇는 다리는 ‘수출의 다리’로 명명되고, 스타벅스에서는 필리핀과 중국 등 수출과 공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나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모든 것이 다 있지만, 어떤 것도 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삭막하다고도 느낀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지만, 모두가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겠지. 모두가 분주할 때 오직 나만이 멈춰있는 것도 같다. 무표정하게 내 곁을 슉슉 지나가던 뉴욕의 어느 큰길에서처럼. 이런 곳에서 나는 쉽게 외로움을 느낀다. 오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