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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Apr 07. 2021

너의 이름은, 해당화

[21] 2021.04.06

기초대사량이 낮다. 뭐만 하면 HP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에 효율을 중시해왔는지도 모른다. 할 수 있을 때 빠짝 해야 한다는 마음. 그러니 오래동안은 그 에너지가 일에 몰려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은 적은 에너지와 많은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러다 PT를 받고 요가를 하고 궁금해하던 바투카타를 해보고, 한강과 궁에 자주 나갔다. ‘좋다’라는 감정만 있던 것들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기억된 것도 이때부터다. 옷으로만 느꼈던 계절의 변화를 코로, 눈으로, 손으로 자주 느꼈다. 내 손에 주어지는 돈은 적었지만, 세계는 분명히 확장되고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엄청난 냉소주의자다. 자신감보다는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패배감이 강해,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올인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했냐,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마음을 열었고 그 이상은 알려하지 않았다. 봄이면 꽃이 펴서, 초여름이 오면 푸르러서 좋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꽃 모양은 어떤지, 낙엽은 어떻게 생겼는지, 비슷해 보이는 것들은 어떻게 다른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낮에 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꽃이 금세 진다는 것을, 또 다른 식물들이 다음을 견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매화의 봉우리가, 조팝나무의 조그마한 꽃이 얼마나 귀여운 지도. 라일락의 향기를 기억할  있게 됐고, 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유심히 보게 됐다.  잎이  나무의 그늘 아래 자주 누웠고, 때때로 바람과 새소리를 녹음했다.  많이 알고 싶어졌고, 그만큼 많은 것에 무심했던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늘은 서부해당화라는 이름과 모양을 매치할  있게 됐다.


무엇인가가 좋은 이유에 ‘그냥’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양에서 분홍으로 그라데이션되는 해당화의 꽃잎과 파란 하늘이 잘도 어울렸다. 겹벚꽃이나 홍매화 같은 탐스러움도 눈을 사로잡았다. 서부해당화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알게 됐고, 좋아서 기억하고 싶어졌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른다는 것,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행위다. 역시 그것이 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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